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도가니…점잖은 바둑에 ‘한 수’ 보여줘
세계 청소년 마인드 스포츠 대회가 8월 7~11일 용인과 수원에서 열려 성황리에 종료됐다. 대회장 전경(큰 사진)과 이번에 새로 추가된 종목인 주산(원 안).
세계 청소년 마인드 스포츠 대회는 대한체스연맹과 강릉영동대학교가 2013년에 기존의 이른바 보드게임 대회와는 확실히 다른 양식으로 출범시킨 이색 축제. 우선 마인드 스포츠 대회라는 이름부터가 국내 유일이다. 그 대회가 지금 3회를 거듭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한편으로는 진화하고 있다.
1, 2회 대회는 강원도 강릉에 있는 강릉영동대학교가 무대였는데, 올해 수원으로 성큼 올라왔다.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대회를 치르기에는 바다가 있는 강릉이 제격이지만 ‘마인드 스포츠’의 홍보를 생각한다면 한 지역을 고수하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출범 첫해와 지난해에는 바둑, 체스와 e-스포츠가 경기 종목이었다. e-스포츠는 컴퓨터 게임. 프로 게이머들이 최근 LOL(League of Legends) 경기를 시연했는데, 컴퓨터 게임에 대한 학부모들이 인식이 아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올해는 e-스포츠가 빠지고 브리지와 주산·암산이 새로 합류했다.
바둑과 체스는 어쨌든 사촌간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어 그렇다 치겠지만, 컴퓨터 게임이나 브리지가 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경우이며 주산·암산에 이르러서는 가히 독창적 파격이라는 느낌이다. 일상의 생활도구를 두뇌 게임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발상의 전환이 평가를 받고 있는 것.
브리지는 다른 나라에서는, 마인드 스포츠 게임에 빠지지 않는 종목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다. 50여 년 전인 1960년대부터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조금씩 알려지다가(기록에 의하면 한국에 브리지 게임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젤라 안이다) 귀화 1호 미국인, ‘천리포 수목원’으로 유명한 민병갈(Carls Muller, 1921~2002년) 원장의 노력을 통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1993년 외교관을 비롯한 외국생활 경험자들이 의기투합해 한국브리지협회를 발족했다. 현재 5000명 정도의 정·준회원과 인터넷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 중에는 프로기사도 몇 눈에 띈다. 서능욱 9단은 국가대표급 실력이며 김수장 9단도 고수로 알려져 있다.
브리지는 ‘국제인의 교양’이라는 외교가의 통칭답게 아이젠하워, 처칠, 케네디에 덩샤오핑 같은 대정치가,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저명인사 팬들이 많다. 그리고 중국 바둑의 간판 녜샤오핑 9단도 열렬 애호가로 덩샤오핑 생전에는 자주 어울렸다는 것. 그러니 실력자 소리를 들었을 수밖에.
브리지는 바둑처럼 입문이 어렵고, 게임을 하려면 4명이 모여 2명씩 짝을 이루어야 하는데, 수준 차이가 나면 게임이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 초심자에게는 숙제이자 보급의 장벽인데, 그래도 최근 백화점이나 리조트의 문화센터 등을 중심으로 브리지를 배우려는 사람이 제법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8년 인도네시아 아시안 게임에 들어갔다는 것이 최근 소식. 아무튼 이번 마인드 스포츠 페어에 동참한 것이 브리지의 보급과 활성화에 새로운 전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번 세계 대회에서 또 하나 특기할 사항은 ‘2015 세계 청소년 마인드 스포츠 대회’가 ‘2015 아시아 유소년 체스 선수권 대회(Asian Youth Chess Championship)’와 겹쳐서 열렸다는 것. 하나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였지만, 대회 규모는 ‘세계’보다 나흘 먼저 8월 3일에 개막한 ‘아시아’가 ‘세계’를 눌렀다. 더구나 체스 경기는 6일 동안 하루에 1~2라운드씩 9라운드를 소화했다. 대회를 대회답게 치른 것이다. 옛날부터 대학가에서 크고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경희대 서울 회기동 캠퍼스보다 더 크고 아름답다는 용인 캠퍼스라는 것인데, 여기에 열흘 가까이 바둑 체스 브리지 주산·암산의 두뇌 스포츠 물결이 넘쳐나면서 중앙도서관, 예술·디자인 공연장, 멀티미디어 회관, 남녀기숙사 등이 두뇌 스포츠 청소년들에게 점령당했던 것. 무슨 대회든, 가끔 사나흘 가는 것도 있지만, 대개 하루 이틀에 끝내 버리는 바둑이 참고할 일이다.
가까운 중국 일본 대만 홍콩에서 조금 멀게는 몽고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더 멀게는 러시아 인도 스리랑카 이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탄’으로 끝나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온 유·청소년들이 하루 종일 똑같은 대회 티셔츠를 입고 캠퍼스를 휘저으며 다녔고, 25인승 버스들이 선수들을 학교에서 대회장·운동장까지, 운동장에서 숙소까지 쉼 없이 실어 날랐다. 개막식에서는 마술사 이은결의 상상을 초월한 마술과 ‘국악 비보이’의 현란한 댄스에 선수들은 눈을 돌리지 못했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회를 지켜본 관계자들이 폐막식 후 말했다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