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신3김’ 존재감 띄우지만 이재명 아성 넘기 쉽지 않아…여권 ‘친윤계’와의 관계 설정이 관건
12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였다”며 “국민들에게 망국의 위기 상황을 알려드려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주장하는 2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앞서 7일 대통령 임기, 정국 안정 방안 등을 당에 일임한 뒤 국정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힌 지 닷새 만에 대통령직을 이어가겠다고 입장을 바꾼 셈이다.
담화 이후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해 왔던 국민의힘에서도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12월 12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김영환 충북지사, 유정복 인천시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12일 기준 김상욱 김예지 김재섭 안철수 조경태 진종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에서 최소 한 명만 더 이탈하면 탄핵 가결선인 200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 사실상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윤 대통령 직무와 권한 행사는 정지되고, 헌법재판소(헌재)는 탄핵안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앞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헌재는 91일 만에 인용 결정을 내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63일 만에 기각됐다.
이 경우 여야 잠룡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뉴스1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 12월 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37%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라 응답했다. 한동훈 대표는 7%로 2위를 기록했다. 이어 조국(6%) 홍준표(5%) 오세훈(4%) 안철수(4%) 김동연(3%) 원희룡(2%) 이준석(2%) 유승민(1%) 김경수(1%) 순으로 나타났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없다’는 응답은 22%에 달했다. 새로운 인물이 떠오르거나, 누군가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변방의 장수’에 불과했던 이재명 대표도 2016년 총선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촛불 정국을 발판 삼아 중앙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재명 시장은 대세론을 이어가던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맞붙어 20%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야권 잠룡들은 일제히 탄핵 정국에서 존재감 알리기에 나서는 중이다.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이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 전 지사는 당초 내년 2월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12월 5일 독일에서 귀국해 이재명 대표를 만났다. 12월 12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아가 탄핵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정가에선 친문계 적장자로 불리는 김 전 지사가 ‘이재명 대항마’로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분위기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경수 전 지사는 중도 확장이 어렵고, 경쟁력도 없다”며 “김 전 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야권에서 또다시 사법리스크 있는 사람을 차기 대선 후보로 밀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 촉구 1인 시위와 더불어 민생 집중 행보에 나섰다. 12월 12일 경기도는 비상계엄 사태, 탄핵정국 등 혼란한 정치 상황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민관합동대책기구인 경기비상민생경제회의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육성자금 확대, 긴급 경영자금 지원 등 현장 중심의 대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김 지사는 김경수 전 지사와 독일 베를린에서 회동하고, 친노·친문 등 비명계 인사들을 불러 모으며 이목을 끈 바 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재명 체제 민주당’에 쓴소리를 냈다. 12월 10일 김 전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과하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가면 한 총리를 탄핵하고,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또 탄핵하고, 이주호 사회부총리를 탄핵하는 순으로 가는 것이냐”고 되물으며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주당이 ‘무더기 탄핵’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넘어올 여지를 봉쇄해버리는 하책이다. 국가 운영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훨씬 훌륭한 전략”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이른바 ‘신3김(김부겸 김동연 김경수)’이 이재명 대표 아성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는 평이다. 이 대표는 당대표직을 연임한 뒤 중도층을 공략하고자 집권플랜본부를 출범시키며 차기 대선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 우클릭 정책을 펼치며 외연 확장에 나섰다. 탄핵 이후 이 대표가 대선 출마를 위해 당대표직에서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이 대표는 지난 4월 총선을 거치며 당 장악력을 공고히 해놓은 상황이다. 아울러 이 대표 지지율은 압도적인 1위다.
문제는 사법리스크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점이다. 11월 15일 이재명 대표는 공직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선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늦어도 내년 중에 확정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무죄가 나오지 않는 이상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 기준인 벌금 100만 원 이하로 형량이 떨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점친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피선거권을 10년간 박탈당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헌재가 이재명 대표 대법원 선고 전까지 윤 대통령 탄핵 심리를 마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헌재법 51조에 따르면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내란·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형사 재판을 받게 되면, 같은 이유로 소추된 탄핵 심판은 재판부 재량으로 정지될 수 있단 뜻이다.
12월 12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으면서 차기 대권의 꿈을 접게 됐다. 이날로 조 전 대표는 의원직이 박탈됐고, 5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돼 다음 대선 출마도 불가능하다. ‘신3김’은 일제히 조 전 대표를 응원하는 입장을 밝혔다. 조국혁신당 의원들과 지지층을 포섭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비명계 한 의원은 “탄핵이 인용되기 전까지 당내에서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쉽지 않다. 그러면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흔들릴 가능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만약 이 대표가 대선에 못 나가게 되더라도 친명계 안에서 대안을 찾지, ‘신3김’ 등 비명계를 밀어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여권 잠룡들은 탄핵에 부정적인 친윤계와의 관계 설정이 관건으로 꼽힌다. 그동안 친한계에선 차기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누구로 해야 ‘한동훈 대권가도’에 초록불이 켜질 수 있을지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친한계는 친윤계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것을 막고자 했으나, 12월 12일 권 의원은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권 의원은 참여 의원 106명 중 과반인 72표(68%)를 얻었다. 한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달리 당을 장악하지 못한 만큼 대선 출마를 위해 당대표직에서 사퇴한다면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12월 11일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동훈 대표 대선 도전에 대해 “지금은 가능성이 비상계엄 이전보다는 많이 낮아졌다”며 “총선 때의 갈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총선 이후에 전당대회에 나왔을 때는 어쨌든 지금 대통령과의 갈등을 조금 잘 해결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한동훈 대표 체제에 들어와 이게 정리가 되기는커녕 훨씬 더 증폭됐고 결국 파국을 맞았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을 거고 보수층이 대선주자라도 된다고 했을 때 과연 보수층을 다 결집시킬 수 있느냐, 그런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상당히 지금 가능성은 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비상계엄 이후 매일 비상경제회의를 열며 피해 수습책 마련에 힘을 싣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을 향해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연일 내고 있다. 반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탄핵을 반대하며 친윤계와 같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홍 시장은 2016년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며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출마해 득표율 2위(24.03%)를 기록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