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삼수…무한도전! “꼭 가고 싶습니다~”
7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에서 제333차 의무경찰 선발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총 6103명이 지원했으나 이중 의경이 될 수 있는 합격자는 460여 명뿐이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7월 30일 오후 1시께,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앞으로 100m가 넘는 줄이 이어졌다. 30℃를 웃도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 채로 책장을 넘기는 청년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몇몇은 지인과 통화를 하며 가벼운 농담으로 낯선 긴장감을 풀고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제333차 의무경찰 선발시험을 기다리는 응시자들이었다.
오후 1시 20분, 시험전형이 진행되는 기동본부 2층 강당으로 응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로부터 약 20분 후 응시자들은 1차 관문인 인·적성 시험을 시작했다. 바닥에 열을 맞춰 앉아 화이트보드를 책상삼아 문제를 풀어나가는 뒷모습에서 합격을 향한 열의가 느껴졌다. 일찍 답안지 작성을 끝내고 가볍게 목 스트레칭을 시작한 장수생 기운을 풍기는 응시자가 있는가 하면, 시험 종료 직전까지 답안지를 작성하지 못해 감독관의 지적을 받는 응시자도 있었다. 수능시험 현장과 다를 바 없는 긴장감이었다.
인적성이 끝난 후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체력 시험이 시작됐다. “체력시험은 합격 혹은 보류입니다. 보류 나오면 번복 못합니다. ‘저 원래 체교과(체육교육학과) 출신이라 윗몸일으키기 100개 합니다’ ‘저 멀리뛰기 국가대표라서 원래는 잘 뜁니다’ ‘저 대통령 아들입니다’ 이런 핑계 안 통합니다. 보류 나오면 그냥 집에 갑니다.” 7열종대로 자리 잡은 청년들 앞에서 현장 감독관이 유의 사항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응시자들의 얼굴엔 진지함이 가득하다.
체력시험 기준은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각각 1분에 20개, 제자리멀리뛰기는 160cm를 넘어야 한다. 비교적 쉬워 보이는 기준에 ‘그 정도야 누구나 하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윗몸일으키기나 팔굽혀펴기는 지휘관의 구령에 속도를 맞춰야 한다. 빨리하거나 늦게 하면 탈락이다. 5~6가지 주의사항이 부여된 ‘정자세’에서 벗어나도 경고 없이 곧바로 보류 판정이다. 까다로운 기준 탓에 윗몸일으키기 시험이 시작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탈락자들이 속출했다.
윗몸일으키기에서 고배를 마신 수험자 김 아무개 씨(21)는 “의경시험 선발시험은 2번째다. 윗몸일으키기 18개째에서 뒷머리가 매트에 닿지 않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7명이 한 조였는데 그중 2~3명은 떨어지는 것 같다”며 “아무래도 근무조건이 좋다보니 의경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 시험을 보러 왔는데 친구는 아직도 시험을 보고 있다. 될 때까지 매달 지원을 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333차 의무경찰 선발시험에는 6103명이 지원했다. 지원자가 워낙 많다보니 인·적성 시험부터 면접까지 일련의 전형을 단 며칠로 소화할 수 없어 선발시험은 오전 오후로 나뉘어 일주일간 진행된다. 하지만 이중 의경이 될 수 있는 합격자는 460여 명뿐이다. 13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어야 의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군내 폭행사망사고인 ‘윤 일병 사건’ 이후에는 평균 경쟁률이 20 대 1까지 치솟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의무경찰계 황대진 경사는 “2010년 이전만 하더라도 전단지를 들고 대학교를 찾아가 의경 모집 홍보를 했다. 2011년부터 정화정책을 펼치면서 대원들의 복지와 경직된 수직문화를 바꾸면서 지원자가 늘기 시작해 2013년을 기점으로 지원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아무래도 주기적인 외출과 외박이 가능하고, 충분한 자기계발시간이 있다는 것이 지원자가 느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경 선발시험 재수생·삼수생은 기본, ‘의경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입대를 앞둔 21~25세 청년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경스터디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의경 인·적성시험과 면접을 대비하는 서적이 출간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4번 도전 끝에 지난해 11월 의경이 될 수 있었다는 조용우 대원(22)은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의경 선발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친구 3명과 함께 모여 정보를 나누고 함께 체력시험을 준비하는 식으로 의경 선발시험을 준비했다. 친구 1명은 재수를 해서 의경이 됐고, 나도 5개월 정도 도전을 계속했다. 결국 의경 선발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포기한 친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 대원은 “의경이 자기계발시간이 보장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고, 지난해 육군 가혹행위 관련 뉴스를 보고 이를 우려하신 부모님이 육군 대신 의경을 권유한 이유도 있었다. 의경을 마치면 경찰 특채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경찰이 장래희망인 동기들이 많이 도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의경 선발시험 경쟁률이 높다보니 선발시험장에는 5수생, 6수생 심지어 10수생 수험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반복해서 시험을 치르는 응시자들이 늘어나다보니 면접관이 얼굴을 기억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황 경사는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이전에 온 응시자를 다시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준비해서 왔을까, 얼마나 더 노력을 했을까하는 부분을 보게 된다”며 “실제로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히 분석해 달라진 모습으로 오는 응시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응시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의경 선발시험 경쟁이 과열되자 올해 연말부터는 카투사(주한미군 부대 근무 한국군)처럼 의경도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의경을 선발할 때 기존 면접 과정을 폐지하고 추첨으로 판가름하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의경고시’가 사라지는 셈이다.
