얼어붙은 한일관계 상생 모색 ‘수담 외교’
한국 선봉은 김기선 의원. 국회기우회에서 실력 제일이다. 청소년 시절에 프로기사를 꿈꾸며 길지 않은 기간이나마 연구생 수업을 거쳤던 강자로 경희대 재학 때는 대표 선수로 대학 바둑에서 이름을 날렸다. 지금도 ‘YES24 고교동문전’에 휘문고 대표로 출전해 왕년의 명검을 휘두르고 있다. 나이도 있고 공무에 바빠 날이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젊은 후배들도 걸리면 간다.
김 의원이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장재식 전 의원(민주당)이 국회기우회 보스였다. 프로에게 정선으로 버티는 짱짱한 기력으로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한국기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국내외 시장경제의 흐름과 문제점을 알기 쉽게 풀고 지적한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등 자신의 경제학 책을 나오는 족족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경제학 교수가 장 의원의 장남이고 같은 대학 장하석 석좌교수(물리학)가 장하준 교수의 동생이며, 소액주주운동의 장하성 교수(고려대 경영학과), 참여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냈던 장하진 교수(충남대 사회학과)는 사촌간이다. 명실상부한 명문가계인 셈. 장 의원 전에는 자민련의 이양희 이인제 의원 등이 고수였다. 유인태 의원도 국회기우회의 터줏대감. 예전에는 지인들과 가벼운 내기바둑도 즐겼다.
한·일 국회의원 바둑교류전이 이번에 처음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1999년 일본 참의원 의장 공관에서 제1회가 열렸고, 이후 2004년까지 홈앤드어웨이로 여섯 번을 치르고는 중단되었다. 이번 재개는 11년 만인데,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82년에도 교류전이 한 번 있었다.
당시 우리는 조훈현 9단, 일본 팀은 조치훈 9단이 지도사범으로 동석했다. 1982년이면 조훈현 9단이 198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전 타이틀을 석권했던 시즌. 80년의 제1차 천하통일 때는 9관왕이었으나 82년에는 10관왕이었다. 조훈현 9단은 1986년 세 번째 전관왕 기록을 세우는데, 그때는 무려 11관왕이었다. 82년은 또 조훈현 9단이 국내 최초로 ‘입신(9단)’에 오른 해이기도 하다.
한두 차례 수담이 지났을 때 국립대 교수 출신의 우리 쪽 간사 K 의원이 두 사람의 조 9단에게 시범 대국을 청했다. 조훈현 9단은 얼굴이 붉어졌고, 조치훈 9단은 주저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조치훈 9단이 거절해 시범대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둑 기자 한 사람이 훗날 그 광경을 가십으로 옮겼다.
“…바둑 모임에서는 바둑 고수가 대접을 받는 법이다. 바둑 고수가 상석에 앉는다. 조치훈 9단이 누군가. 지난날 일본 총리가 어떤 행사에 조치훈 9단을 초청했다. 조치훈 9단은 몸이 좀 불편하고, 대국을 앞두고 있어 참석하기 곤란하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총리의 초청을 거절한다는 게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도 멋지고 당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훈현 9단에게는 관전들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문화의 차이라는 거 아닌가.”
7월 26일, 한국 현대바둑 70주년 기념으로 조치훈 9단이 건너와 조훈현 9단과 기념 바둑을 둔다고 하니 한·일 국회의원 바둑 친선교류전도 기왕이면 날짜를 거기에 맞추었으면 더 뜻이 깊을 뻔했다.
“요즘 이런 저런 일로 한-일 관계가 잔뜩 굳어 있는 상황이어서, 우선 정치인들끼리 소통의 장을 마련해 경색 국면을 푸는 실마리를 찾자는 생각이었다. 앞으로는 한·일에 중국 의원들도 자리를 함께하는 한·중·일 교류전 같은 것을 구상하고 있는데, 더 나아가 북한도 초청해 그야말로 동양3국의 공유하는 전통문화인 ‘바둑’으로 동북아 평화·안정에 기여하는 방안을 연구-추진해 보겠다.”
이번 교류전을 성사시킨 원유철 회장의 ‘바둑 포부’다. 하긴 여야 의원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우리 국회기우회는 2013~2014년, 2년 연속으로 중국에 건너가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 및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국정 방침에 대해 제안·토의·비판하는 정책자문기구)’의 주요 인사들과 수담 외교를 펼쳤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