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의원님들 골프장서 ‘체질개선’?
▲ 연달아 쏟아지는 악재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호국의 북’을 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곽성문 의원 골프장 폭력 사건과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 발언,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재보선 사조직 동원’ 보고서 파문에 소속 의원들의 집단 외유 논란 등 연이은 내부 악재로 모처럼 따놓았던 점수를 까먹으면서 당내에 팽배한 기강해이, 무사안일에 대한 비판론이 높아지면서다.
한켠에선 “한나라당 의원들은 하루하루 즐기며 사는 웰빙족”(김문수 의원)이라는 자조가, 다른 쪽에선 “이러다가 ‘도로 딴나라당’이 되는 것 아니냐”(초선 L의원)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실제 그동안 열린우리당에 한참 앞서가던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7월 들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2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26.1%로, 지난 조사(6월28일 28.8%)에 비해 2.7%포인트가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열린우리당은 19.3%에서 23.3%로 4.0%포인트 상승해 양당의 격차는 2.8%포인트로 줄었다.
당내에선 재보선 직후인 5월10일 조사 이후 지지도 1위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지금 추세가 계속될 경우 ‘역전’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초선 의원은 “정국 상황으론 윤광웅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부결로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주도권이 약화된 측면이, 내부적으론 잇단 악재가 영향을 미친 결과”라며 “‘재보선 효과’가 이미 사그라들기 시작한 만큼 이제는 여권의 에러에 기대 반사이익을 보려 하기보다 당 혁신 등 내부 호재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체질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전반적 기류는 “대세는 우리편”이라며 느긋해 하는 분위기다. 박근혜 대표 등 지도부는 ‘민생 올인’을 강조하고 있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국회가 열리지 않는 7~8월을 ‘외유 올인’으로 보내고 있는 상황. 해외에 안가나는 의원들도 모처럼의 방학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듯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삼삼오오 골프회동을 갖는 경우가 허다하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정말 많은 의원들이 밖으로 나간다. 비회기라는 이유로 의원들이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중요사항이 생겨도 상임위로 열지 못할 정도다. 세게 군기를 한번 잡아야 할 때가 됐다”라고 말한다. 강 대표는 “어떤 의원은 국회의장실과 연계해서 나간다면서 오히려 몇 사람 더 추천해 달라기에 하도 기가 차서 경고를 줬다. 또다른 의원은 원내대표실에 아무런 통보도 안하고 출발 당일 공항이라며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고 해 어이가 없었다”고 씁쓸한 기억을 소개하기도.
경남·울산 의원들이 7월 초 부부동반 해외 골프여행에 나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한나라당에 팽배한 “기회만 되면 무조건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박희태 국회 부의장과 김학송 경남도당, 최병국 울산시당 위원장 등 10여 명은 이달 1일 한국을 출발해 4박5일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를 여행하며 골프를 즐겼다가 일부 언론에 사실이 보도되면서 구설에 올랐다.
▲ 조갑제 월간 조선 대표 | ||
문제는 해당 의원들은 물론 당내 상당수 의원들도 문제의 외유 행각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억울하다”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 이들은 특히 한나라당에서 얼마 전 이해찬 총리가 수해 경보가 내렸음에도 휴가중인 제주도에서 골프를 친 것과 자신들의 행동을 같은 반열에 놓고 비판하는 데 대해 “총리는 국내에 있는 사람이고 또 재난사태를 총지휘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경우가 다르다”(P의원)고 강변해 주변의 빈축을 샀다.
이들 외에도 한나라당 내엔 앞서 강 원내대표가 지적한 대로 별의별 이유를 달아 외유를 떠나는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초재선 의원 8명은 ‘한-러시아 유라시아 대장정’이란 타이틀로 7~8월 한달간 부산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겠다고 나선 상태. 여의도 정가에선 “다른 할 일도 많을텐데 그런 식으로 귀중한 시간을 소진해야 하느냐”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실정. 여기에 한 초선 의원은 국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미국에서 한 달간 ‘홈 스테이’ 방식으로 영어연수를 가질 계획을 세워 “국회의원인지 대학생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반응을 낳고 있다.
무분별한 ‘외유 열풍’과 함께 골프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한나라당이 ‘웰빙 체질’을 대표하는 코드 중 하나다. 곽성문 의원의 골프장 폭력사건(6월4일)과 경복고 출신 의원 5명(김덕룡 남경필 김태환 장윤석 김충환 의원)의 국회 개원식날(6월2일) 라운딩 등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듯 한나라당 의원들의 잦은 골프 모임은 당 안팎에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특히 영남권의 경우 의원들간 우호 증진을 위해 주말이면 삼삼오오 지역구에서 골프회동을 갖기로 유명한데, 6월 하순 시당 위원장 경선이 있었던 부산에선 출마한 두 후보가 지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경쟁적으로 ‘골프 접대’를 벌여 “시당 위원장을 골프장에서 뽑냐”는 뒷말을 낳기도.
부산-울산-경남 의원들도 두세 달에 한 번씩 라운딩한 후 폭탄주로 마무리하는 ‘미풍양속’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영남권 초선 모임인 ‘낙동모임’ 의원 20명은 6월 중순 부산에서 무려 다섯 팀이나 되는 대규모 골프 모임을 추진했다가 지역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부랴부랴 취소한 일도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선명 야당론’을 주장하는 일부 의원들은 체질개선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상태. 김문수 의원은 “한나라당은 패배의식조차 없는 정당이며 웰빙·기득권 세력에 불과하다”고 꼬집었고,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의원들이 정치적 고민은 부족한 반면 끼리끼리 친교 문화는 활발해 대조적이다. 좋은 게 좋다며 튀지 않고 휩쓸리는 것도 한나라당이 ‘만년 야당’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화”라고 언급했다.
당외 보수세력들의 시선 역시 차갑기는 마찬가지.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도 얼마 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한나라당을 ‘나태와 무책임이 체질화된 정당’ ‘굼벵이, 살찐 돼지, 웰빙족 이미지를 가진 정당’이라고 맹비난했다.
조 전 대표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은 모든 생명있는 존재의 자위본능을 말한다. 한나라당은 그런 자위본능이 없다는 점에서 지렁이보다 못한 무생물, 즉 ‘돌’”이라고 극언을 퍼부은 후 “한국인이 이런 위기에 이런 야당을 갖고 있다는 것보다 더 큰 불행도 없을 것이다”고 성토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