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보내주기엔…’ 인사 트라우마 스멀스멀
최경환 경제부총리(왼쪽)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등 투톱을 비롯한 장관 5명(작은사진 왼쪽부터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총선 출마 준비를 위해 장관직을 내려놓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준선 기자
현내각 속 현직 국회의원 출신 장관은 총 5명이다. 친박 실세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새누리당 대표 출신의 황우여 사회부총리가 투톱(Two Top)으로 꼽힌다. 여기에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과 지난 3월부터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있다.
이번 개각 논의는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발언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지난 7월 각료들의 여의도 복귀 움직임이 감지되자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해 각 부처를 잘 이끌어 달라”며 “개인적 행로는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출마 의사 표시를 자제하라는 경고성 발언이었다. 하지만 장관들의 입장은 다르다. 5명의 장관들이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선 공직선거법상 90일 전인 오는 1월 14일까지 물러나야 한다. 연말에 마무리 짓지 못하면 사실상 ‘강제 불출마’ 되는 셈이다.
특히 각 장관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다음 총선이 간절하다는 의견이 여의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최 부총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내년에 제대로 겨뤄보기 위해서는 20대 총선에서 꼭 당선돼야 한다. 친박 핵심인 최 부총리는 총선 후 전당대회에서 비박계인 김 대표에게 넘어간 당대표 자리를 다시 찾아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최 부총리가 흐트러진 친박 대오를 정비하고 박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우여 부총리는 내년 총선 당선 이후 국회의장 자리를 노린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5선인 황 부총리는 내년에 당선된다면 6선 고지에 오른다. 황 부총리는 지난번 국회의장 경선에서 정의화 의장(5선)에게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선수를 추가해 재도전하는 셈이다. 재선의 김희정 장관은 내년 총선에서 당선돼야 3선으로 중진 대열에 합류한다. 국회 내 여성 3선 의원이 매우 적은 만큼 내년에 당선만 된다면 김 장관에게는 큰 힘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3선의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재선의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도 내년 총선 출마 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5명의 장관들의 지역구도 출마만 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최경환 부총리 지역구인 경북 경산, 황우여 부총리의 인천 연수구, 유일호 장관의 서울 송파을, 유기준 장관의 부산 서구, 김희정 장관의 부산 연제 모두 여당 색채가 강한 곳이다. 다섯 곳 모두 현재의 지역구로 재편된 뒤에는 야당의 깃발이 꽂힌 적이 없다.
오히려 소위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구인 만큼 청와대가 눈독을 들일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가 내년 총선에 자신의 사람을 꽂는 용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지난 10월 5일 사표를 제출한 민경욱 전 대변인에게 황 부총리의 지역구를 넘기고 싶은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황 부총리의 지역구를 빼앗아 준다는 의견은 지나치지만 민경욱 전 대변인이 경선을 통해 ‘능력껏 빼앗으라’일 가능성은 높은, 열린 지역구로 볼 수 있다”면서 “최근 민 전 대변인의 행보를 본다면 지역구 관리에 신경을 썼고, 또 자신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유기준 장관과, 유일호 장관은 의사나 당선 가능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개각 명단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두 장관은 지난 3월에 임명돼 장관 업무 기간이 이제 막 6개월을 지났을 정도로 짧다. 총선 출마를 이유로 장관직을 그만두기에는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최 부총리, 황 부총리는 12월 복귀가 유력하다. 하지만 유기준, 유일호 장관은 의사와 상관없이 장관직에 앉은 지도 오래 안 됐기 때문에 계속 일을 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며 “장관도 장관 나름이지 사실 최경환 부총리 정도의 거물이야 일단 내보내줄 수밖에 없지만 유기준, 유일호 장관은 만약 청와대 명을 거스르고 억지로 나간다 해도 공천 못 받으면 끝인데 자신들 뜻대로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당사자들의 개인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5명의 장관 대부분이 요직으로 꼽히는 부처를 맡은 탓에 청와대의 새로운 인선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꺼번에 교체하기에는 중량감 있는 부처들이 포함된 까닭이다. 갑작스런 인사교체로 국정 운영에 혼선을 빚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칫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마라도 한다면 대통령 지지율에 악영향 정도가 아니라 정권 레임덕을 앞당길 수도 있다.
따라서 최근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거듭되는 충돌이 잠시나마 소강상태를 가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회의 협조 없이는 장관 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적지만 여당이 야당의 공세를 막기는커녕 청와대를 향했던 공세를 인사청문회 대상자에게로 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은 서로 목에 칼을 들이밀고 격렬하게 싸워도 선거가 닥치면 잠시 덮고 협력해 최선을 다한 후 다시 싸운다”며 “따라서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자당에 해가 될 정도의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