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구하기’ 희생양 될 수도 있다
지나칠 정도로 커다란 관심을 내보이는 그네들의 속내는 ‘도청 X파일’이 연예계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부분이었다. ‘도청 X파일’에 연예계 최고의 비밀 가운데 하나인 ‘성 상납’ 관련 사안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심지어 한 매니저는 “세인들의 ‘관심 돌리기용’으로 연예인 관련 내용을 터트려 더 큰 비밀을 감추려 할 수도 있다”며 불안해 할 정도였다.
아직 단 한 번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난날 연예계에는 ‘성 상납’이라는 악습이 만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2년 ‘연예계 비리수사’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는 “수사도중 한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성 상납 관련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론이 크게 동요했지만 수사 결과 정확한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역풍만 거셌다. 수사 도중 총책임자인 김규헌 전 부장검사가 충주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좌천설을 제기한 것. 비록 이니셜이지만 국회의원 3명과 여자연예인 3명의 이름까지 거론한 홍 의원은 “연예인에게 성 상납을 받은 여당 의원을 수사하다 좌천당했다”고 주장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엄청난 루머를 양산해냈다. 수십 명의 여자 연예인이 거론됐고 몇몇 연예기획사는 회사 차원에서 고위층에게 성 상납을 해왔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게다가 몇몇 중년 탤런트가 ‘채홍사’ 역할을 담당했다는 소문까지 더해졌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관계자의 증언이 그 뒤를 이었다. 직접 성 상납에 관여한 바 있다는 한 매니저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 상납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를 폭로한 것. 하지만 이 당시에도 성 상납 관련 내용은 루머 수준에 머물렀을 뿐,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도청 X파일’로 인해 다시금 성 상납이 연예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도청 X파일’은 국정원(당시 안기부)의 특별도청팀인 ‘미림’을 통해 제작된 도청 테이프와 그 녹취록을 지칭한다. 미림팀은 92년에 조직됐다 그 이듬해 해체됐고 다시 94년에 부활해 98년에 해체됐다. 이에 따라 ‘도청 X파일’에는 92년, 그리고 94년에서 98년 사이 벌어진 고위층의 은밀한 행동과 발언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내용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당시 미림팀은 유력 인사들이 요정·음식점·호텔 등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도청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도청 X파일’이 담고 있는 다양한 비밀 가운데 성 상납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까.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들은 ‘가능성이 적다’고 얘기한다. ‘도청 X파일’의 경우 대부분의 내용이 유력인사들의 대화를 도청한 ‘통상적인 도청’으로 사생활까지 전문적으로 파헤치는 ‘미행 감시’와는 거리가 멀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미행 감시가 성행하던 시기에는 성 상납과 관련된 정보가 꽤 있는 편이었다”라며 “당시에는 미행 감시를 통해 국회의원을 비롯한 유력인사가 누구와 호텔에 들어가는지까지 확인하곤 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확보된 정보가 유출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다만 대화 내용 가운데 성 상납 관련 대목이 기록됐을 가능성은 부인하지 않았다. 성 상납 전후의 대화, 다시 말해 ‘누구를 준비했다’ ‘그날 선물은 잘 받았느냐’는 식의 대화가 도청됐을 가능성이 배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미림팀이 ‘통상적인 도청’이외의 ‘특별한 업무’에도 관여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공운영 전 미림팀장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그 일(도청)만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특별한 오더를 미림에 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한 ‘특별한 업무’란 특정인에 대한 미행·감시·도청이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 결국 ‘도청 X파일’ 안에는 몇몇 유력 인사의 경우 사생활까지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아 ‘성상납’의 구체적인 정황이 기록되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공 전 팀장이 미림팀을 맡기 이전에 연예계를 담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연예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몇몇 언론을 통해 그가 90년대 전후 연예계, 특히 성 상납과 관련된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것. 이런 이유로 그가 미림팀을 이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예인 성 상납과 관련된 부분도 도청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연예관계자들의 우려 섞인 시선이다.
그렇다면 미림팀이 활동했던 당시 연예계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당시 가장 큰 사건은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담당했던 ‘95년 PD 수뢰사건’. 당시 수사 대상은 ‘연예계 비리’였고 수사 결과 역시 여기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연예계는 수사 내용보다 훨씬 많은 루머로 인해 홍역을 앓아야 했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탤런트 A, B양 등이 고위층에 성 상납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등 다양한 루머가 나돈 것.
연예관계자들은 ‘만약 당시 루머 가운데 진실이 있다면 이 내용이 ‘도청 X파일’에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특히 당시 성 상납 관련 루머의 대부분이 대기업 오너 혹은 2세와 여자 연예인의 부적절한 관계였던 만큼 재계 관련 도청 내용에 성 상납 흔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앞서 언급한 2002년 연예 비리 수사 당시 불거진 내용이나 홍 의원이 폭로한 내용은 대부분 미림팀이 해체된 99년 이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도청 X파일’에 담겨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정황들로 인해 현재 연예계에는 ‘폭풍전야’를 방불케 하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다. 당시 루머의 주인공이었던 여자 연예인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
지금까지 연예인의 성 상납과 관련된 이야기는 ‘알아도 아는 체하지 말아야 할’ 사안이었다. 연예인보다는 상납을 받은 고위층 인사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비밀이 가득 담긴 ‘도청 X파일’이 공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 그들 입장에서는 ‘도덕적인 치명타’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성 상납 관련 사안을 이용해 더 큰 비밀을 덮고자 할 수 있다는 ‘위기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어느 매니저의 얘기처럼 ‘관심 돌리기용’으로 연예인만 희생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인 것이다.
과연 이번 ‘도청 X파일’ 파문을 통해 ‘연예인 성 상납’의 실체가 드러날 것인지. 연예계는 숨을 죽인 채 검찰의 수사 방향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