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통’이 만들고 ‘전통’이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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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브이 탄생 30주년 기념행사에서 공개된 모형. | ||
그렇다고 태권브이가 모든 이들의 환영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70년대 중반부터 10년가량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태권브이는 80년대 후반 군사정권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를 두고 태권브이를 구시대의 유물, 군사정권의 잔재라며 그 의미를 부인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군사정권을 주도해온 박정희 전두환, 이 두 전직 대통령과 태권브이는 어떤 관계였을까. 당시의 정치적 상황들로 인해 불거진 의혹들을 풀어본다.
태권브이와 박정희
로보트 태권브이가 처음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유신독재가 절정이던 76년이다. 영화계 역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그 시절, 영화 <태권브이>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개봉돼 관객 18만 명을 동원, 그 해 흥행 순위 2위를 기록했다.
당시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진보 단체에선 70년대 후반 유신정권이 에듀엔터테인먼트(Eduentertainment)를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계속되는 용공조작에 한계를 느낀 정권이 만화를 통해 어린이 대상 반공 교육을 펼쳤다는 것. 태권브이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태권브이의 형상이 광화문 사거리에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비롯됐고, 국방력을 중시하던 당시 정세에서 적군을 물리치는 군사용 로봇이라는 부분, 그리고 산업화를 강조하며 철강강국을 꿈꾸던 상황에서 강철로 만든 한국산 로봇이라는 부분 등을 놓고 볼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권브이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정황들은 황당한 음모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실제 태권브이가 제작됐는데 그 총책임자가 김청기 감독이었다는 것. 그런데 미국의 방해로 태권브이는 실전에 배치되지 못한 채 해체돼 전국 각지에 분산돼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바로 그 음모론이다.
과연 <태권브이>가 놀라운 흥행 성적을 기록했을 당시 박 대통령을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태권브이> 시리즈를 연출한 김청기 감독은 “당시 일체 정부의 지원을 받은 바 없고 박 전 대통령이 태권브이를 좋아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다”면서 “오히려 그런 게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좀 더 빨리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당시 정부는 애니메이션을 ‘어린이의 공부를 방해하는 존재’로 여겼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 김 감독은 “태권브이로 태권도가 붐을 이뤘지만 국기원에서 고맙다는 얘기조차 없었고 포항제철 역시 태권브이가 아닌 일본의 아톰을 상징물로 이용하다 그만둔 게 얼마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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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청기 감독. | ||
김 감독은 “당시 정부는 만화영화를 어린이의 공부를 방해하는 존재 정도로 여겼을 뿐 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었다”고 얘기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다. 김 감독이 에듀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반공 애니메이션 최초의 작품인 <똘이 장군> 시리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76년부터 78년까지 총 네 편의 <태권브이> 시리즈를 연출한 김 감독은 연이어 78년에서 79년 사이 세 편의 <똘이 장군> 시리즈를 연출했다. 똘이 장군은 북한 고위층을 가면 쓴 돼지, 북한군을 늑대로 표현하고 있다. 똘이 장군이 이들을 물리치는 내용으로 2편은 당시 발견돼 화제가 된 제3땅굴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
<태권브이> 시리즈로 입지를 굳힌 김 감독이 만든 차기작이 최초의 반공 애니메이션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똘이 장군> 시리즈는 보수층의 지원을 받았던 게 사실. 대한반공청년회가 제작을 지원하는 등 일부 보수 단체가 제작에 관여했고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이어져 흥행에 큰 도움이 됐다.
사실 <태권브이> 자체는 순수 공상과학물이다. <태권브이> 이후 로봇 애니메이션이 유행하며 <해저탐험대 마린 X> <슈퍼 타이탄 15> <로보트왕 션새크> 등 반공을 소재로 한 로봇 애니메이션이 연이어 개봉한 데 반해 태권브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태권브이가 군사정권의 잔재인 양 취급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김 감독이 반공 애니메이션 시대의 개척자이기 때문. 이를 두고 태권브이를 보고 감복한 박 전 대통령이 김 감독을 적극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똘이 장군>이 탄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김 감독의 설명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과연 <똘이 장군>이 탄생한 배경은 무엇일까. 김 감독은 “<똘이 장군> 역시 정부의 사주를 받거나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반공을 소재로 할 경우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어린이들에게 반공 의식을 고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제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태권브이와 전두환
80년대 들어 태권브이는 잠시 주춤한다. 서서히 잊혀져가던 태권브이는 83년 <슈퍼 태권브이>로 부활했고 84년에는 3단 변신 기능을 갖춘 <84 태권브이>로 거듭난다. 태권브이 시리즈는 모두 여덟 편이지만 김 감독이 연출한 순수 애니메이션은 여섯 편이다. 79년에 제작된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에도 태권브이가 등장하나 이는 다른 제작진이 만든 애니메이션에 태권브이가 출연만 했을 뿐이었고 90년에 제작된 <로보트 태권브이>의 경우 실사-애니메이션 합성 영화였다. 70년대 후반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던 태권브이가 5공화국 출범 직후 주춤하다 화려한 부활을 꿈꿨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서서히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로봇 애니메이션 제작 금지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두환 씨 부부가 TV에서 방영되는 로봇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다 아이들이 보기엔 너무 폭력적이라고 얘기한 게 이런 조치로 이어졌다는 것. 실제 비슷한 시기에 김 감독 역시 로봇 애니메이션 제작을 중단하고 <우뢰매> 시리즈를 비롯한 실사-애니메이션 합성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정부에서 그런 정책을 펼친 기억은 없다”며 “당시 실사-애니메이션 합성영화가 세계적인 흐름이라 따랐을 뿐”이라 설명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