황 경사는 “우수한 병력이 어느 한 곳으로 몰리지 않고 균등하게 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봤다”며 “반복되는 탈락으로 시간 낭비를 하거나 마음 졸이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조금은 해소 될 것으로 본다. 카투사처럼 추첨제로 바뀐 이후 경쟁률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면접의 부담이 줄어들어 경쟁률이 계속 높게 유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입시전쟁 뺨치는 입대전쟁 불경기 취업난 심화 ‘빡센’ 해병대도 9 대 1 청년들에게 대학입시와 취업만큼 어려운 것이 ‘입대’라는 말이 있다. 병무청민원상담소 페이스북에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부름에 응하려 했으나 부름을 취소하시네요’ ‘왜 가겠다고 외치는 사람을 막습니까’ ‘해도 해도 떨어지니 가고 싶은 생각조차 안든다’라는 푸념 섞인 댓글이 줄을 잇는다. 의무경찰 선발시험에 응시하려는 지원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최준필 기자 병무청 실시간 모집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8월 입영을 기준으로 육군 기술·행정병은 6264명 모집에 3만 6785명이 지원해 5.9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형제나 친구와 함께 군에 갈 수 있는 ‘동반 입대병’은 470명 모집에 1만 3448명이 지원 28.6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동반 입대는 합격만 하면 신청한 지 두 달 안에 입대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공군과 해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공군은 일반·기술병 1465명 모집에 1만 2567명이 지원해 8.6 대 1의 경쟁률을, 해군의 경우 872명 모집에 7178명이 지원해 8.2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악명 높은 해병대 입대 경쟁률도 올해 평균 9 대 1을 넘어섰다. 2년 전보다 2배 정도 높아진 경쟁률이다. 오는 9월 입대 희망자를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는 경쟁률이 8.3 대 1에 달했다. 군 입대가 힘들어지자 원하는 날짜에 입대가 가능한 모집병 지원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분단국가에서 왜 이렇게 군대 가기가 어려운 일이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불경기와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복학에 유리한 시기와 자기계발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곳에 청년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주요 입영 대상자인 1991~1995년생 남성이 다른 해보다 출생자가 많은 것도 입대 경쟁률이 높아진 이유다. 병무청 관계자는 “제대 후 바로 학업에 복귀할 수 있는 시기인 3월 입대와 그렇지 않은 9월 경쟁률이 3배가량 차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9월 경쟁률이 낮은 것도 아니다. 9월 입대 예정인 4명 뽑는 육군 39사단 야전공병에는 377명이 몰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무청은 신체검사 기준 강화와 고교 자퇴 이하 학력자 보충역 처분 등 고육지책을 통해 연 2만 8000여 명을 보충역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내년에도 고교 중퇴, 중졸 학력자 중 신체등위 1~3급인 사람은 보충역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 제도 시행으로 입영 대기 기간이 줄어들어 어느 정도 입대 지원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배] |
경찰홍보단 급부상 까닭 연예병사 사라지자…스타들 우르르 지난 2000년 1월 창단된 ‘경찰홍보단’은 대학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한 학생들을 비롯해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 관련 전공자들을 주로 뽑는다. 연예병사들에 비해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경찰홍보단은 지난 2008년께부터 배우 조승우와 류수영이 경찰홍보단 ‘호루라기 연극단’에서 활동하면서 인지도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경찰홍보단으로 활동 중인 최효종. 의경에 지원하는 연예인들은 꾸준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제대한 배우 이제훈과 지난 7월 29일 제대한 가수 허영생 외에도 개그맨 최효종 등이 경찰홍보단으로 활동하다 최근 제대했다. 최근에는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최강창민이 의경에 합격하면서 복무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이 근무를 원하는 지역을 신청할 수 있고 정기적인 외박과 외출이 허용되며, 연기나 공연 등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닌 경찰홍보단은 연예인들에게도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2013년 7월 연예병사 제도가 폐지되고 경찰홍보단 입대를 희망하는 연예인이 늘어나면서 경찰홍보단은 ‘제2의 연예병사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연예병사제도가 폐지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해 초, 4명의 연예인이 경찰홍보단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홍보단 홈페이지에는 항의 글이 폭주하기도 했다. 경찰홍보단에서 지난달 제대한 허영생. 경찰홍보단이 ‘연예인 특혜’ 논란에 휘말리면서 이에 부담을 느낀 몇몇 연예인들은 의경에 합격하고도 입대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배우 최진혁은 지난해 3월 서울경찰홍보단에 지원해 오디션 합격 후 인·적성 검사와 체력검사, 면접 등 의경시험을 통과했지만 고민 끝에 의경 입대를 최종 취소하고, 육군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 배우 유아인도 경찰홍보단 오디션에 지원했다는 사실만으로 무분별한 공격과 악플(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의경 시험에 불참해 지원을 포기했다. 연예병사제도가 폐지된 결정적인 이유는 ‘휴가와 외출 남발’과 같은 특혜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찰홍보단은 복무 규칙이나 휴가에 있어 연예인 특혜가 없다는 것이 경찰홍보단의 입장이다. 경찰홍보단 관계자는 “경찰홍보단은 의경시험 선발 전형과 똑같이 진행된다. 또 2개월에 3박 4일 정기 외박과 주 1일 외박 및 외출 등이 허용되는데 이는 경찰홍보단과 의경 대원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기준”이라며 “복무지 이탈과 특혜를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연예인이 복무했지만 특혜 문제가 불거진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