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스타는 ‘운 좋으면’ 구경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서 열린 <태왕사신기> 세트장 오픈 행사에 5000여 명의 일본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배용준의 차기작 ‘<태왕사신기> 오피셜 투어’를 통해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일본 관광객들은 자그마치 15만 엔(약 120만 원)이라는 비용을 냈다. 그들이 감수해야 하는 건 고가의 비용뿐만이 아니었다. 투어를 진행한 여행사 홈페이지에는 ‘세트만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세트 내부에 들어갈 수 없으며 현지촬영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촬영 현장을 마음껏 견학할 수는 없다’ 등의 경고(?) 문구가 덧붙여져 있었다.
올해 3월과 4월 진행된 투어에서도 촬영 세트의 파손과 작은 화재 때문에 촬영장 입장이 불가능했음에도 메인 세트를 제외하고 견학할 수 있다는 말로 상품을 판매했다. ‘견학 장소는 제주도에 도착해 밝히겠다’는 무책임한 문구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래도 비용은 무려 16만 6000엔(약 125만 원)이나 됐다.
더 큰 문제는 <태왕사신기>의 이름을 내건 여행상품이 암암리에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태왕사신기>의 투자, 배급 및 마케팅을 담당한 (주)SSD는 여행사 잼투어와 공식 계약을 맺어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관광객 모집을 위해 일본 대형 여행사인 긴키니혼투어리스트, 니혼료코와 각각 계약을 체결한 상태. 확인 결과 공식라인의 진행 상태는 ‘올스톱’이었다. 긴키니혼투어리스트 측은 “<태왕사신기>와의 계약은 ‘세트 공개’까지였다”, 니혼료코 홍보 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여행사 잼투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어 일정이 없다. 일단 모든 투어가 중지된 상태다”라고 전했다. 이는 드라마 방영이 연기되면서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여행 상품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몇 일본 사이트에서는 <태왕사신기>의 이름을 건 여행 상품을 버젓이 판매하고 있었다. 심지어 1박2일의 단순한 제주도 여행 상품을 ‘<태왕사신기>의 촬영 장소 견학’이라며 관광객들을 현혹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 <태왕사신기> 관련 투어를 진행한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주의 문구. ‘스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 ||
이밖에도 최지우 권상우 송승헌 등 한류스타가 사는 집을 구경하는 한류상품도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이런 상품은 보통 대부분 게릴라성 무박 1일 코스로 가격은 5만 엔(약 37만 원)에서 8만 엔(약 59만 원) 선이다. 무료로 진행되는 행사도 비싼 가격에 판매되곤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드림콘서트는 입장료가 무료였으나 여행 상품 가격은 25만 엔(약 187만 원)이나 됐다.
한류투어상품의 또 다른 문제는 일정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여행사들은 ‘스타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일정에도 없는 행사 스케줄에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니고 있었다. 얼마 전에 열린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도 ‘한류투어’를 통해 한국을 방문한 200여 명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참석했다. 이들과 인터뷰를 하던 중 다소 황당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제 참석이 정해진 여행 일정이 아니라는 것. 한 일본 관광객은 “투어 일정에는 대종상영화제가 없었으며 9일 열리는 콘서트 일정에 맞춰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소식을 듣고 왔다”고 말했다. 일본 관광객들을 통솔했던 가이드도 “원래 없던 일정이었는데 갑자기 추가됐다”고 시인했다. 이에 한 일본 관광객은 “비싼 여행비를 지불하고 왔는데 일정과 달라도 스타를 직접 볼 수 있다면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조급하게 상품을 만들어내는 여행사들 때문이다. 팬미팅은 스타 소속사와, 드라마 투어는 드라마 제작사까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진행이 더디고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다보니 여행사들이 이 과정을 생략하고 무작정 여행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런 경우 일본 관광객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행사장에 들어가는 스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데 만족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류 스타의 이미지 타격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