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 나홀로 폭주…아군까지 등돌린다
“아무리 총리라지만 국민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밀어붙이는 횡포는 용서할 수 없다.”
일본 민심이 아베 정권에 단단히 뿔났다. 안보 법안의 강행 처리에 따른 후폭풍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것. 한때 80% 가까이 치솟았던 아베 내각 지지율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최근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 지지율은 35%로 집계됐다. 2012년 12월 아베 2차 내각 출범 이후 역대 최저치다. 반면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51%를 기록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친아베’ 성향을 보여온 <산케이신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베를 지지한다”는 응답 비율은 39.3%로 조사됐으나 반대 여론은 무려 52.6%에 달했다. 극우매체 조사에서도 이처럼 반대 여론이 더 높게 나왔다는 것은 민심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대로 가면 9월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파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 아베 총리는 “지지율 조사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측근들의 말에 의하면 “애써 태연한 척하는 것일 뿐 본심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에 대해 <주간겐다이>는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무투표’ 재선을 통해 장기집권을 이뤄낼 전략을 세웠으나 당내에서 지지율 하락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정권 연장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현재 아베 총리는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겠다며 TV 출연을 하는 등 설득 작업에 나선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인터넷방송에도 여러 차례 등장해 민심을 돌리려고 애를 썼지만, 동영상 재생 수는 불과 1만 건 정도. 비인기 애니메이션 이하의 시청자밖에 모으질 못했다.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인기회복을 시도하면 할수록 국민들은 자신들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 생각해 반발심이 강화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일본 열도 전역에서는 ‘전쟁 반대’ ‘아베는 물러나라’ 등 손 팻말을 든 항의 집회로 들끓고 있다. 특히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실즈·SEALDs)’과 같은 학생 단체들이 집회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간 정치에 무관심했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反)자민당 풍조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다.
지난 6월,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 수순 중 하나로 선거권 연령을 ‘만 20세 이상’에서 ‘만 18세 이상’으로 낮춘 바 있다. 여기에는 ‘인터넷 우익에 힘입어 아베 총리가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는 계산이 이면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주간겐다이>는 “어쩌면 이것이 반대로 아베 총리의 발등을 찍는 ‘화근’이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일본 전역이 ‘반아베’ 집회로 들끓고 있다. 사진은 ‘전쟁하지 않는다’는 손팻말을 든 집회 참가자들. AP/연합뉴스
젊은이들의 항의 집회에는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합류해 갈수록 거세지는 모습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거나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등 ‘안전보장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어머니 모임’이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여론을 간파한 주간지들은 연일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기 바쁘다.
불과 몇 개월 사이, 아베 정권을 바라보는 양상은 격변했다. 이와 관련, 자민당의 중견의원은 “대부분의 자민당 의원들은 아베 정권의 인기 때문에 부화뇌동하고 있었을 뿐, 사실 총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의원이 많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총리의 철권과도 같은 독재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제방이 붕괴된다면 일제히 달아나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일본 주간지들은 아베 총리의 등에 비수를 꽂을, 차기 총리 후보들도 점치고 있다. <주간겐다이>에 의하면, 선봉에 나선 이는 자민당 내 2인자이자 아베 총리의 최대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 지방창생장관이다. 이시바는 5월까지만 해도 “내가 꼭 총재가 돼야 한다는 마음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사실상 총재 선거 불출마를 시사했으나 어쩐 일인지 요즘엔 갑자기 불출마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한다.
이시바는 2007년 아베 1차 내각 당시에도,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을 때 “총리가 퇴진해야만 한다”며 아베 총리를 궁지에 몰았던 인물. 이번에도 지지율 하락을 이유로 아베 총리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음으로 유력한 후보는 야당시절 자민당 총재를 지낸 바 있는 다니가키 사다카즈 간사장이다. 정치평론가 아리마 하루미는 “안보 법안 문제로 아베 총리가 물러날 경우 당내에서 인기가 높은 다니가키 간사장이 가장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또한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고이즈미 신지로 정무관과 노다 세이코 의원도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다. 특히 <주간포스트>는 노다 세이코 의원과 관련해 “첫 여성 총재·총리라는 점에서 깜짝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니카이 도시히로 총무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니카이는 당내 제5위 세력이지만, 계파를 넘어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평가다. 니카이가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판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 실제로 니카이는 언론 앞에서는 “9월 총재 선거는 아베 총리의 재선”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자민당 내에서는 명확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카드’를 남겨 놓겠다는 심산이다.
일각에서는 “정권 최대 위기를 맞은 아베 총리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경제와 외교정책을 통해 다시 한번 지지율 반전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 ‘첩첩산중’ 악재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당장 8월에는 전후 70년 담화와 국민들의 반대가 높은 원전 재가동도 예정돼 있다. 지지율이 더 추락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자민당 내에서조차 지지율 하락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과연 아베 총리는 정권 연장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