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딩스’ 쥐는 자가 ‘왕좌’ 쟁취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작은 사진)의 두 아들 신동주 전 부회장(왼쪽)과 신동빈 회장(오른쪽) 간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배경 사진은 제2 롯데월드 전경. 일요신문 DB
# 아버지만 바라보는 큰아들
전세기편으로 한국을 떠난 신격호-신동주 부자가 갑자기 일본 도쿄의 롯데 본사에 나타나 회사 이사 7명 중 차남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6명을 가리키며 해임하라고 지시했다는 이른바 ‘손가락 해임’ 사건이 터진 건 지난달 26일. 하지만 일본 롯데를 장악한 신동빈 회장은 마치 준비됐다는 듯, 다음날 아버지의 이사해임으로 맞서 ‘쿠데타’는 일일천하로 끝나게 된다.
이번 싸움이 신동빈 대 반 신동빈 진영의 싸움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2라운드는 동생을 패륜과 무능으로 몰아가기 위한 여론전.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아버지의 서명이 든 동생 해임지시서와 함께, 동생이 중국 사업에서 1조 원의 손실을 본 사실을 숨긴 게 드러나 아버지가 격노해 손찌검을 했다는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하지만 이 여론전은 도리어 역풍을 맞았다. 0.5%밖에 개인 지분이 없는 신 총괄회장의 해임지시서를 내세울 정도로 롯데가 봉건지주 수준의 경영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말을 전혀 못해 일본어로 인터뷰하고 이른바 ‘해임지시서’에 신격호 총괄회장이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라는 일본 이름으로 서명한 사실은 가뜩이나 일본에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반면 1라운드에서 아버지의 해임지시에 아버지 해임으로 맞선 신동빈 회장은 2라운드에서도 고강도 역습으로 맞섰다. 일본에 머물며 지분확보 등 지지기반을 다진 뒤, 국내에 들어와 “해임지시서는 효력이 없다”는 일성을 형과는 달리, 기자들 앞에서 한국어로 한 것. 롯데호텔 34층에서 이뤄진 아버지와의 만남은 단 5분 만에 성과 없이 끝났지만, 이 직후 그룹의 숙원인 잠실 제2롯데월드 123층짜리 빌딩 공사 현장을 찾았다. 이어 이튿날엔 오산의 그룹연수원을 찾아 신입사원들에게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밝은 얼굴로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진통”, “곧 해결될 것”이라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현장 경영에 나선 모습이 이어졌다.
때맞춰 측근들에게서는 ‘세키가하라 전투’식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 회장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정국 주도권을 놓고 일본의 영주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과 이시다 미치나리의 서군으로 나뉘어 벌였던 결전. 이 싸움의 승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메이지 유신 때까지 250년 이상 이어진 에도막부의 기반을 마련했다.
동생의 결기와 달리,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일본어 인터뷰와 낙후한 지배구조, 신 총괄회장 건강이상설이 겹쳐 역풍을 맞자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국내에 머물며 침잠하고 있는 상태. 법적 효력도 없이 비판만 산 아버지의 해임지시서와 삼촌-이복누나-6촌형으로 이어지는 친족동맹 외엔 ‘무기’가 없고 대처에 미숙해 2라운드에서도 또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 노조위원장단도 신동빈 지지
실제 회장 취임 4년 만에 인수·합병과 상장으로 한국 롯데를 고속 성장시킨 신동빈 회장은 이미 회사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책사였던 이인원 부회장도 ‘신동빈의 사람’으로 넘어온 상태. 일본에서도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과 ‘2인 3각’의 한 몸이 되면서 지난해 말 형을 밀어낸 데 이어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 자리까지 꿰찼다.
일본인맥도 동생이 형을 압도하는 상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재미교포와 결혼한 반면, 신동빈 회장은 일본 타이세이건설 부사장의 차녀인 시게미쓰 마나미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에 중매와 주례를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서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와 전후 일본 보수정치의 거두이자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참석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 여기에 신 회장은 6월에도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의 관저를 찾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가깝다. 이런 인맥이 일본 롯데 장악과 아버지의 일본 책사 쓰쿠다 사장의 지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이미 장악한 한국 롯데에서는 사장단은 물론 노조위원장단까지 신동빈 회장 지지를 선언했고 쓰쿠다 사장은 도쿄의 한국 특파원들을 불러 역시 신 회장 지지는 물론, 신 총괄회장 건강 이상설까지 확인한 상태. 특히 쓰쿠다 사장은 이 자리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히로유키(신 전 부회장 일본이름)’로, 신동빈 회장은 한국 이름으로 부르는, 계산된 심리전을 펼치기도 했다.
#416개 순환출자 고리로 엮여
42개 계열사 지분을 가진 이 순환출자고리의 중심 호텔롯데를 일본 롯데홀딩스와 신격호 총괄회장 소유로 추정되는 12개의 투자회사가 99% 지분으로 지배하는 구조다. 결국 ‘그룹지배의 왕도’는 일본 롯데홀딩스로 귀결된다.
구조가 너무 복잡해 롯데그룹을 쪼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외부에 알려졌던 ‘일본은 형-한국은 동생’이라는 체제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다. 동생이 형을 밀어내고 한·일 원톱을 추구했던 근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롯데홀딩스나 고준샤의 정확한 지배구조는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형제는 지금 이 회사의 지분우위에 서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중이지만 어느 쪽이 ‘세키가하라의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 여기에 주주총회 뒤에도 법정싸움도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양국에 100개 이상의 계열사와 100조 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롯데의 지배권을 둘러싼 막장극은 길어질 전망이다.
이세경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