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900만 채 시대, 민박·세컨하우스로 활용…비자문제·눈덩이 수리비 등 감수해야

문제를 키운 건 일본 특유의 세제 구조였다. 일본에서는 주택이 세워진 토지에 대해 고정자산세를 최대 6분의 1까지 깎아주는 ‘주택용지 특례’가 적용돼왔다. 덕분에 집이 낡고 사람이 살지 않더라도 건물 형태만 유지하면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반대로 철거해 빈 땅으로 만들면 세금이 급격히 뛰기 때문에, 소유주 입장에서는 허물기보다 방치하는 편이 더 유리한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분위기가 바뀐 건 2023년 말부터다. 일본 정부가 ‘빈집 대책 특별조치법’을 개정하면서 관리 부실 빈집에 대한 압박 수위를 크게 높였다. 지방자치단체가 방치 상태가 심하다고 판단하면 시정 권고를 내릴 수 있고, 이 경우 기존 세금 감면 혜택도 사라질 수 있다. 결국 집주인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직접 관리에 나서거나, 싼값이라도 집을 팔거나, 아니면 늘어난 세금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일본 지방에서 빈집 매물이 빠르게 늘어난 것도 이런 제도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WSJ에 따르면, 상당수는 해외에서 일본 빈집을 ‘원격 구매’하고 있다. 집 내부는 온라인 영상으로 확인하고, 계약은 대리인을 통해 진행하는 식이다. 열쇠를 받는 날 처음으로 집 안을 직접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사진 속 풍경과 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빈집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100년 넘은 전통 가옥처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집도 있지만, 지붕이 무너진 채 방치된 집도 있다. 이전 집주인의 생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가구와 옷가지, 가족사진, 심지어 유품까지 그대로 남겨진 채 거래되기도 한다.
호주인 토니 갈라드는 WSJ 인터뷰에서 “호주에서 원격으로 7000달러(약 1040만 원)짜리 집 계약을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면서도 “세상을 떠난 이전 소유자의 물건을 직접 정리해야 했던 경험은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고, 달력에는 메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본에서는 폐기물 처리 규제가 엄격해 이런 물건들은 허가 업체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지방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도 큰 장애물이다. 인구 유출이 심한 지방일수록 공사업체와 기술 인력이 부족해 리모델링 착수까지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여기에 언어 장벽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구매자 입장에서는 도쿄나 오사카에서 부동산을 사는 것보다 오히려 시골 빈집을 되살리는 일이 더 어려운 프로젝트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결과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역 시공업체를 찾아 50년 된 목조주택을 민박으로 되살린 외국인 소유주는 성수기 예약이 반년 치 이상 밀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반면 공사를 맡길 업체를 끝내 찾지 못해, 구매한 집이 폐허 상태 그대로 방치되는 사례도 이어진다.
맹점은 또 있다. 바로 비자 문제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권과 체류 자격이 완전히 별개다. 즉 아무리 빈집을 사더라도 장기 체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관광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은 통상 한 번에 최대 90일 정도만 머물 수 있고, 연간 누적도 180일이 한계다. 일부 외국인 구매자들은 낡은 빈집을 에어비앤비나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한 뒤 실제 숙박업을 운영하며 ‘경영·관리 비자’를 받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 내 자본금, 사업계획서, 민박 허가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일본 지방 입장에서 해외 구매자가 가져오는 경제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 오래 비어 있던 집에 사람이 들어오고,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고, 관광객이 찾아오면 지역 경제에도 조금씩 활력이 돌기 때문이다. 다만 집만 사두고 방치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유주 국적만 바뀌었을 뿐 실제 거주나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역사회 입장에서는 빈집 문제가 그대로 남게 된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는 외국인 구매자에게 일정 기간 안에 리모델링 완료나 실제 거주 계획 등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은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의 일본 빈집 매입과 리모델링, 행정 절차를 대신 지원하는 플랫폼과 컨설팅 업체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한때 폐허처럼 방치됐던 일본의 빈집은 이제 해외 투자와 지역 재생이 맞물린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