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해결 대가’ 의혹에 ‘총선 앞둔 음해’ 시각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받았던 후원금 중 일부가 뒤늦게 문제가 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지난 2012년 코엑스몰 소상공인들이 속한 코엑스몰상인연합회(상인회)의 최대 현안은 리모델링이었다. 무역협회가 코엑스몰 전체를 손보는 3000억 원 규모의 대형 리모델링을 앞두고 기존 임차인들을 모두 내보낼 것으로 알려진 이유에서였다. 생계가 달린 문제를 앞에 두고 상인회는 비상대책위를 꾸렸다. 일단 비대위는 운영자금을 모으기 위해 회원인 소상공인들로부터 돈을 받았고, 십시일반 모인 돈은 2억 원에 달했다. 비대위는 이 돈으로 리모델링 이후에도 계속 영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한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소송카드를 접은 비대위가 내놓은 대안은 집회와 시위였다. 무역협회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걸고 대대적으로 시위에 나설 날짜도 정했다. 또한 비대위는 백방으로 정치권에 도움도 요청했다. 비대위는 청와대, 국무총리실,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요 기관과 국회의원 의원실에 민원을 넣으며 사정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별다른 도움은 받지 못했다.
그때 비대위 임원의 지인이 자신의 후배인 임 전 실장에게 가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임 전 실장이 소상공인 정책에 관심이 많았고 영세시장 등을 도왔던 전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6월 10일경 무작정 임 전 실장 사무실을 찾아간 A 씨와 상인들은 임 전 실장에게 당시 코엑스 상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에 대해 임 전 실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A 씨 이야기를 듣고 무역협회가 일방적으로 상인들을 내쫓는 방식의 리모델링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해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A 씨 등을 만난 후 임 전 실장은 대학과 행정고시 후배인 안현호 전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임 전 실장은 “리모델링 이후 다 나가야하는 게 맞는지 물었고 안 전 부회장이 ‘그게 아닌데 최근 왜 그런 소문이 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안 전 부회장에게 소통을 안 해서 그렇다. 책임 있는 사람이 설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안 전 부회장은 2012년 6월 13일경 대규모 시위를 이틀 앞두고 비대위 간부들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A 씨는 안 전 부회장이 무역협회와 상인회 사이의 오해를 잘 풀어줬다고 말했다. A 씨는 “안 전 부회장이 처음부터 내쫓는다는 계획은 없었고 오히려 리모델링 기간 동안 영세 상인들의 수입이 없음을 걱정해 그랜드 오픈 1년 전부터 영업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임차인들은 ‘기존임차인 특별분양’ 제도를 통해 리모델링 후 일정 몫을 할당받는 데 성공했다. 상인회 중 약 100여 명이 서류심사를 통해 다시 코엑스몰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안 전 부회장과 면담을 마치고 1주일쯤 뒤 비대위는 임 전 실장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는 것을 알게 됐다. A 씨는 “수많은 곳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거들떠 본 곳조차 없었는데 유일하게 관심을 가져준 임 전 실장이 선거에 나간다고 하니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6월 20일 비대위는 임 전 실장 후원회 계좌에 5000만 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등장한다.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은 내쫓길 위기에 몰린 비대위가 계획 변경을 목표로 안 전 부회장과 친분이 있는 임 전 실장을 로비 대상으로 삼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경선을 앞둔 임 전 실장 후원회 측에서 후원금 명목으로 5000여만 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일요신문>은 상인회 및 임 전 실장 취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복기했다. 상인회는 지난 2012년 6월 20일, 22일 두 번에 걸쳐 법인 명의로 5000만 원을 임 전 실장 후원회에 납부했다. 하지만 후원회는 정치자금법상 법인 명의의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 더군다나 한도는 1000만 원이다. 이에 후원회는 받은 돈을 반환조치 한다. 그 후 7월 6일 상인회는 상인들 개인명의 5명, 각각 500만 원씩 나눠서 다시 후원회로 입금한다. 이어 7월 9일엔 또 다른 상인들 명의로 2500만 원을 나눠 후원했다. 총 5000만 원을 임 전 실장 후원회에 납부한 셈이다.
만약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여러 개인을 동원해 고액의 후원금을 나눠서 입금하는, 속칭 ‘쪼개기’에 해당한다. 이는 공소시효 6개월인 선거법으로는 처벌받지 않지만 공소시효가 5년에 해당하는 정치자금법으로는 처벌받을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만약 이 같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전형적인 쪼개기 방식이며 사실 입증 시 처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이 돈을 목적으로 무역협회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계획 변경을 시도했다면 이는 더 큰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대외무역법상 한국무역협회 임직원도 수뢰와 제3자 뇌물제공 등을 다룰 때는 공무원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무원인 무역협회 부회장을 상대로 임 전 실장이 돈을 받고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알선수재에 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전화 한 통의 아주 소극적인 시도도 알선수재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인회 소속 상인들 중에서도 당시 상황을 로비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 상인은 “당시 다 나가게 생겨서 생계가 끊기게 생겼으니 급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시위도 하고 로비도 하고 정치권에 도움도 요청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전 실장은 이 같은 주장들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일축한다. 임 전 실장은 “상인회가 후원한 돈은 소상공인에 관심이 많은 모습을 (상인회가) 좋게 본 것뿐”이라면서 “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후원회 자금이 부족한 적이 없는데 5000만 원을 급하게 달라고 했겠나. 남은 후원회 자금은 국고에 귀속되는 법 때문에 후원회 계좌가 충분해지면 미리 입금을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터무니없는 주장”라고 반박했다. 이어 임 전 실장은 “상인회에 돈이 들어온 것을 알고 바로 돌려줬다”며 “상인회 개인 명의나 부인 명의로 입금하면 상인회 돈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임 전 실장과 친분이 있는 여권 관계자도 로비라는 말은 터무니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MB정부 때 최고 실세 중 한 명이었던 임 전 실장이 마음만 먹으면 개입할 이권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5000만 원 때문에 로비를 하겠나”라고 반문하면서 “임 전 실장이 소상공인에 관심이 많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런데 이번엔 어려운 사람 이야기 한 번 들었다가 좋은 사람이 터무니없는 의혹에 걸렸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후원금은 용처와 내역을 다 보고해야 하고 다시 인출해 ‘인마이포켓’도 할 수 없다. 부족하지 않은 후원금을 불법적으로 받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후원금으로 로비했다는 것은 소설에 불과하다”며 “후원금 500만 원이라고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국회의원들 500만 원씩 분할 후원금 받은 건 엄청나게 많다. 그렇게 따지면 100%가 다 걸린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임 전 실장과 관련된 이러한 의혹이 뒤늦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놓고 내년 4월 총선과 연관 짓기도 한다. 출마를 노리는 임 전 실장을 주저앉히기 위한 특정 세력의 공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노리고 있는 임 전 실장의 지역구 공천 경쟁 상대가 유포한 음해 공작이 아닐까 싶다”고 귀띔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