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로 전락한 수사관들 “우린 왜 있는 겁니까”
검찰 내 수사관들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요신문DB
‘검란’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이 낙마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심(私心) 때문이었다는 게 지금까지도 정설로 알려져 있다. 한 총장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요직을 차지하기 위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검찰개혁안으로 내놨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당시 최재경 중수부장 등 특수수사 라인이 한 총장에게 거세게 반발했고, 한 총장이 이를 최 부장에 대한 감찰 카드로 무마하려고 했다가 종국에는 검란 사태에 이르렀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한 총장 주변에는 측근 몇 명 외에는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는 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익명의 글들이 끊이지 않았고, 검찰 간부들 역시 그에게 물러날 것을 압박했다. 아무리 총장이 잘못했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한 총장에게 등을 돌릴 수 있었을까.
사실 수사관 등 검찰 내 일선 직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 총장으로부터 마음이 떠나 있었다. 아니, 마음이 떠났다는 것은 어쩌면 한가한 표현일지도 모를 정도로 검찰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한 총장이 취임 이후 수사관이 아닌 검사가 직접 수사하라고 일선 청에 지시했던 게 검사와 수사관, 실무관 등을 모두 불편하게 한 원인이었다. 검사에게는 일이 더 많아진 반면 수사관들은 일은 줄어들고 수사에서 배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 총장의 논리는 검사가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직접 조사하는 게 맞는 데다, 검찰 내부 정보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이는 수사관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그야말로 심각했다. 수사관이 검사의 파트너라는 인식이 검찰 내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는 한 수사관은 “예전에는 검사와 수사관은 사실상 한 몸이었는데 한 총장 때부터 수사관은 단지 수사를 위한 도구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아 씁쓸할 때가 많다”며 “우리가 왜 밤을 새워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별로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일선 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수사관도 “예전에는 부장검사와 함께 기자들을 만나 회식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며 “압수수색을 나갈 때도 과거에는 영장을 발부받기 전부터 어디로 무엇 때문에 가는지를 검사와 수사관이 함께 의논했지만 이제는 압수수색을 나가기 위해 승합차에 오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다. 차량에 오른 뒤에야 어디로 간다는 설명을 듣지만 그마저도 압수수색 대상을 검사가 지정해줘야만 들고 나올 수 있다”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수사관들이 검찰 내부 정보를 외부에 흘리고 있다는 ‘한상대식’ 인식에 대해 느끼는 일선 수사관들의 모멸감은 수사 의지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한 총장 때 수사관들이 외부에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고 해서 감찰을 많이 했고 실제 기소된 사례도 적지 않다”며 “그런데 너무 사람들을 몰아세우니깐 수사관들 입에서 ‘검사들이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외부에 흘리면서 왜 우리 탓만 하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이러니 수사 역량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포스코 수사의 회계분석을 맡아온 한 검찰 수사관이 포스코 수사에 대응하는 로펌에 취업하기 위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취업심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그즈음이었다. 포스코그룹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에 근무해온 이 수사관은 지난 7월 하순 사직서를 냈다. 수도권 지청 소속으로 대검찰청에 파견된 이 수사관은 회계사 특채 출신이다.
그는 포스코 수사가 시작된 뒤인 지난 4~5월 서울중앙지검에 다시 파견을 나가 포스코 수사 관련 회계분석을 담당했다. 해당 수사관은 사직서 제출 뒤 주변에 “대형 로펌에 가게 됐다”고 공공연히 밝혔으며, “포스코 수사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고 하청업체 회계분석에만 관여했지만 행여 문제가 될까봐 취업심사를 신청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가고자했던 로펌에서 억대 연봉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이직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굳이 위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검찰 수사관들 중에선 금전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대기업으로 이직한 경우가 적지 않다. 수사관 출신으로 현재 대기업에 근무 중인 한 인사는 “예전에야 검찰 수사관이라고 하면 거의 검사에 버금가게 봐줬기에 할 만했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어디 그러느냐”고 반문하며 “검찰 내에서 고생하던 것을 떠올리면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대우 받으면서 일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많은 수사관들이 기회만 되면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자부심이나 사명감을 갖고 수사관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던 이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었다. 채 전 총장이 대검 차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한상대 총장을 모셨던 만큼 일선의 분위기를 잘 알고 총장 취임 후 다독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낙마하면서 지금까지 한 총장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는 절대 검사 혼자 할 수 없다. 한다고 해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훌륭한 인적자원들이 검찰을 빠져나갈 것이고 그러면 결국 검찰 수사 역량에 문제가 생기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또한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