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안 내고 누리려다 ‘꼼수’만 들통
박근혜 대통령 외사촌 육해화 씨와 남편 이석훈 씨의 장남이 소유했던 서울 강남의 고급 빌라. 아들 이 씨는 법무부가 항소한 직후인 지난해 10월 25일 해당 빌라를 10억여 원에 매각해 약 3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해 9월 25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 내용이다. 재판부는 “이들은 체납세액의 일부를 변제하겠다는 의사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며 “이석훈의 체납세액은 16억 7000만여 원, 육해화의 체납세액은 8억 5000만여 원이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을 인정해 법무부의 출국금지가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국세청이 매년 공개하는 고액체납자 명단에 따르면 이 씨와 육 씨의 국세 체납일은 1991년이다.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고액 체납자다.
대통령의 외사촌에다 재벌급에 속하는 부부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육해화 씨는 육영수 여사의 오빠 육인수 전 국회의원 딸이다. 이석훈 씨는 일신산업 창업주이자 홍익학원을 설립한 고 이도영 회장의 차남이다. 이 전 회장은 청주문화방송, 충청일보사를 잇따라 창립하거나 인수한 지역 재벌이었다. 이 씨도 충청일보 사장과 청주MBC 사장을 지냈다.
이석훈 씨는 지난 1991년 일신산업 정리 과정에서 생긴 법인세와 근로소득세 등 16억 7000만여 원을 체납했다. 육해화 씨는 일신산업과 관련한 근로소득세 체납세액이 8억 5000만여 원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이 씨 부부가 세금을 내지 않자 법무부는 국세청의 요청을 받아 2008년 이 씨에 대해 ‘출국금지’ 카드를 빼들었다. 2년 뒤 육 씨에 대해서도 같은 처분을 내렸다. 이 씨 부부가 수십억 원을 체납하면서도 해외 출국을 거리낌 없이 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할 때마다 이 씨와 육 씨는 소득이 없어 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이들 부부는 출국금지를 당하기 전까지 수십 차례 해외를 드나들었다. 그래도 이 씨 부부가 꿈쩍하지 않자 법무부는 출국금지기간을 계속 연장했다. 출국금지가 계속되자 지난해 4월 이 씨 부부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출국금지처분취소’에 대한 소장을 냈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해외 체류비와 항공비를 고려한다면, 돈이 없어 세금을 내지 못한다는 이 씨 부부의 소송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재판에서 첫 번째 쟁점은 이 씨 부부의 ‘세금 체납 책임’ 여부였다. 이 씨는 “내가 체납한 국세는 일신산업의 법인세다. 2차 납세의무자이기 때문에 1차 책임은 없다”며 “양도소득세도 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발생한 것으로 1차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신산업은 1992년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가 2002년경 폐업했다. 1차 납부의무자인 일신산업이 체납한 금액을 자신이 납부할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육 씨 역시 “당시 내가 일신산업의 주주라서 국세를 체납했다지만 이 회사의 주주가 아니라는 판결을 이미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2002년 10월 육 씨는 서울지방법원에 주주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를 구해 2003년 1월 승소, 일신산업의 주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재판 과정에서 돈이 없어서 세금을 못 낸다는 이 씨 부부의 행적과 ‘재력’이 드러났다. 이 씨는 2002년 1월부터 2007년 5월 사이 47회, 육 씨가 2002년 8월부터 2010년 9월까지 31회에 걸쳐 해외에 다녀온 것이다. 심지어 육 씨는 2005년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이 아무개 씨에게 유학자금 명목으로 5000만여 원을 송금했다. 아들 이 씨는 처와 함께 2005년부터 2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1심 법원은 “해외에 다녀왔지만 체류기간이 짧다. 당시 육 씨의 딸과 아들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빈번한 해외 출국은 납득할 만하다”며 “현재 원고들 명의로 된 재산도 없다”고 판결했다. 유학자금 송금은 재산을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도 보탰다. 결국 1심 법원은 이 씨 부부의 손을 들어줘 출국금지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법무부가 즉각 항소하면서 이 씨 부부의 하늘길은 바로 열리지 않았다. 2심을 진행한 서울고등법원은 먼저 육 씨가 남편 이 씨를 상대로 제기한 주주부존재 판결에 대해 1심과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회사의 대표자인 이 씨를 상대로 받아낸 판결만으로는 원고 육해화가 일신산업의 주주가 아니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오히려 판결을 면책수단으로 악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법원은 소득이 없어 세금을 체납했다는 이 씨 부부의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 씨 부부의 ‘재산의 해외도피 가능성’을 높게 보았던 것. 재판부가 해외 송금 부분에 다시 추궁하자 이 씨는 “어머니로부터 1억 원을 상속받았고 아들에게 보낸 돈은 그 돈의 일부다”고 새로운 주장을 폈다.
2심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상속받은 시기가 송금시기보다 훨씬 이전이었고 상속받았을 당시에도 세금을 납부한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육 씨의 어머니 박심자 씨(육인수 전 의원의 부인)는 2004년 4월 사망했다. 육 씨의 유학 자금 송금 시기는 2005년 7월경으로 1년의 시차가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이 씨 부부가 국세청의 재산 압류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던 정황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박 씨의 상속재산에는 예금, 보험금, 보증금과 토지 11필지(가액 합계 9억 7000만여 원) 및 건물 한 채(3억 1000만여 원)가 포함돼 있었다. 이 토지와 건물이 육 씨를 제외한 나머지 상속인들의 명의로 등기가 마쳐져 있었다는 것.
