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음악 측면 제대로 조명받아야”
안익태 기념음악회의 지휘를 맡는 정치용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은 당연히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 받아야 한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러한 곡들을 연주하고 보급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안익태 재단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매년 개최되어 온 안익태 음악회에 이미 세 차례나 지휘자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재단 측으로부터 의뢰를 받게 돼, 흔쾌히 참여하게 됐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특히 광복 70주년, 안익태 선생 서거 50주년, 애국가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음악회는 아주 특별하다.”
―우리 음악계에 있어서 안익태 선생의 업적과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안익태 선생은 한국 사람으로서 최초로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지휘자이자 음악가다. 게다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뛰어난 재능을 떨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로, 작곡 역시 당시 큰 조명을 받을 만큼 역량이 있었던 분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들어온 지, 200년이 채 안됐다. 지금이야 세계적인 한국의 음악가가 굉장히 많아졌지만, 당시 안 선생은 정말 유일했다. 선구자셨다. 또한 해방 이후 어렵고 힘든 시기에, 안 선생은 틈틈이 한국에 들어와 국내 교향악단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셨다. 더군다나 우리의 ‘애국가’를 빚어내시지 않았나.”
―안익태 선생은 1935년부터 5년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대가 슈트라우스로부터 사사했다. 정 교수 역시 그곳에서 유학생활을 하셨다.
“내가 유학했던 1980년대 만해도 그곳에선 내가 ‘한국사람’이란 개념조차도 없었다. 내가 얘기를 안 하면 그냥 일본이나 중국 사람으로 알 정도였다. 입학할 때, 면접관이 묻더라. ‘(당신이 졸업한) 서울대라는 곳이 진짜 있는 학교인가’. 그 정도로 어려웠다. 내심 황당하면서도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나를 포함한 동양인은 음악적 재능을 떠나서 서양 음악의 바탕이 그들보다 얇았다. 그 부분에 대한 교수들의 푸시(push)가 많았다. 현지에서 전공에 대한 스트레스, 특히 나의 부족함에 대한 고민이 상당했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고민은 당시 안익태 선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훨씬 심했을 것이다.”
오는 8월 24일 개최되는 안익태 음악회는 한국 클래식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는 안익태 선생을 기리는 자리다. 어찌 보면, 정치용 교수는 이번 음악회의 지휘자로서 최적임자라 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평소에도 우리 클래식 음악계에서 ‘창작 클래식’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보급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 인사다. 특히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안익태 음악회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한국 클래식의 또 다른 거장인 윤이상 선생의 곡을 국내에 앞장 서 보급하기도 했다.
한국 클래식계에선 그의 독특한 행보를 두고 ‘장르불문’, ‘지역불문’으로 규정한다. 워낙 창작을 위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곳곳에서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동양의 척박한 토양에서 ‘창작 클래식’의 지원과 보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클래식 마니아들도 익숙한 본토의 클래식 레퍼토리 외에 낯선 국내 창작곡을 들으러 오는 이는 많지 않기 때문. 그럼에도 정 교수가 이 부분에 힘써 온 이유는 무엇일까.
“난 한국인이고, 한국 음악가다. 안익태 선생이나 윤이상 선생과 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은 당연히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에 친숙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러한 곡들을 연주하고 보급하려고 노력했다. 또 안 선생이나 윤 선생 두 분 모두 음악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과 논란이 있지만, 정말 순수한 음악적 측면에서는 제대로 조명을 해야 한다. 다른 뜻은 전혀 없다.”
―이번 음악회에 중요한 이벤트가 있다. 공개 모집한 순수 아마추어 ‘국민 합창단’이 무대에 선다.
“아주 좋은 시도다. 일단 합창은 악기가 아닌, 노래로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앉아서 보는 것 보단, 스스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이렇게 특별한 자리에 정말 ‘돗자리’를 제대로 깔아주는 꼴이다. 그저 객석에 앉아서 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뜻 깊은 이벤트다. 일본만 하더라도 이러한 아마추어 합창단들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3년 전, 나고야에서 할아버지·할머니 200명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독일어로 다 외워서 완창하는 것을 봤다. 깜짝 놀랐다. 우리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일반인들이 예술적 단계까지 경험할 수 있는 합창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안익태 음악회는 특별한 기획이다.”
―이번 음악회가 클래식 대중화의 한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 클래식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진정한 대중화가 아니다. (앞서의 합창단 참여처럼) 본인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 클래식이 얼마나 자기에게 좋은 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대중화’다. 클래식은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1975년 베네수엘라의 한 경제학자가 자국의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 고안한 것으로, 베네수엘라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 및 오케스트라 시스템.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102개의 청년 오케스트라와 55개의 유소년 오케스트라가 운영되고 있으며 청소년 비행 문제 예방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처럼 의도만 좋다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아무런 체계 없이 ‘그저 한 번 해보라’며 예산만 쓰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안익태 음악회는 어떤 의미인가. 독자들에게 관람을 추천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얘기에 해답이 있다. 이번 음악회에 아마추어로 구성된 ‘국민합창단’이 선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안 선생의 작품을 합창단 ‘입’으로 노래한다. 독자와 관객들께서는 이번 무대를 통해 ‘나도 저 무대에 설 수 있고, 다음에는 직접 올라가 보자’는 마인드를 갖고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무대와 음악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음악적으로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지휘자 정치용은 누구 1957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는 국내를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정 교수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앙상블을 조직해 국내외 현대작품 다수를 초연했다. 198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그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대학에서 미하엘 길렌에게 지휘를 배웠으며, 1990년 오스트리아 방송 협회가 주관한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며 이 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했다. 1993년 한예종 설립 당시부터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 양성에 힘쓴 정 교수는 원주시향 수석지휘자, 서울시향 단장 겸 지휘자, 창원시향 상임지휘자를 거치며 왕성한 지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한국 지휘자 협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한] |
‘나의 노래 애국가’ 안익태 기념 음악회 일시·장소 : 8월 24일 저녁 8시·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 : 안익태 작품과 베토벤 9번 등 축하공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