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 인구편차 3 대 1이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하자 지난 7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독립기구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출범돼 인구편차를 2 대 1로 줄이는 논의를 해왔다. 그러나 여야의 대립으로 결론을 못 내고 고작 현행 246개 선거구를 244~249개로 함이 좋겠다고만 했다. 당리당략을 놓고 싸우다가도 밥그릇 챙길 일에는 잽싸게 손을 맞잡는 국회는 선거구 획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누리당은 현행 의원정수 300명 범위 내에서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를 늘리자고 한 반면 야당들은 비례대표는 1석도 줄일 수 없고, 오히려 수십~100석 이상까지 늘리자고 주장했다. 염치없기로는 야당이 한 술 더 뜨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정치평론가는 같은 비용으로 의원정수를 현재의 2배인 600명으로 늘려 의원의 가치에 물타기를 하자고까지 제안했다. 의원의 특권을 낮춰 금배지를 향한 아귀다툼도 줄이고, 국회의원은 상식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을 바꿔보자는 취지다. 일리 있는 주장이나 기득권 지키기에 악착같은 의원들의 귀에 들리지는 않을 것 같다.
능력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맡을 수 있는 것이 공직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뽑기 위한 절차가 선거제도다. 그런데 우리의 각종 선거는 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있고 선거를 아무리 반복해도 시정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뽑아 놓고 후회하는 일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대의정치 선진국에서조차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시행됐던 추첨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효용성이 주창된 추첨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시민’ 가운데서 추첨을 통해 통치자를 택하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에게 통치자가 될 수학적 확률을 동등하게 보장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라고 간주됐던 이 제도는 선거를 통한 대의제가 도입된 뒤 역사에서 사라졌다. 직접적인 권리행사인 투표가 간접적인 동의로 그치는 추첨보다 나은 주권 행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제도는 기본적으로 과두정치, 엘리트정치, 귀족정치로 흐르는 속성이 있고, 그것이 민심과의 괴리를 초래하는 원인인데, 한국 정치에서 그런 특징들이 심한 편이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귀족과 서민 간에는 지식과 정보 수준에 차이가 컸다. 인터넷 시대는 공유와 소통을 통해 인간 능력의 평균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시대다. 일정한 자격과 사명감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치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인터넷 강국이라는데 추첨제라도 해서 권력의 물타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