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가라!” 만병통치약 ‘섹스’
▲ 영화 <싱글즈>의 한 장면. | ||
섹스가 치료에 도움을 주는 질병을 열거하자면, 질염과 요도염을 비롯해 안면홍조·골다공증·치매·우울증·건망증 등 부인과 질병부터 정신과 질병까지 그 병의 수가 정말 다양하다. 앞서 열거한 질병은 모두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생길 수 있는 질병으로 폐경기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섹스가 특효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그럼, 수녀들은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더 쉽다는 말인가.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섹스가 여러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섹스를 못했다고 해서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니까.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섹스가 병의 치료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섹스 라이프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규칙적인 운동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할 때 걸리는 병을 섹스로 치유할 수 없다면 건강한 몸을 만들어 병을 예방할 수밖에. 어쨌든 섹스 파트너가 없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수년간 섹스리스인 나는 피부 트러블과 골다공증 증세는 없지만 남자친구가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신적으로 허약해진 것을 느낀다. 일주일 동안 밤을 꼬박 새우면서 전쟁 같은 마감을 치르고 잠에 곯아떨어져 비몽사몽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을 때조차 ‘외롭다’는 생각이 든 지 벌써 2년째. 어차피 잠에 취해 있으니 대화를 나눌 기운조차 없는데도 ‘내 옆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섹스는 하지 않아도 좋으니 누군가 내 옆에서 살을 맞대고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외로움도 극에 달하면 병이 되는 모양이다. 나뿐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 주변의 나이 든 싱글은 모두 “우울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이 든 싱글로 혼자 산다는 것은 질병에 걸리기 쉬운 건강하지 않은 신체를 가졌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로움에 노출되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 그래서 우리는 애완동물을 키우기도 하고, 룸메이트를 두면서 외로움에 지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결국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눕는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은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다. 물론 등 돌리고 잠든 남자친구의 옆에서 잠들 때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 외로움에 오래 노출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 사진은 KBS <올드미스다이어리>의 한 장면. | ||
정신과 의사이자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의 저자로 유명한 김혜남 원장은 “인간은 타인을 필요로 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기를 버려두는 세상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되어 타인에 대한 불신감이 커진다. 그래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긴 사람일수록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회와의 100%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기대하는 바가 크다. 타인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불신감이 더욱 커져 결국 사회와 관계를 맺는 데 서투른 사람이 된다. 외로움이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외로움이 중증이 되면 사회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건강이 망가지면 정신도 망가지니까. 그런데 혼자 살면 스스로 철저히 절제하지 않는 한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뿐인가. 이제 막 러브 모드로 돌입하려는 순간 그에게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유혹하지는 못할망정 쓰레기장 같은 집을 그에게 보이기 싫어 “집 구경 하고 싶어요”라고 조르는 그를 달래 집으로 돌려보낸 게 한두 번인가 말이다. 차라리 룸메이트를 핑계로 모텔로 직행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그는 이런 나의 마음을 절대 모를 것이다. 타인과 규칙적으로 교류하는 것, 규칙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이처럼 크다.
그런데 결국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남자가 아니면 부모, 친구, 선후배로 풀어야 하는 걸까. 주변을 돌아보면 일과 취미 생활로 외로울 틈이 없는 ‘화려한 싱글’을 흔히 볼 수 있지 않나. 에너지 넘치는 골드 미스를 볼 때마다 나는 ‘저들은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혜남 원장의 얘기는 다르다. “일과 대인 관계는 인간에게 전혀 다른 의미다. 인간관계를 회피하고 일과 취미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타입의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 에너제틱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큰 외로움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취미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라고 스스로 세뇌하면서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멀리한다.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결국 문제는 자신감이다. 베스트셀러인 <시크릿>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처럼 타인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스스로를 대해야 한다. 남자친구를 만들든 그렇지 않든 자신에게 애정을 갖고 스스로 우울하게 놔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섹스와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실천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원 나이트 스탠드면 어떻고, 지나가는 사랑이면 어떤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에디터=박훈희
도움말=김혜남 신경정신과, 황세영 산부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