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등에 업고…투트랙 전략 만지작
롯데그룹의 후계를 놓고 일본에서 ‘왕자의 난’을 벌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가운데)이 지난 7월 29일 오후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을 통해 들어선 후 차에 오르고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롯데호텔에 칩거 중인 신 전 부회장이 소송전 등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치른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 이후 한일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원톱’ 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해석됐다. 지난 7월 27일부터 3주간 펼쳐졌던 형제간 분쟁이 동생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것으로 풀이됐다. 주총 직후 롯데그룹은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결과를 환영한다”며 “주총을 통해 주주와 임직원 모두 신동빈 회장과 기존 경영진을 중심으로 경영 안정, 지배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강화에 주력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제2호 의안인 ‘법과 원칙에 의거하는 경영에 의한 방침의 확인’이 가결된 것에 대해 롯데그룹은 “기업과 가족을 확실히 분리하겠다는 의지의 확인”이라며 “경영에 가족이나 외부의 힘이 부당하게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라고 못박았다. 그동안 시끄러웠던 분쟁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이후 신 전 부회장의 반격 등 만약의 사태를 차단한 셈이다. 주총 이후 신동빈 회장은 “한일 롯데의 통합경영”을 언급함으로써 아버지와 형과 관계없이 한일 롯데를 홀로 책임질 뜻을 밝혔다.
여운은 남아 있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은 주총 이후 “친족 간 의견 차이로 큰 불안을 안겨드려 마음 깊이 사죄드린다”며 “앞으로도 동료 사원 및 거래처 여러분과 함께 나아가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동료 사원’, 즉 롯데홀딩스 지분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 ‘종업원지주회사’를 언급한 것으로 미뤄 신 전 부회장이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 계열사 지분이 만만치 않고 신격호 총괄회장의 마음을 얻고 있어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래도 장자인데 한일 롯데를 통째로 동생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재벌 복합 쇼핑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신 전 부회장은 주총이 끝나고 이튿날인 18일 바로 귀국해 신격호 총괄회장이 있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들어갔다. 그동안 가족간 분쟁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의 의중이 장자인 신 전 부회장으로 향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 옆에서 반격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소송과 지분 대결로 압축된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에서 동생인 신 회장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신 전 부회장이 문제 삼고 있는 대목은 신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도 모르게 일본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대표에 올랐다는 것. 신 전 부회장이 소송에 나선다면 우선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형제간 지분 대결 가능성은 경영권 싸움이 시작되면서 내내 언급된 부분이다. 여기에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누구 편에 서는지에 따라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계산까지 벌써 나온 상태다.
신 전 부회장이 소송전을 펼치든 지분 대결로 맞불을 놓든 관건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행보다. 지금까지 모습만 보면 신 총괄회장의 마음은 장자에게 향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 전 부회장 쪽에서 신 총괄회장의 구체적인 발언과 행동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데 반해 신동빈 회장 쪽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을 문제 삼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또 가족간 경영권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은 늘 신 전 부회장 곁에 있었으며 신동빈 회장은 가족 도움 없이 가신들과 함께 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노출된 장면으로는 아버지의 뜻은 장자에 있는 것 같다”며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와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여전히 그룹 현안을 보고받고 있는 신 총괄회장은 최근 대면 업무보고 시간을 15분으로 대폭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알츠하이머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 달가량 이어져온 경영권 싸움 때문에 심신이 지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 쪽에서 신 총괄회장의 기억력·판단력을 신뢰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아가면서 신 전 부회장의 힘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물론 신 전 부회장이 빈손으로 물러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 와서 새삼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를,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맡는 쪽으로 돌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신 전 부회장은 이미 일본 롯데 계열사 임원직에서 전부 해임된 데다 신동빈 회장은 한일 롯데 통합경영의 뜻을 천명한 상태다. 롯데호텔에서 아버지 곁에 머물고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의 힘을 빌려 어떤 식으로든 동생 신동빈 회장에게 반격할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