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발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앞으로 유엔이 특정입장이나 주장에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 적절히 ‘조치’하겠다”는 대목이다. 참의원 특별위에서 의원들은 일본의 유엔 분담금 축소, 심지어 유엔 탈퇴 등을 주장했고 아베가 말한 조치의 뜻은 분담금 축소에 무게 중심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반 총장에 대한 공격은 반 총장만이 아니라 중국 전승절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봐야한다. 아베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총재특보가 9월 14일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맡을 자격이 없는 국가’라며 한국을 걸고넘어진 것에서 일본 조야의 혼네(本音)를 보는 듯하다.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탄생된 기구다. 반 총장은 중국 전승절에 앞서 지난 5월에는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절 행사와 우크라이나 및 폴란드의 전승절에도 참석했었다. 반 총장도 말했듯이 유럽의 행사에는 가고 아시아 행사에 안 가면 그것이 중립위반이다.
일본도 반 총장의 중립위반을 말하려면 러시아 참석 때부터 그런 주장을 했어야 한다. ‘항일 전승절’이라는 명칭이 자국을 겨냥했다는 구실로 중립위반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나 여기서의 일본은 ‘제국주의 일본’일 터이다. 그런 주장은 안보법을 강행처리한 일본이 제 발 저린 격이다.
흔히 전쟁 참회와 관련해 일본은 같은 패전국인 독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전승절 문제가 하나 더해졌다. 5월의 러시아 전승절 때 메르켈 독일 총리는 비록 열병식 참관을 하지 않았으나 서유럽 지역 국가원수 중에서 유일하게 참석했다.
아베 또한 중국 전승절 행사에 자진 참석해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물론 아직 한 번도 정상회담을 갖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과 한중일 정상 간의 화해의 자리로 만들었어야 했다. 일본 정부의 반기문 때리기는 아베의 반성 없는 종전 70주년 담화와 함께 일본 외교의 용렬함을 과시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나 반 총장의 참석이 다소 못마땅하더라도 입을 다물어 주는 것이 경제 대국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분담금 축소를 들먹이며 돈으로 협박하는 치사한 모양새다.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게 꿈이다. 그런 외교력으로 안보리 진출은 언감생심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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