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지듯 떠난 님아…그대 손은 참 따뜻했소
1980년 12월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조치훈 9단과 교코 여사. 여섯 살 연상의 교코는 그에게 깊은 안식이자 위로였다. 사진제공=한국기원
“명인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면서 1962년 일본에 건너간 치훈은 1980년 11월 ‘명인’에 오르고 12월 중순 귀국해 고국의 팬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18년 전의 약속을 지킨다. 조 9단의 부인을 처음 본 것도 바로 그때, 바람 부는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앞에서였다.
조 9단은 지금처럼 머리를 아무렇게나 기른 모습이 아니었고, 1990~2000년대처럼 파마를 한 것도 아니었다. 철사처럼 뻣뻣한 머리카락이었다. 부인도 생머리를 간결하게 어깨 정도까지 기른 모습이었다. 정장 차림의 조 9단은 딸의 손을,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부인은 아들의 손을 잡고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불어 부인의 머리가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이후 조 9단은 이런저런 공식 대국을 위해, 또 ‘명인’ 등극과 함께 한국에 생긴 ‘조치훈 후원회’와 관계된 일로 띄엄띄엄 한국을 찾는다. 조 9단이 한국에 올 때마다 인터뷰는 당연히 빠지지 않는 일정이었는데, 조 9단이 기자들과 얘기를 가장 많이 나누었던 것은 아무래도 1980년 12월의 귀국 때였을 것이다.
―어렸을 때 입단을 못하면 닛코(日光)의 폭포에서 자살하려 했다면서요?
닛코는 도쿄 북쪽 도치기(栃木)현에 있는 도시. 명승지로 게곤(華嚴)폭포가 유명하다.
“제가 그랬었나요? 입단을 못하면 죽고 싶다, 뭐 그런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닛코라고 구체적인 지명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텐데…. 글 쓰는 분들이 좀 과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기왕 폭포 얘기를 하시려면 나이아가라폭포라고 하셨으면 스케일도 크고 더 좋았을 텐데요^^”
―부인은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기타니 선생님 댁에서였으니까 1970 몇 년일 겁니다.”
30여년간 쉼없이 활약한 조치훈 9단.
두 사람은 서로 끌리는 것을 느꼈다. 첫눈에 불꽃이 튀었는지, 몇 번 만나면서 마음이 움직였는지는 모르지만, 조 9단은 훗날 자서전 비슷한 글에서 당시를 돌아보며 “고독한 영혼과 고독한 영혼의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수사가 아니라 사실이었을 것이다. 붓글씨 수업이 끝나자 교코는 고향 홋카이도로 돌아갔고 치훈은 도로 혼자가 되었다. 치훈과 교코는 가끔 전화를 하고, 이따금 편지를 주고받으며 끈을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가깝게 만들어 준 것은 1975년 치훈이 당대의 거봉 사카다 9단에게 도전했던 ‘일본기원 선수권전’이었다. 도전5번기에서 치훈이 먼저 2연승하자 한·일 두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치훈은 3연패로 좌절한다. 제5국을 역전패로 놓치는 순간 치훈은 통곡한다. 그리고 교코가 보고 싶어 무작정 눈과 얼음의 고장 홋카이도로 날아가 교코와 함께 눈 쌓인 거리를 한 시간쯤, 혹은 두 시간쯤 걸었다. 치훈도, 교코도 말이 없었다. 그날 오후에 치훈은 도쿄에서 팬 모임이 있었다. 좀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하자 모임의 총무는 아무 걱정 멀고 푹 쉬다가 오라고 했다. 그러나 치훈은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말없이 한 시간쯤 그냥 걷다가 돌아온 것뿐인데, 보나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지요. 교코의 손이 따뜻했을 테니까요^^ 그날 이후 우리는 아주 가깝게 된 것 같아요. 우리는 다시 자주 만나 영화를 보고, 니가타(新潟) 강변의 벚꽃 거리도 걷고 했습니다. 니가타의 벚꽃도 정말 멋집니다. 홋카이도에서는 눈보라가 벚꽃처럼 세상을 덮더니, 니가타에서는 벚꽃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더군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치훈이 ‘일본기원선수권전’에서 실패했을 때 일본에서는 이렇게들 말했다.
“어떻게 보면 치훈으로서는 이번에 진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바둑 팬들에게 뭐랄까, 어떤 비극적 영웅의 인상을 남겼다. 이겼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다. 이겼으면 영웅이 되었겠지. 그러나 그런 영웅의 이미지는 얼마 안 가서 희미해져 버린다. 그것보다는 비극적 영웅의 아우라가 팬들의 마음을 더 오래 사로잡는 법이다.”
그랬다. 조 9단에게는, 꼭 뭐 비극적이라고까지 말할 것은 아닐지라도 늘 어떤 운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따라다녔다. 두 사람은 38년을 함께 살다 이제 헤어졌다. 고독한 영혼끼리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엮었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추억하니 가슴 저리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