육 씨는 “상속을 포기했기 때문에 상속받은 재산 중에 부동산 지분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법원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2심 법원은 “상속을 포기하고 소비, 은닉하기 쉬운 현금을 상속받은 것은 채권자인 국세청에 대한 사해행위나 세금의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다”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또한 1심 때(2002년 1월)와 달리 이 씨 부부의 최초 출국 시점을 국세 체납일인 1991년 이듬해로 넓게 잡았다. 이 씨는 1992월 7월부터 2007월 5월경까지 115회, 육 씨는 1992월 7월경부터 2010년 9월까지 59회에 걸쳐 해외에 다녀왔다. 그 중 이 씨는 13회에 걸쳐 총 286일 동안, 육 씨는 15회에 걸쳐 총 341일 동안 미국에 체류했다.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딸이 미국에 살고 있었다고 해도 체류기간은 상당히 길었다.
법원에 따르면 약 174차례의 여행은 관광 목적의 여행이 다수였다. 이 씨 부부는 항공료나 체류비용에 대해서도 자녀들과 친척들로부터 충당 받았다고 주장했을 뿐 구체적인 자료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중국과 동남아 지역 출국은 회사 상품의 수출 시도 때문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일신산업은 1991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2002년에 폐업했다. 폐업 이후의 해외 출국이 주로 중국과 홍콩 등이었다. 때문에 법원은 해외시장 개척과는 상관없다고 보았다.
이 씨 부부는 경제활동이 없었는데도 고액 체납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서울 강남의 고급 빌라에 거주했다. 해당 빌라의 개별공시지가는 ㎡당 490만여 원으로 아들 이 씨가 2007년 12월 7억 6000만 원에 매입한 빌라로 면적은 53평에 달한다. 이에 대해 아들 이 씨는 “4억 원을 대출받아 빌라를 샀고 처가가 처의 명의로 매수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대출했다고 해도 결혼자금과 유학비용을 포함한 생활비 지출이 상당했다. 처 명의로 매수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며 “부동산의 취득이 이들의 자력으로 가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아들 이 씨는 법무부가 항소한 직후인 지난해 10월 25일 해당 빌라를 10억여 원에 매각해 약 3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진행될수록 이 씨 부부의 ‘고의적’ 체납 정황들이 부각됐다. 이 씨 부부는 24년 동안 생활비조차 없었다고 했지만 자녀들의 부동산 거래를 보면 ‘호화’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자녀들은 빌라 취득 전후에 부동산을 다수 취득했다. 아들 이 씨는 빌라 매입 직전 경기도 이천시 인근의 토지를 1000만 원에 매수했다. 그의 처는 결혼 이듬해인 2003년, 자신 명의로 서울 소재 부동산 2건을 사들였다. 빌라를 매수한 뒤에도 이 씨 부부의 자녀들은 2009년 4억 4000만여 원을 호가하는 제주도 땅 5건을 함께 매수했다.
앞서 1심 법원은 이 같은 부동산 거래와 이 씨 부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들이 자녀들 명의로 재산의 은닉하고 해외 도피시켰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결국 2심 법원은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출국금지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이 씨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국세청은 25년간 이들의 보험금·예금 채권을 압류하는 등 재산을 추적했지만 체납액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외에 현재 과세 관청이 확인한 이 씨 부부의 재산은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세금 징수상황에 대한 확인을 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요신문>은 이 씨 부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아들 이 씨가 이사로 등재된 문헌장학회를 찾았다. 이석훈 씨의 아버지 이도영 전 일신산업 회장의 호가 ‘문헌’으로 이 전 회장은 1952년 문헌장학회를 설립했다. 이석훈 씨도 2009년까지 문헌장학회의 이사를 맡았다. 문헌장학회 관계자는 “이석훈 씨와 육해화 씨는 가끔 나오지만 자리에 안 계신다”며 “재산 문제는 대통령과 아무 상관도 없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소송을 담당한 변호사도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문헌장학회 이천 저택 미스터리 등기부에도 없는 곳을 공시송달지로 이석훈 육해화 씨 부부는 법무부를 상대로 ‘출국금지처분취소’ 소송을 낼 때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의 한 주소지를 공시송달 장소로 삼았다. 공시송달지는 보통 실거주지를 기준으로 한다. 주소지로 판결 관련 서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이 토지의 소유자는 ‘재단법인 문헌장학회’다. 면적은 594㎡(약 180평)으로 1971년 증여받았다. 이석훈, 육해화 씨 부부가 공시송달 장소로 삼은 문헌장학회 소유의 건물. 이 건물의 부동산등기부는 찾을 수 없었다. 문헌장학회는 이도영 전 일신산업 회장이 1950년 설립한 충일장학회의 후신이다. 이 전 회장은 홍익학원(홍익대학교)의 설립자이자 민의원에 당선된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피선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의 아들이 이석훈 씨, 이 씨의 부인이 육해화 씨다. 즉 이도영 전 회장은 육인수 전 의원과 사돈지간이다. 지난 6일, <일요신문> 취재진이 이천에 있는 문헌장학회 소유의 토지를 찾았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숲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했다. 길 한 쪽엔 이 전 회장의 좌상이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금석문이 세워져 있었다.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고풍스러운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ㅁ’자 모양의 한옥 집으로 면적이 300㎡(90평)은 넘어 보였다. 집 중앙 현판에 적힌 ‘문헌’이란 글자로 주인을 알 수 있었다. 기자가 문고리를 흔들어봤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이 건물의 부동산등기부는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재판 과정에서 이 씨 부부는 최근까지 서울 강남 아들 소유의 빌라에서 거주했다고 밝혔다. 이 씨 부부가 등기부에도 없고, 실제 거주하지도 않는 이 건물을 공시송달지로 삼은 까닭은 미스터리로 남는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