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경선 혁명’ 연출 핵심 진입
염 의원은 198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청년조직인 ‘새시대새정치청년연합회(연청)’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DJ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그는 또 다른 목표를 잡았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의 ‘결합’이었다. 그는 지난 2000년 노무현 대통령의 자문기구인 자치경영연구원의 사무총장을 맡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염 의원을 말할 때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광주 경선을 빼놓을 수 없다. 염 의원은 노무현 후보의 경선 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는데 노 후보가 광주 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수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 지역 연고가 없는 약점을 훌륭히 메워 준 ‘공로’로 그 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염 의원은 정치 경력은 ‘양지’보다 ‘음지’에만 머물러왔었다. 그는 정치 경력 20여 년 동안 한번도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지난해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갑에서 처음 당선되었을 때 ‘중진급 초선의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전당대회에서는 집권 여당 서열 2위 상임중앙위원으로 화려하게 당 지도부에 진입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염 의원은 전대과정에서 수차례 “민주당과의 통합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해 당내 개혁파와 갈등을 빚어오다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