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레시피 참 쉽쥬’ 아저씨들 ‘요섹남’ 도전~
백종원의 요리 비결이 담긴 책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A 씨의 아내는 뒤처리가 힘들다며 설거지조차 못하게 했다. 아내의 음식은 언제나 밋밋했다. 사실 A 씨는 준수한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의 자취방은 친구들을 위한 작은 식당이었다. “식당밥보다 맛있다”며 밥값을 내는 기특한 친구도 많았다. 아내가 서운해할까봐 숨겨진 실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아왔다.
어느 날, 식탁에 마늘쫑간장무침이 올라왔다. 아무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 먹었는데 그는 깜짝 놀랐다. 마늘쫑 특유의 매운맛과 달달하고 짭조름한 간장 맛이 더해져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A 씨가 아내에게 “진심으로 맛있다”며 갑작스레 변화가 일어난 이유를 묻자, 아내의 입에선 ‘백종원’이라는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A 씨는 그때부터 백종원 출연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그를 보면서 힘들었지만 화려했던 자취방 시절을 추억했다. 그러다 문득 요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저 없이 책을 주문했다. 제목은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
A 씨의 사연은 온라인 서점 서평에 오른 이야기다. 요즘 남편들의 요리책 서평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부남들이 ‘요섹남(요리를 섹시하게 하는 남자)’에 도전하려고 너도나도 요리책을 사고 있는 것. 특히 서울문화사의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가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들은 “나 같은 남자에게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부터 “여러 남편을 변화시킨 백종원, 당신은 최고!!” 등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결국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는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7월 3주차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8곳에서 판매한 부수 종합)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요리 책은 1만 부를 파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책은 벌써 13만 부를 넘어섰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무려 4만 부가 팔렸다.
백종원이 누군가. 쿡방 열풍이 휘몰아치며 남성 셰프들이 떠오르고 있지만 그 중 단연 으뜸은 백종원이다. 처음 백종원이 소유진의 남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방송에 나와 친근한 사투리로 ‘집밥 레시피’를 소개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백종원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것.
백종원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집밥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계란말이 망쳤지만 뭐 어때유.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백종원 요리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 백종원은 종이컵으로 돼지고기 간 것 세 컵, 간장 여섯 컵, 설탕 한 컵이면 ‘만능 간장’을 뚝딱 만들어낸다. 오징어 초무침도 그리 대단한 음식이 아니다. 무엇보다 백종원은 요리 과정의 실수를 용납한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백종원은 ‘요리는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는 거야. 또 하면 재미있기도 해’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며 “지금껏 요리는 전문적인 영역으로 특화된 측면이 컸지만 백종원은 이를 일상적으로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는 그동안 방송에서 방영된 ‘핵심 집밥 52가지’의 조리법을 담고 있다. 백종원은 책 서두에서 “흔히 요리책을 쓴다고 하면 다른 사람은 모르는 특이한 조리법을 담으려 한다”며 “저는 그 부분을 배제했다.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와 메뉴들로 이 책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집밥 52가지를 식사메뉴, 국물메뉴, 일품메뉴, 반찬메뉴로 구분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제육덮밥. 백종원은 “돼지고기를 먼저 익히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한다. “돼지고기는 삼겹살이나 목살처럼 기름진 부위를 써야 고기 기름이 배어나와 고소하고 맛이 좋다.” “찌개용 국물은 쌀뜨물을 쓰면 맛이 구수하다” 등 책 중간 중간 들어간 백종원의 팁(Tip)도 간결하고 명쾌하다. 요리 초보자를 위해 계량컵과 계량스푼 대신 종이컵과 숟가락을 이용한 점도 돋보인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이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의 40%가 남성이다. 서점 문의전화도 받아보면 거의 전부 아저씨들”이라고 강조했다.
왜 결혼한 남자들이 요리에 열광할까. 이들은 단순히 요리를 한 번 따라 해보는 차원을 넘어 요리 책을 사거나 요리학원 수강을 하는 등 열정적으로 요리 실력을 기르고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맞벌이 부부가 전보다 많아졌다. 가사 문제를 합리적으로 나눌 수밖에 없어 남성들이 가사에 참여하는 범위가 늘어났다”며 “남성들 사이에 ‘기왕 요리를 할 거면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이 퍼지고, 요리의 일상화가 일어나면서 남성들의 참여가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