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삼킨 흥행공식 새로 쓴다
▲ 영화 <괴물> 속의 장면. 이 영화는 괴물의 정체를 일찌감치 드러내놓고도 긴장과 스릴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점에서 여느 괴수영화와는 다른 흥행공식을 선보였다. | ||
-이슈를 만드는 감독-
“‘칸’에서도 열광했다니. 드디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괴수 블록버스터가 나오는구나” “뛰어나봤자 <킹콩>에 나오는 수십 마리의 괴수 가운데 하나밖에 더 되겠어?”
영화 <괴물> 기자 시사회 직전 기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다. 아무리 뛰어난 CG라 할지라도 할리우드 CG 기술을 바탕으로 해 그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잘 해봐야 비슷한 수준일 테니.
그러나 막상 기자 시사회가 끝나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물론 ‘괴물’ 자체도 뛰어난 CG의 결정체였지만 봉준호 감독이 숨겨둔 ‘반미’를 필두로 한 날카로운 ‘풍자’가 더욱 돋보였다.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괴수 블록버스터에 사회 풍자의 요소를 가미한 영화는 <괴물>이 세계 최초다. 특히 바이러스가 없음을 알고도 미국이 특수 방역부대를 투입하는 대목은 대량 살상 무기가 없음을 알고도 공격을 시작한 이라크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봉 감독의 힘이 느껴진다. <살인의 추억>을 통해 드러낸 사회 풍자의 발톱이 <괴물>에서 더욱 날카로워진 것. 여기에는 다분히 민주노동당 당원인 봉 감독의 정치색이 담겨있다. 봉 감독은 박찬욱 감독, 영화배우 문소리 오지혜 등과 함께 민노당원 영화인으로 유명하다. 봉 감독의 측근들은 그가 학창 시절부터 키워온 개혁적인 성향이 영화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봉 감독의 사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철학이 영화 <괴물>에 그대로 담겨있는 것. 또한 그는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에서도 앞장서 활동해왔다. <괴물>의 620여 개의 스크린 독점에 대한 영화계 일각의 비난이 봉 감독을 피해 배급사인 ‘쇼박스’로 집중되는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 봉준호 감독 | ||
출연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실력파들이다. 그런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0위 안에 든, 소위 대박난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송강호가 유일하다. 그는 <쉬리>(621만 명) <공동경비구역 JSA>(583만 명)에 이어 <괴물>까지 이제 톱 10 가운데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된다. 반면 변희봉 배두나 박해일 등은 <괴물>이 유일하다. 변희봉과 박해일은 <살인의 추억>으로 역대 랭킹 10위 자리를 지켜왔으나 <괴물>로 인해 <살인의 추억>이 11위로 밀려났다. 배두나는 아예 <괴물>이 처음이다. 송강호도 “이번 영화가 배두나의 첫 번째 대박 영화”라고 얘기할 정도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의 배우는 하나같이 요즘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들이다. 결국 흥행 성적이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는 얘기. 봉 감독을 통해 영화계로 활동 영역을 옮긴 변희봉은 충무로 최고의 개성파 중년배우로 손꼽히고 있고 박해일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희망이라 불려온 블루칩이다. 아이돌 스타에서 개성파 배우로 변신한 배두나 역시 일본 영화계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나같이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로 출연 영화 선택 과정에서 흥행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해 ‘대박’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을 뿐이다.
이들은 모두 봉 감독의 기존 작품 출연진이기도 하다. 변희봉과 배두나는 예술성이 돋보인 입봉작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했고 송강호와 박해일은 상업적 가능성을 발견케 한 <살인의 추억>에 합류했다. 이렇게 이미 전작에서 함께 작업했던 네 명의 배우가 최강의 스쿼드를 구성했고 여기에 루키 고아성이 가세했다. <괴물>뿐만 아니라 봉 감독의 차기작에도 기대가 집중되는 까닭 역시 탄탄한 ‘봉준호 사단’ 배우들 때문이다.
-출연료 40억 괴물-
영화 <괴물>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변희봉 일가’ 다섯 명이 아닌 CG로 탄생한 ‘괴물’이다. 출연료만 40억 원, 한국 영화 역대 최고 개런티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괴물’의 국적은 한국이다. 봉 감독의 상상력이 담긴 몇 장의 스케치에서 태동했기 때문. 하지만 성장기를 외국에서 보낸 ‘유학파 배우’다. 애초 ‘괴물’은 뉴질랜드에서 연기 수업(?)을 받을 예정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 CG 작업을 담당한 웨타 사에서 ‘괴물’의 CG 작업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성공으로 웨타 사가 세계적인 CG 업체로 부각되며 300만 달러로 합의됐던 견적이 700만 달러로 급등하고 말았다. 영화 <괴물>을 제작한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700만 달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금액”이라며 “급하게 미국 회사들과 접촉했지만 쉽지 않았다. ‘괴물’의 탄생이 무산될 수도 있는 위기였다”고 얘기한다.
▲ (맨위)영화 <괴물>에 출연한 배두나,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왼쪽부터)은 모두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었다는 인연을 갖고 있다. 가운데는 딸 현서 역의 고아성. | ||
영화 <괴물>이 1000만 관객 신화를 바라보고 있어 곧 ‘괴물’은 최고의 흥행 배우 명단에 오를 전망이다. 게다가 해외 수출이 줄을 잇고 있어 한류 스타로의 자리까지 예약한 상황. 다만 속편이 제작되지 않는다면 ‘괴물’은 더 이상 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는 부분이 아쉽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괴물’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10분 이내의 단편 영화를 찍으려 하는 영화 지망생들에게 ‘괴물’ 데이터를 제공해 확실한 연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것. 이런 바람이 이뤄진다면 ‘괴물’은 여러 편의 독립 단편 영화에 출연해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만날 수도 있다.
-620여 스크린 확보-
영화 <괴물>이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으며 흥행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지만 일각에선 ‘묻지마 배급’ 비난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반드시 <괴물>에만 해당되는 비난은 아니다. 대기업 계열사인 쇼박스와 CJ엔터테인먼트가 막대한 자본력과 자체 극장 체인을 이용,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 최근에는 CJ엔터테인먼트의 <한반도>가 520여 개, 그리고 <괴물>이 620여 개의 스크린을 독점했다. 이렇게 대기업이 참여한 대형 블록버스터가 스크린을 독점할 경우 다른 한국 영화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는 스크린쿼터의 보호권에도 들지 않는 완전 무방비 영역이다.
그렇지만 <괴물> 자체적으로는 이런 방식의 ‘묻지마 배급’이 확실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 2005년 12월 기준 전국의 스크린 수는 1,648개로 괴물이 전체 스크린 수의 3분의 1 가량을 독점한 것. 관객의 영화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비난을 들을 만큼 많은 스크린을 확보, 관객 몰이에 나서 비교적 손쉽게 각종 흥행 신기록을 갱신할 수 있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