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도발에서 연상되는 사건이 2002년 6월의 연평해전과, 2010년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이다.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앞둔 시점에서, 연평도 포격은 중국 광동성 광저우에서 개최됐던 아시안 게임 폐막식을 앞둔 시점에서 각각 터졌다.
북한이 예측불허, 상식초월의 집단인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세계인의 잔치에 재를 뿌리는 일을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이라도 되는 양 저질렀다. 중국의 전승절 행사는 시진핑 주석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행사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포함한 세계 유수의 국가원수들이 초청된 잔치다.
하지만 이 행사에 동북아 지역 국가원수로는 박 대통령 혼자만 참석한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참석해 한중일 정상 간의 회동이 3국의 정권 출범 후 최초로 이뤄지고, 게다가 김정은이 동석한다면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도 있는 기회였지만 역시 무산됐다.
김정은은 지뢰도발을 했을 때 이미 불참키로 했던 것 같고 실제로도 노동당 비서 최룡해가 참석한다. 김의 입장에서 보면 혈맹국의 대표로 자신이 서야 할 자리에 남한의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참관하는 것은 심사가 뒤틀릴 일이다.
초대받지 못한 잔치, 초대됐으나 갈 수 없는 잔치를 바라보는 외톨이의 비뚤어진 심사가 휴전선 도발의 배경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오판이었음은 우리 정부와 중국의 단호한 대응으로 이내 드러났다. 특히 우리 정부는 도발-협상-봉합-도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는 자세였다.
메르스 사태로 미국 방문도 연기한 박 대통령이다. 휴전선의 안보불안 사태는 메르스보다 훨씬 위중한 것이고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전승절 참석 보류는 당연해 보였다. 그렇잖아도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하는 것에 부담감도 있던 터였다.
그러자 중국도 다급해졌다. 박 대통령마저 불참하면 전승절의 위상 격하는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켜 박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식 참석을 막으려는 세력이 있다’면서 ‘전승절 행사가 실질적으로 간섭을 받는다면 외부에서 알 수 있는 방식으로 강력 대응하겠다’고 북한에 대해 엄포를 놨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긴장이 고조되던 22일 중국 외교부 실무진이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해 사태를 협의했다고 한다. 그 협의의 가장 큰 비중도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문제였을 것이다.
25일 남북협상이 타결됨으로써 박 대통령은 홀가분하게 중국 전승절 열병식을 참관하게 됐다. 긴밀해진 한중관계를 바탕으로 동북아 외교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자초한 고립이지만 북한이 그 고립에서 벗어나야만 남북긴장도 해소된다. 미숙한 김정은을 국제무대로 이끌어 내는 것도 박 대통령의 역량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