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풍차를 향해 돌진하면서도 풍차를 성이라 우기는 그 광기는 어떨까. 혹 그런 광기 때문에 돈키호테처럼 사는 일이 용인되는 것은 아닐는지. 저 놈은 원래 저런 놈이지, 하고 예외적으로 봐주니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돈키호테의 광기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위장술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돈키호테>가 올해로 400살이다. 지금도 스페인 사람들은 매년 <돈키호테> 읽기 대회를 하며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세르반테스를 추억하고,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미칠 수밖에 없었던 돈키호테와, 돈키호테의 그림자라 해도 좋을 산초를 추억한다.
돼지우리나 치고 있었던 무식쟁이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순수를 배우고 자유를 배우고 권력을 배우며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보면 엉뚱한 괴짜 돈키호테가 얼마나 괜찮은 스승이었는지 놀라게 된다. 마침내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자가 된 산초에게 주는 돈키호테의 조언은 곱씹을수록 찡하다.
“부자가 하는 말보다 가난한 자의 눈물에 더 많은 연민을 가지도록 하게.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의 편을 들라는 건 아니야. 정의는 공평해야 하니까. 중죄인에게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내려할 경우에도 너무 가혹한 벌은 내리지 말게. 준엄한 재판관이라는 명성은 동정심 많은 재판관이라는 명성보다 좋은 게 아니라네. 혹시 정의의 회초리를 꺾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뇌물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자비의 무게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네. 원수와 관련된 소송을 재판할 때에는 자네가 받은 오욕은 머리에서 떨쳐버리고 사건의 진실에만 생각을 집중해야 하네. 사건에서 경계해야 할 일은 개인의 감정으로 인해 눈이 머는 거야. 자네의 사법권 아래 들어온 죄인을 가엾게 여기게.”
저렇듯 속 깊고 따뜻한 정의를 세울 줄 아는 돈키호테를 우리는 왜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괴짜라 믿었을까. 그것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16세기, 17세기 스페인의 상황과 관계가 있겠다. 1517년, 독일에서 일어난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것을 경계한 유럽의 국가들은 종교적으로 극보수의 입장으로 돌았다. 조금이라도 자기네 방식의 기독교와 어긋나는 태도나 신념을 보이면 종교재판소를 내세워 마녀 사냥을 해댔던 것이다.
개종한 유대인 집안으로서 믿음을 의심받았던 가난했던 세르반테스는 삶이 늘 고달팠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전투 함대에 자원입대할 때는 왼손을 잃었다. 귀국하다가는 터키 해적에 잡혀 5년간이나 포로 생활까지 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꿈을 꿨던 것이다. 돈키호테의 꿈, 자유의 꿈을.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미친 놈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돈키호테는 바로 세르반테스 자신이었다!
“산초,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것들 중에 자유가 있네. 자유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만하고 또 마땅히 걸어야 하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