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은 ‘얼굴발’서 ‘글발’로 돌아간다
수십 년 동안 한국 드라마는 주부층의 절대 지지를 받는 김수현 임성한 문영남 등과 남성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는 이환경 정하연 등의 대작가들이 주도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신예작가들이 젊은 감각에 실험정신을 더해 선배 대작가들에 비견될 만큼 급성장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팬클럽까지 거느린 미녀 작가들
스타 연예인들이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첫 번째 이유는 출중한 외모에 있다. 출중한 외모를 중심으로 연기력, 가창력 등의 실력이 가미되면 톱스타 등극이 가능해지는 것. 이는 스타 작가들도 비슷하다.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는 단연 <이산>의 김이영 작가다. 이병훈 PD와 호흡을 맞춰 ‘이산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그는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산> 제작발표회에서 매스컴이 가장 주목한 인물이 김 작가였을 정도다. 74년생인 그는 성균관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 졸업생들 사이에선 대학 시절 김 작가의 외모가 동갑내기 영화배우 문소리(성균관대 교육학과 졸업)를 능가했다는 소문도 있다.
김이영 작가는 2001년 SBS 단막극으로 데뷔한 뒤 MBC 미니시리즈 <내 사랑 팥쥐>로 주목받았으나 정성주 작가와 공동 집필 예정이던 <술의 나라>에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당시 일부 네티즌들은 오히려 김 작가의 외모를 공격했다. 외모만 출중할 뿐 작가로서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것. 그러나 SBS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선보인 뒤 이 PD의 파트너로 낙점돼 스타 작가로 비상할 기회를 잡았다.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는 작가로는 남동생 팬클럽까지 거느리고 있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김인영 작가도 빼놓을 수 없다. 방송가에선 김이영 작가, <천생 연분>의 예랑 작가와 함께 김 작가가 ‘3대 미녀 드라마 작가’로 손꼽힐 정도다. 아직 미혼인 그는 탁월한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한 노처녀의 적나라한 연애담을 풀어내는 재주가 출중하다. 30대 중반의 미혼으로 외모도 동안이나 사실 그는 경력이 10년을 넘는(96년 아침드라마 <짝>으로 데뷔) 중견 작가다. 그렇지만 젊은 감각으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드라마 집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런 노력의 흔적이 바로 지난해 최고의 마니아 드라마로 손꼽힌 <메리대구 공방전>이다.
▲ 김이영 작가(왼쪽), 김인영 작가 | ||
스타 연예인들 중에선 만능엔터테인먼트가 사랑받고 있다면 스타 작가들 사이에선 만능 작가가 뜬다. 배우나 가수들이 자신의 영역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 끼를 발산하듯 작가들 사이에선 예능 프로그램 구성작가를 거쳐 드라마 작가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얼렁뚱땅 흥신소>의 박연선 작가다. SBS 예능국 작가 출신인 그는 단막극 <사랑한다 말하기>로 주목을 받은 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 시나리오를 연거푸 성공시키며 충무로 입성에 성공했다. 가장 큰 장점은 예능 작가 출신다운 코믹 감각. 여기에 멜로물에서 감정 흐름을 잡아내는 능력까지 탁월해 스타 작가로 비상할 수 있었다. 이후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 <연애시대>를 통해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실험정신이 돋보인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로 마니아층의 절대적인 지지까지 확보했다. 박 작가는 ‘주 5일 하루 4시간 근무’와 ‘매년 드라마 1편, 영화 1편’을 목표로 하는 ‘공무원 같은 작가’를 표방하고 있는 데 정해진 방송 시간에 맞춰 대본을 써야 하는 예능 작가 시절 습관이 몸에 배인 듯하다.
이김프로덕션의 김기호 이선미 부부 작가의 뒤를 잇는 스타 공동 집필 작가인 ‘홍 자매’ 작가는 세 살 터울의 홍정은(34) 홍미란(31) 친자매인데 이들 역시 예능 작가로 활동하다 드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예능 작가 시절부터 드라마 작가를 꿈꿔온 홍 자매는 2005년 KBS에서 준비 중이던 드라마가 마지막 단계에서 취소돼 대타 드라마를 급히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자매가 힘을 합쳐 3일 만에 완성한 시놉시스를 들고 가 드라마 작가 데뷔의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드라마가 <쾌걸 춘향>. 이후 자매가 공동 집필을 통해 <마이걸> <환상의 커플> 등을 성공시키며 스타 작가로 발돋움했다. 언니인 홍정은 작가는 다소 터프한 성격으로 무서울 만큼 일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와 함께 활동했던 예능작가들은 <환상의 커플>에서 한예슬이 자주 사용해 유행어가 된 대사의 일부는 평소 홍 작가가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라고 한다. 이들 외에도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 <불새> <못된 사랑>의 이유진 작가 등도 예능 작가 출신 스타 드라마 작가들이다.
최근 몇 년 새 마니아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는 단연 <부활>과 <마왕>의 김지우 작가다. 박찬홍 PD, 엄태웅과 환상의 트리플을 이룬 김 작가는 마니아층 시청자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스타작가로 급부상했다. <부활>과 <마왕> 두 편의 드라마로 급부상한 김 작가는 사실 오랜 경력의 소유자다. <학교2> <비단향꽃무> <저 푸른 초원 위에> 등의 드라마를 집필했는데 마니아 드라마였던 <비단향꽃무>를 제외하곤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를 집필하는 평범한 작가였다. 그런데 <부활>로 확실한 변신을 시도하며 스타 작가로 급부상한 것. 이런 변신의 밑바탕은 그의 특이한 이력에서 기인한다. 20대 후반까지 만화가 지망생이던 김 작가는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없음을 인지하고 만화스토리작가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그렇게 글쓰기를 준비하던 도중 우연히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들어가면서 드라마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 결국 <저 푸른 초원 위에>까지는 그가 드라마 작가로 자리 잡기 위한 단계였다면 <부활> 이후에는 만화가 지망생다운 ‘만화’적인 상상력을 뽐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 보증수표’가 대세
스타 연예인에겐 인기가 필수적이고 스타 작가가 되려면 시청률 확보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급부상한 스타 작가는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를 공동집필한 김은숙 강은정 작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정아(본명 이선미) 작가,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 등으로 하나같이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리는 이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시청률 보증수표’는 <고맙습니다>의 이경희 작가다. 상두야 학교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스타작가로 발돋움한 뒤 <이 죽일 놈의 사랑>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고맙습니다>를 통해 다시 정상의 자리를 지켜냈다. 그의 작품에는 ‘텐투서티’ 법칙이라는 게 있는 데 늘 시청률 10%로 시작해 결국엔 3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작품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지난해엔 <고맙습니다>로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계가 위기를 겪고 있는데 반해 드라마 시장이 계속 확대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런 탄탄한 드라마 작가군에 있다. 명불허전임을 과시하는 ‘대작가’들부터 ‘마니아 절대 지지 작가’와 ‘시청률 보증수표 작가’가 공존하는 신예 작가들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공존하며 드라마의 질을 향상시켜온 것. 이들의 저력이 한국 드라마의 원동력이 되어줄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