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 물러선 ‘무대’ ‘그래도 시간은 내 편’
지난 2일 노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윤상현 정무특보. 작은 사진은 원조 친박 이정현 최고위원과 최근 친박 행보를 걷고 있는 김태호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왼쪽부터).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두 번째 패배는 청와대의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권고에 대해 김 대표가 수용한 장면이었다. 지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배신의 정치’를 언급하며 유 전 원내대표 사퇴를 종용하자 김 대표도 결국 그 의중을 수용했다. 처음엔 유 전 원내대표를 막아주던 김 대표도 결국 “거부권 행사에 대한 대통령 뜻은 존중돼 당에서 수용됐다”며 유 전 원내대표를 사퇴시켰다.
세 번째 패배는 김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겠다던 오픈프라이머리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김 대표가 차기 총선 공천룰을 오픈프라이머리로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청와대와 친박계 핵심 의원들의 반발이 거듭되자 또 다시 자신의 주장을 거둬야했다. 김 대표는 “더 이상 청와대와 공방 벌일 생각이 없다”며 청와대 주장을 수용했다.
이 같은 김 대표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무대(무성대장)’라는 별명처럼 뚝심과 카리스마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명분과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느껴야하며, 비박계는 더 이상 김 대표를 유의미한 리더로 생각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을 남겼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너무나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당 물밑에서는 새로운 기류도 감지된다. 김 대표의 이 같은 행보를 전략적인 선택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김갑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는 “김 대표가 청와대를 이길 수는 없고, 청와대도 서청원 최고위원 등으로 내년 총선을 이끄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김 대표도 청와대가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따라서 적당히 수위조절을 하면서 오픈프라이머리, 개헌 등 이슈 등을 툭툭 던지며 치고 빠지고 맷집으로 버티면서 자기 존재감은 지속적으로 과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임기가 정해진 권력이라면 시간은 미래권력의 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행보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친박의 공세와 세 과시가 지나치게 두드러지면서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한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연일 김 대표를 향한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공세가 거듭되고 있다. 최고위원회의 면면을 봐도 김 대표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원 친박으로 분류될 정도다. 원조 친박인 서청원 이정현 김을동 최고위원을 제외하더라도 김태호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까지 최근 친박 행보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윤상현 정무특보 등도 최고위원회 밖에서 지원사격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비박들의 불만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새누리당 내 현역 의원들 중 비박 비율이 친박보다 높은데도 친박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 참모 총선 출마, 대구 물갈이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비박계 결집 동력만 확보해줬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갑수 대표는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로 현역 의원들에게 장사를 잘했다. 자신은 비박계를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을 보여줘 일정부분 지지도 얻은 것으로 본다”며 “만약 청와대가 공세를 계속하다 김 대표가 사퇴해 조기 전당대회라도 벌어지면 전체적인 숫자에서 앞서는 비박계 김 대표가 재신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는 곧 바로 레임덕에 빠지면서 친박계에도 재앙이 온다”고 말했다.
오히려 김 대표가 좀 더 목소리를 높여도 좋다는 의견도 있다. 청와대가 공천에 대해 조언 수준을 넘어 비정상적으로 월권을 행사하려는 모양새가 있는 만큼 명분도 김 대표에게 더 있다는 것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를 날린다면 오히려 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면서 “자신을 날릴 수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김 대표는 ‘내각은 국정운영에 집중하고 당은 공천에 집중한다’는 좋은 명분으로 당대표 주도의 선거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김 대표도 확고한 대선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김 대표 행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흐르는 반박 기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청와대의 자신만만한 기류도 금세 사그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의 속성상 현재권력은 미래권력을 이길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년이면 어느새 4년차다. 콘크리트같이 단단한 지지율이 있더라도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 권력이라는 점에서 내년부터는 ‘무대의 반격’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