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인’도 KILL…TK 부글부글
‘국회법 개정안 파동’을 거치며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여권의 차기주자로 떠올랐다. 유 전 원내대표(왼쪽)와 김무성 대표. 연합뉴스
주말이었던 지난 11일의 일이다. 국회에서는 한일 국회의원 간에 바둑대회가 열렸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당시에는 정책위의장직을 동반 사퇴한 뒤였는데 원내대표 물망에 올라 있었다) 등 바둑 고수들이 참석해 일본 의원들과 한수를 겨뤘다. 그런데 당시 김 대표와 기자들 간의 대화가 뒤늦게 정가에 회자되고 있다. 재구성하면 이런 식이다.
김 대표는 ‘2기 당직 인선’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부터 고민할 거야”라고 했다. “하면 또 금방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취임 1주년을 맞이해 ‘김무성 특집’을 써야했던 기자들로선 충분하지 않은 답변이었고 그래서 일부 기자는 ‘여권 유일의 전국구 대권주자’로서 김무성 대망론을 써야 한다고 김 대표를 어르고 달랬다. 그런데 돌아온 김 대표의 한마디는 이랬다.
“내가 왜 전국구냐. 유승민이 1위라고 하더만.”
당시 한 여론조사기관은 오차범위 안에 있지만 유승민이 김무성을 앞질렀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게 못내 거슬렸나보다. 좀처럼 쏘아붙이지 않는 김 대표의 대답엔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 대표는 자신이 다시 1위를 탈환할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며 그 자리를 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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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차기 당직자는 “비 경상도권 위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당선 안정권인 영남보다는 늘 캐스팅보트지역이 돼 왔던 수도권을 배려해 당직을 주면 수도권 민심도 잘 엿볼 수 있고 그 민심을 또 달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영남권 의원들은 김 대표의 2기 당직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 자리에서 요상한(?) 표현을 써 구설에 올랐다.
“경상도 의원은 동메달이고, 수도권 의원들은 금메달이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
김 대표는 뒤늦게 “수도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성난 영남권, 특히 완전히 뿔이 난 TK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특히나 김 대표는 2기 당직체제를 ‘총선승리+탕평책’을 기조로 했다면서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법한 원내지도부에서는 부산 출신의 김정훈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올렸다. 게다가 불필요한 “동메달” 발언을 해 ‘언사가 가볍다’는 비판을 자초한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묘하게 “유승민을 겨눈 것 아니냐”는 쪽으로 해석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유승민이 물러나자마자 당 지도부가 ‘원유철 추대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니냐.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고, 그러자면 정부의 현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수도권 출신의 4선인 원유철을 그대로 쓰자, 뭐 이런 말이 나왔던 것 같다. 그러면 철저히 영남권을 배제해야 하는데 부산의 김정훈을 떡하니 앉혔다. 이건 누가 봐도 김 대표가 ‘탈 부산 인선’을 해버리면 부산에서 면이 안 서니 편한 김정훈 갖다 앉히고 당직에서는 영남권을 다 빼버린 것 아니겠는가. TK만 죽 쓰다 보니 모든 게 ‘유승민 탓’으로 돌아가는 거고…”라고 말했다.
수도권 승리를 위한 ‘100% 수도권 인선’이 아니라 김 대표가 교묘하게 ‘수도권+부산’ 조합을 만들어 TK를 왕따시켰다는 이야기로 지금 TK정치권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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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는 당 사무총장에 애초 친박계 3선인 한선교 의원을 점지했었다고 한다. 수도권 출신이어서 ‘수도권 승리’ 기조에도 맞고, 친박계지만 자신과 교감이 깊다는 점에서 겉으로는 탕평을, 안으로는 내실을 꾀하기에 한선교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거부권 파동이 일기 직전인 6월초까지 2기 당직 개편의 사무총장 주인공은 한선교였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닌 비밀이었다. 그런데 김 대표는 이를 군 출신의 옅은 친박 3선 황진하 의원으로 바꿔 기용했다.
한선교 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친박계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유승민 사퇴론이 친박계로부터 나왔을 때 한 의원이 자신의 SNS에 “친박은 반성하자”며 ‘친박자성론’을 꺼내든 바 있다.
“10여 명의 우리만이 진짜 친박이라는 배타심이 지금의 오그라든 친박을 만들었다.”
한 의원은 같은 친박끼리 왕따같은 것은 시키지 말자는 취지로 글을 쓴 것 같다. 하지만 친박계의 한선교 비토에는 한 의원이 유승민과 친하기 때문에 싫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친박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정보통은 “유승민이 원래 친박계였잖은가. 한선교와는 오래 전부터 좋은 교감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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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가 그리는 잔인한 계절의 백미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친한 의원들이 이번 당직, 원내직 인선에서 모두 밀린 데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당직도 그렇고 원내직도 이렇게 인선에 뜸이 들어가는 것은 몇몇 흑색분자를 모두 빼버리고 하려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그래도 능력 있는 사람은 일도 좀 주고 해야 하는데 김 대표가 아무래도 친박계에 포위를 당한 것 같다”고 조금은 조롱조로 이야기했다. “내가 친박계에 포위당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했던 김 대표의 말을 살짝 비튼 것이다. 이번 거부권 사태로 드러난 것은 유승민계의 윤곽이다. 유승민 원내부대표단을 꾸린 초재선 의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 의원은 “원유철 원내대표가 배려해줄 것 같지도 않고… 지역구에서 열심히 비비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정가에서는 과거 김무성과 원유철 인터뷰와 연설문이 요약돼 카카오톡으로 전파됐다. 지금 청와대가 이 말을 듣는다면 이들도 불문가지 쫓겨날 발언들이다.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김무성, 2월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당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 당이 당정청 관계의 중심에 서야 한다.”(원유철 1월 정책위의장 출마선언문 중)
정치인의 말 바꾸기는 흔한 일이다. 총선공약, 대선공약도 무르는 상황에서 정치인의 작은 인식 변화나 철학의 부재를 탓할 수만은 없다. 유권자가 기억을 못하는 한 정치인의 오락가락 언행은 계속될 것 같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