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었는데 덜 야하네~’ 너도나도 스윔수트
올 여름 걸그룹 대전을 앞두고 각 기획사 사이에서는 라이벌 그룹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치열한 정보전을 펼쳤다. 어느 작곡가의 곡을 받느냐에 따라 신곡의 색깔은 가늠할 수 있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 저변에는 여름 시장을 겨냥한 ‘노출 경쟁’에 대한 묘한 심리전이 깔려 있다. 걸그룹의 노출 경쟁은 매년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단골 소재다. 때로는 지나친 노출로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걸그룹의 노출은 찬반 여론을 떠나 일단 대중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특히 청순함과는 거리가 먼 걸그룹들은 적정 수준의 노출과 퍼포먼스가 앨범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각 기획사들은 고심을 거듭했다.
고민 끝에 나온 올해의 트렌드는 ‘수영복’이다. 무려 4팀이 수영복 콘셉트를 내세우며 컴백을 선언했다. 소녀시대를 비롯해 씨스타, 걸스데이, 나인뮤지스와 같은 유명 걸그룹의 수영복 패션은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신곡 ‘쉐이크 잇’ 발표 전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화보를 공개한 씨스타.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건 씨스타였다. ‘쉐이크 잇’을 들고 컴백한 씨스타는 신곡을 발표하기 전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화보를 공개했다. 특히 멤버 소유는 옆구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씨스루 수영복을 착용했고, 네 멤버가 수영복을 입은 화보는 흑백톤으로 처리돼 섹시함을 더했다.
7일 신곡 ‘파티’를 발표한 소녀시대 역시 이에 앞서 태국 코사무이 해변을 배경으로 8명의 멤버가 수영복을 입고 촬영한 화보를 릴리스했다. 소녀시대는 그동안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선정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룹이었다. 이번 화보 역시 파격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1년 6개월 만에 컴백한 소녀시대가 수영복 패션으로 몸매를 드러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모았다.
소녀시대 신곡 ‘파티’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 캡처.
이를 의식한 듯 소녀시대의 멤버 윤아는 컴백 기자회견에서 “뮤직비디오를 코사무이에서 촬영하며 그 분위기에 맞춰 입는 의상이 수영복이 됐을 뿐”이라며 “‘여름이니 노출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윤아는 “워낙 소녀다운 이미지를 보여드리려고 하다 보니 작은 변화에도 놀라시는 것 같다”며 “소녀시대의 몸매 비법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걸스데이가 수영복을 입고 찍은 앨범 재킷을 공개했다.
소녀시대와 같은 날 쇼케이스를 열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 걸스데이도 수영복을 입고 찍은 앨범 재킷을 공개했다. 아직은 성숙한 여인보다는 귀여운 동생 이미지가 강한 걸스데이에게 수영복 패션은 이미지 변신을 위한 일종의 도발이었다. 블랙&화이트 톤 수영복을 나란히 차려 입고 맨다리를 드러낸 걸스데이의 이미지가 다소 야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걸스데이의 멤버 소진은 “소녀시대 선배님들의 티저 영상을 봤는데 수영복을 입었더라. 정말 상큼하게 잘 소화한 것 같다”며 “우리 역시 뮤직비디오에서 수영복을 입었는데, 우리만의 색깔을 표현하고 싶었다. 선배님들이 상큼했다면, 우리는 회오리 같은 느낌으로 의상과 안무를 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래시가드 룩을 선보인 나인뮤지스 화보. 사진출처=나인뮤지스 공식 팬카페
이 외에도 모델 출신이 다수 포진돼 몸매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인뮤지스 역시 해변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촬영한 수영장 화보를 공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존의 비키니나 원피스 수영복이 아니라 활동성이 좋은 래시가드 수영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해 섹시미보다는 건강미에 방점을 찍었다.
비슷한 시기에 컴백하는 걸그룹 네 팀이 약속이나 한 듯 수영복을 콘셉트로 삼았다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미리 알지 않았다면 이처럼 같은 콘셉트를 들고 나온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다.
하지만 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그만큼 할 게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0대 중반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등장과 함께 불붙기 시작한 걸그룹 열풍 속에 웬만한 콘셉트는 이미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각 기획사들이 고민 끝에 꺼낸 아이디어가 수영복일 것이란 분석이다.
수영복 콘셉트가 각광받은 또 다른 이유는 ‘자연스러운 노출’이기 때문이다. 수영복은 기본적으로 노출을 전제로 한 의상이다. 선정성 논란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키니 수영복이 아니라 원피스나 래시가드 수영복을 선택한 것도 의도적인 노출을 아님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기획사 대표는 “여름 하면 자연스럽게 해변이나 수영장을 떠올리고 수영복으로 이미지가 이어진다”며 “비키니의 경우 노출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질 수 있으니 각 기획사들이 깊은 고민과 회의 끝에 수영복이나 래시가드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영복 콘셉트가 부각되자 각 걸그룹들은 한 목소리로 “수영복을 입고 무대에 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선정성 경쟁을 지양하는 방송사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최근 끝난 KBS 2TV <프로듀사>에서는 톱스타 신디(아이유 분)가 PD의 말을 듣지 않고 무대 위에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선보여 담당 PD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불려가는 장면이 방송됐다. 이는 실제 방송 환경을 다룬 장면이다.
때문에 각 방송사들은 생방송 무대에 오르기 전 걸그룹들의 의상을 확인한다. 본방송이 시작되기 전 카메라 리허설 때는 무대 의상까지 모두 차려 입고 무대를 꾸미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걸그룹에게는 미리 “갈아입으라”고 지시한다.
지상파 음악방송 제작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이 다수 등장하는 음악방송의 주시청층은 청소년들이다. 노출이 심한 의상은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며 “요즘 걸그룹들이 공개한 수영복 화보를 보고 우려가 컸는데 다행히 무대 의상은 이와 별개로 선정적이지 않은 의상으로 따로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대처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