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만원 벌려고 200명 벼랑끝에…
지난 27일 워터파크 몰카를 지시한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네이버 TV 캐스트 캡처.
신고를 접수한 용인동부경찰서는 8월 25일 오후 9시 25분께 전남 곡성에서 최 아무개 씨(여·26)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26일 밝혔다. 신고 접수 9일, 수사 전담팀 구성 6일만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해 7월 16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 한강공원 야외수영장 1곳, 경기지역 워터파크 2곳, 강원지역 워터파크 1곳, 총 4곳의 여성 탈의실과 샤워실을 돌아다니며 185분 분량의 영상을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초기 용의자 특정에 난항을 겪으며 사건 장기화에 대한 우려감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경찰은 몰카 동영상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동영상 속 거울에 용의자의 모습이 비친 것이다. 경찰은 동영상이 찍힌 장소 4곳의 모든 결제내역과 통화내역을 분석해 최 씨가 해당 장소에 모두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최 씨가 소셜커머스를 통해 워터파크 등 4곳의 입장권을 구매한 사실도 밝혀냈다. 경찰은 동영상 도중 등장하는 휴대전화 형태의 몰래 카메라를 들고 초록색 상의에 긴 머리를 한 여성이 최 씨라고 판단하고 용의자를 추적해 왔다. 경찰은 몰카 동영상 유포로 피해를 입은 여성이 2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씨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경찰에 붙잡히게 됐다. 서울에서 거주하던 최 씨는 몰카 사건이 터지자 자신의 고향인 전남 곡성으로 내려가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해당 몰카 동영상을 우연히 본 친척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딸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25일 자신을 추궁하다 때리자 최 씨가 아버지를 112에 신고했던 것이다. 경찰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던 최 씨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인 최 씨가 몰카 촬영자라는 사실을 밝혔고,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고 이날 오후 9시 25분께 나오던 최 씨를 잠복 중이던 경찰이 긴급체포할 수 있었다.
용인동부서로 압송된 최 씨는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 계속된 경찰의 추궁에 “지난해 봄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한 남성의 제의를 받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실직으로 생활비가 없어 돈을 벌기 위해 그랬다”고 자백했다. 유흥업소에 종사하던 최 씨는 실직 후 돈이 떨어지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가 촬영에 사용한 몰래카메라는 시중에서 40만~5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는 대만제였다. 이 카메라는 휴대전화 케이스 모양을 하고 있어 찍히는 사람들이 촬영을 눈치 채기 힘들도록 제작됐다. 최 씨는 이 같은 점을 악용해 4곳의 워터파크 등에서 샤워실과 탈의실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며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5분씩 촬영을 이어갔다.
동영상에는 샤워를 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여성들과 아동들이 무작위로 찍혀 있으며, 일부 여성들은 최 씨가 따라다니며 촬영해 신체가 전부 노출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경찰이 확보한 원본 동영상은 확장자가 ‘avi’ 형식으로 돼 있고 개수만 100여 개에 달하며, 파일용량은 총 10GB(기가바이트)에 이르렀다. 인터넷에 유포된 9분 41초, 9분 40초짜리 동영상 두 개는 원본 동영상을 짜깁기해 만든 것이다.
용인동부서 관계자는 “피해자가 적게는 100명 많게는 200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피해자들은 신체 일부만 나오는 경우도 있고 전체가 다 나오는 경우도 있는 등 피해 정도는 천차만별이다”며 “여성 1명이 피해 신고를 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 씨는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 강 아무개 씨(33)로부터 1건당 10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몰카를 촬영했지만 실제로는 3차례에 걸쳐 30만 원, 40만 원, 60만 원, 총 130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촬영 때마다 강 씨에게서 카메라를 지급받고 촬영 후 되돌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 역시 8월 27일 전남 장성의 백양사휴게소에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몰래 촬영된 동영상의 경우 음란 사이트 운영 업자들에게 넘어간다. 촬영자가 영상을 통째로 업자에게 넘기고 정해진 금액을 받는 경우도 있고, 다운로드 숫자에 연동해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 다운로드 횟수가 수십만 건에 이르기 때문에 돈이 된다”며 “또 동영상의 한 장면을 캡처해서 사진을 만들고 이걸 다른 음란사이트로 링크를 걸 때 광고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단순 ‘소장용’으로 동영상 촬영을 최 씨에게 부탁했으며 파일이 든 외장하드는 이미 4~5개월 전 쓰레기통에 버렸고 유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씨는 사건이 터지자 최 씨와 수차례 연락을 취하며 해외 도피를 모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증거 인멸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광주광역시 강 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