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산업엔 ‘햇빛’ 금호타이어엔 ‘그늘’
지난 8월 17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금호타이어 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박삼구 회장은 이에 맞서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작은 사진은 8월 27일 열린 금호산업 채권금융기관 협의회 실무책임자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삼구 회장은 지난 9일 금호산업 채권단 보유 지분 중 ‘50%+1’주를 주당 4만 179원에 우선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21일 제시한 주당 3만 7564원(6503억 원)보다 무려 500억 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6503억 원을 제시할 때 인수 가격을 충분히 쳐준 것이라는 의사를 피력했던 박 회장은 19일 만에 약 8%를 더 얹었다.
박 회장의 제시 가격은 채권단 내에 돌고 있는 ‘주당 4만 원 이상, 총 7000억 원 이상’이라는 기류에 부합한다. 하지만 채권단은 지난 11일 전체회의를 열어 박 회장이 제시한 금액보다 181억 원이 많은 7228억 원을 최종 매각 가격으로 정하고 이를 채권단에 부의하기로 결정했다. 채권단 내 의결권 75% 이상 동의하면 이 가격으로 박 회장과 채권단이 주식매매계약을 한다.
박삼구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렇지만 채권단 내의 반응은 싸늘했다. 우선 단일 최대주주인 미래에셋 측이 강경한 자세로 나온 데다 채권단 내 일부 금융기관 사이에서도 박 회장의 제시 가격이 낮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내 결론을 끌어내지 못한 산업은행은 지난 4일 박삼구 회장에게 인수 가격을 다시 써낼 것을 주문했다. 채권단이 6503억 원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의미다. 산업은행은 박 회장에게 채권단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을, 그것도 연내 매각이 가능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제시할 것을 ‘통보’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던 것. 결국 박 회장은 5000억 원대에 인수를 희망했던 금호산업 지분을 7000억 원대에 인수하고 싶다고 손을 든 셈이다.
지금으로서는 금호산업 매각이 틀어지는 것은 박 회장이 채권단이 결정한 최종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밖에 없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7228억 원이 최종 가격은 아니다”라며 “부의 결과 채권단 동의를 거쳐 최종 가격이 결정되면 그때 정확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시 금액보다 불과 181억 원이 높기 때문에 박 회장이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채권단 역시 박 회장이 제시한 가격과 채권단 내 합의 가격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반기는 분위기다. 더욱이 채권단 내에는 박삼구 회장에 우호적인 은행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일부 은행의 경우 오히려 더 싸게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할 정도”라며 “수조 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기업을 연내 매각에 연연해 그렇게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양쪽 분위기로 봐서는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을 날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그룹 재건’이라는 최고의 추석선물을 받게 되는 셈이다.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는 박삼구 회장과 김창규 금호타이어 사장이 각자대표체제로 맡고 있지만 최대주주는 지분 14.15%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은행이다. 산업은행이 13.51%, 국민연금공단이 7.44%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등 채권단이 42.1% 지분을 갖고 있다. 박삼구 회장(2.65%)과 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2.57%) 등 박 회장 쪽 지분은 약 9.11%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 있다.
금호타이어 역시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처럼 박 회장이 되찾아야 할 회사다. 박 회장은 채권단 보유 지분 전량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노조와 협상에 실패한 박 회장은 노조가 파업을 실시하자 직장폐쇄라는 강경책으로 맞섰다.
일부에서는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금호타이어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앞세워 전면파업까지 강행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금호타이어 노조도 할 말이 많다. 본교섭에 나선 회사 측 제안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인 데다 이미 노조와 합의했던 부분들까지 무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회사 측이 노조를 기만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들어 타이어업계가 전반적으로 부진하지만 지난 2010년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간 후 지난해까지 금호타이어는 좋은 실적을 거뒀다. 덕분에 지난해 말 워크아웃에서도 졸업했다. 당초 금호타이어의 위기가 초래된 까닭은 지난 2006년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당시 금호타이어의 자금 5000억 원을 투입한 탓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금호타이어는 자금 압박에 시달렸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무너졌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에 당초 생각했던 5900억 원보다 1147억 원이나 더 쓰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채권단은 그보다 181억 원을 더 쓸 것을 주문했다. 그렇지만 금호산업 채권단과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다. 본인이 최대주주로 돼 있지도 않은 금호타이어에는 직장폐쇄 결정을 내린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가진 게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진 박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에 필요한 7000억 원의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관건이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경영진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최고결정권자인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자금 확보에만 눈이 멀어 금호타이어 교섭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