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고집, 임직원도 ‘알현’ 어려워
신격호 회장과 맏딸 신영자 이사장의 다정한 한때. 사진출처=<신격호의 비밀>
뿐만 아니라 업계 모임에도 좀처럼 참석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룹 내에서도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활동적인 취미가 많지 않은 신 총괄회장은 하루 생활 가운데 3분의 1은 ‘생각하는 시간’으로 보낸다고 한다. 한 번 생각에 빠지면 몇날며칠을 집무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는데 이땐 임직원들도 그에 곁에 갈 수 없었다. 또 신 총괄회장은 ‘롯데 3무(無)’를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공식적인 모임과 행사를 싫어해 임직원의 신년 하례식도, 그룹 사장단 회의도, 전략 결정 회의체도 없다.
은둔의 경영자였기 때문일까. 신 총괄회장을 두고 ‘한국 로비의 흑막이다’ ‘박정희의 신임으로 사업을 키웠다’ ‘일본 정치인들과 특별한 관계다’ 등 온갖 편견과 오해가 쌓여만 갔다. 그럼에도 신 총괄회장은 이러한 소문들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오로지 실적으로 자신을 알리길 고집했다.
‘조용하고 칼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컸다. 책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에 실린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의 편지엔 “동생들에 대한 마음이 끔찍해 젊은 시절 최고로 값진 옷이나 시계 등 모든 것을 주려고 했다. 여동생들이나 일찍 혼자된 고모에게도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줬다”고 밝혔다.
고향 둔기마을에 위치한 문수사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신 총괄회장은 아무런 계산 없이 문수사 중건에 10억 원을 시주한 바 있다. 평소 후원을 할 때도 타당성을 따지던 그였기에 주변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수사는 신 총괄회장에겐 특별한 장소였다. 신 총괄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그의 어머니가 시시때때로 문수암을 찾아 아들의 무사기원을 빌었던 것. 문수사 시주에는 그의 사모곡이 담겨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