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도박 아닌 ‘반상의 사랑얘기’ 쫑긋
<위기소녀> 원작 소설 <바둑 두는 여자> 표지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유역비.
<천안문>에 대해 프랑스 문단은 “유리조각처럼 정교하면서 간명한 문체로 이루어진 아름답고도 보편적인 우화”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고, “1989년 맨주먹의 젊은 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마오쩌둥의 폭압적 체제에 항거하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을 그린 작품이지만, 비장하고 영웅적인 서사 대신 보다 더 깊이 있게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했던” <천안문>은 매년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들이 추천한 책 중에서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선정되었다.
<위기소녀>는 샨사가 2002년에 발표한 소설. 당시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한국에는 <바둑 두는 여자>로 번역·소개되었다.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의 곳곳을 점령하고 있던 중일 전쟁 기간 중에 중국인 바둑 천재소녀와 일본군 장교가 만나 바둑을 통해 사랑에 빠져드는 모습을 그렸다. 일본군 장교는 제국주의·군국주의의 야만적 전쟁 놀음을 반성하게 되고 16세 중국 소녀는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이야기다. 다음은 ‘다음(daum)’의 블로그 ‘이요의 숨어있기 좋은 방’에 2013년 5월에 실린 서평의 한 대목.
“…제목도 <바둑 두는 여자>이고 두 남녀가 바둑을 매개로 만나지만, <미생>처럼 각 잡고 바둑 이야기 하는 소설은 아니다. 바둑에 대해 몇 번 나오지는 않지만, 그 묘사들이 적확하고 폐부를 찌른다. 바둑돌 놓는 법을 통해 남자의 마음을 잡는 자신만의 방법이라든가, 결국 전쟁의 군사는 바둑돌같이 이용된다는 통찰은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데도 인상 깊다….”
아무튼 참 궁금하다. 작가 샨사는 보나마나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중국 태생이니 아마도 어렸을 때 바둑을 배웠을 것이며 문학 신동이었으니 바둑도 진도가 빨랐을 것이다. 여주인공인 16세 바둑 천재소녀는 어쩌면 샨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샨사는 필명이고, 본명은 얀니니(Yan Ni-Ni)라고 하는데, 샨사라면, 일본 300년 쟁기사(爭棋史)를 수놓았던 바둑 4대 문파 중에서도 발군이었던 본인방 가문의 초대 장문인이 바로 샨사(算沙) 아닌가. 작자는 필명을 통해서라도 못 다 이룬 바둑의 꿈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인 것은,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소설 <시부미>와 같다. 우연이겠지만, 서양인의 눈(샨사도 프랑스에 살고 있으니까)으로 서양인에게 아주 낯선 바둑을 소설의 소재로 들고 나오는 단초로 삼기에는 1930년대 중국이 그럴 듯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위기소녀>는 만주, <시부미>는 상하이가 배경이다. 격동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국적이 다른 남녀가 만나 스토리를 만들어가기에 적격인 무대다. <위기소녀>는 16세 중국인 소녀와 일본군 장교가 만나 이성과 관능의 궤도를 아슬아슬 넘나들다가 비극을 맞는다. <시부미>는 서구 열강이 조차하고 있던 상하이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니콜라이가 부모를 잃고, 종전 후 본국으로 퇴각하는 일본군 장성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 고수(전문기사 9단쯤?)의 집에 입양되고, 거기서 바둑과 함께 동양의 신비한 무예를 습득해서는 국제스파이로 활약한다.
지난해 우리도 <스톤>과 <신의 한 수>, 두 편의 바둑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찬반이 분분한 가운데, “바둑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처음 나온 바둑영화가 폭력과 사기도박으로 얼룩진 것이어서 사실 보고 난 느낌은 착잡했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샨사라는 재불 중국인 여류 작가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