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 극장용은 OK 성인용은 NO?
영화 <후회하지 않아> 스틸컷. 에로업계와는 달리 극장 개봉 영화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남남 커플 이야기가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요즘은 과거처럼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성인 콘텐츠를 꿈꾸는 게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성적 취향이 그러하듯 각각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지요. 그런 측면에서 이반 포르노는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영역입니다. 사실 극장 개봉 영화에선 이미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영역입니다. 그렇지만 더욱 냉정하고 차가운 사회적인 시선과 심의가 존재하는 에로업계에선 그쪽 영역이 아직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최근 만난 한 에로 제작자가 털어 놓은 고민이다. 과연 국내 시장에서 남성 배우들만 출연하는 에로비디오, 그러니까 게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반 성인물이 통할 수 있을까. 시장성이 떨어진다면 굳이 부담을 갖고 이런 영역에 도전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 이쪽 분야의 시장성은 이미 어느 정도 검증돼 있다는 것이 에로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브로맨스를 다룬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
에로 제작자가 분석한 요즘 불법 성인 콘텐츠 시장의 흐름이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실제로 요즘 분위기는 분명 그러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동영상 촬영이 쉬워지면서 가장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국내 불법 성인 콘텐츠는 개개인이 촬영한 연인들의 몰카다. 수년 전부터 한두 개씩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매달 수십 개의 이런 몰카 동영상이 올라온다. 실제로 평범한 일반인 연인들의 성관계 몰카 동영상으로 보이며, 몰카가 아닌 합의 하에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도 많아 보인다. 대화 내용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동영상이 많은 데다 구체적인 설명,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어떤 여성임을 드러낸 제목의 동영상도 많다. 대부분 연인 관계로 보이는 남녀의 성관계 동영상인데 실수로 유출됐거나 이별한 뒤 한쪽이 악의적으로 온라인에 올린 것으로 추측되는 것들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분명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 아닌가 싶다.
“에로업계에서도 이미 그런 일반인 몰카 형식은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일반인들이 찍은 몰카처럼 보이도록 포장을 한 성인 콘텐츠죠. 다만 일반인들의 그것에 비해 지켜야 할 노출 수위는 지킵니다. 그래야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죠. 다운로드를 받을 때 유료 결제를 해야 하는 일반인 몰카 콘텐츠는 실제 일반인이 아닌 에로배우가 나오는 에로비디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처럼 구별이 어렵지 않은 터라 네티즌들이 귀신같이 다 알고 있어 그런 몰카를 포장한 성인 콘텐츠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유명 웹하드 사이트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합법적인 성인 콘텐츠 시장이 워낙 힘겨운 터라 활발하게 성인 콘텐츠의 유통이 이뤄지는 불법 사이트가 시장 조사를 위한 좋은 모델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반인 몰카로 꾸며진 성인 콘텐츠가 등장한 상황에서 다음 타깃으로 이반 성인물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작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출연료가 높은 여배우는 없고 비교적 출연료가 저렴한 남자 배우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반물이라는 얘길 들으면 남자 배우들도 출연을 꺼릴 수 있겠지만 배우를 구하는 부분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포르노처럼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또 모르지만 에로는 연기를 하는 것일 뿐이니 크게 거부감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회적인 시선입니다. 예전처럼 사전 심의가 문제가 되진 않지만 후폭풍이 더 걱정입니다. 음란물이라고 몰아가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 에로비디오 업계가 사멸할 당시처럼 검찰이나 경찰에서 나서 수사를 시작하면 큰일이니까요. 그래서 한 번 해볼 만하다, 어느 정도 돈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지만 아무도 시도를 하진 못하고 있는 거죠.”
에로업계 관계자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얘기를 자주한다. 꼭 이반 성인물을 만들게 해달라는 측면에서 언급되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유독 성 관련 분야에만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심의 기관, 그리고 수사 기관으로 인해 한국 성인 업계는 수많은 제약에 둘러싸여 성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것. 지나친 표현의 자유 제약이 합법적인 성인 콘텐츠 시장을 힘겹게 하는 사이 불법 성인 콘텐츠 시장만 살찌우고 있다는 게 에로업계에서 들려오는 불만의 아우성이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