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성의 없는 수사와 형식논리가 만연한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전관변호사를 만나 물어보았다. 그는 일선 검사마다 사건이 넘쳐 과부하상태라고 했다. 자신이 일할 때에는 그나마 정의를 수행한다는 의식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증발한 것 같다고 했다.
성공보수는 어떤 역할을 하느냐고 까놓고 물었다. 전관출신인 자기들이 사건을 맡으면 검찰수사과에서 사건을 처리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수사의지가 없는 시큰둥한 수사관을 일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검사를 바꿀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성공보수는 거액이었다. 무기력한 나는 그들에게 사건을 맡기라고 했다.
피해를 당해도 돈이 없으면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세상이다. 피켓을 들고 법원과 검찰 앞에서 서 있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공무원이 의지가 없으면 국가는 빈껍데기다. 성공보수를 받는 변호사들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고양이 수준이라면 그보다 한 단계 높은 포식자도 보았다.
권력을 차용해 마음대로 악용하는 기업 회장이 있었다. 고향 선후배의 인연을 핑계 삼아 평소 검찰고위직들과 형님동생으로 지냈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파멸시킬 대상을 고소하고 몇 명 참고인의 입을 맞추어 진술을 하게 했다. 성공보수를 주는 전관변호사보다 검찰 최고위직의 동생이나 조카를 비서로 썼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비서가 로비를 담당했다. 회장의 마수에 걸려든 사람들이 흉기로 변한 법의 칼날에 쓰러졌다. 내가 본 시궁창 냄새가 나는 법의 이면이다.
그보다 한 단계 위는 최고 권력의 자객 노릇을 하는 정치수사다. 입에 올릴 것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난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오늘도 정의를 위해 형사와 수사관 검사들이 밤까지 손에 쥐가 나도록 조서를 작성하는 걸 당신이 제대로 아느냐고.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서 각종 비난을 받아가며 피까지 흘리는 숭고한 사명을 그렇게 매도해도 되느냐고.
검찰청에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비위를 맞추지 않고 할 말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저변에 깔린 인식을 실감하지 못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돈 없으면 고소하지 말아야 하는 세상, 많은 돈이면 생사람도 잡을 수 있는 그런 현실이 없어져야 한다.
이제 대법원 판결로 변호사의 성공보수란 제도가 없어졌다. 그러나 수요가 있으면 변칙은 항상 독버섯같이 생기게 마련이다. 수사체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사건이 많다는 핑계로 책상에 앉아 모든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는 일부 형사나 검찰수사관들의 건방진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그들의 시각이 자신을 바라보는지 정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입장에 있는지 묻고 싶다. 예산과 조직보다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