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 받은 트럭도 이동하면 불법…뭐 이런 규제가…
지난해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 민관합동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푸드트럭 규제개혁이 주요 이슈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박근혜 정부가 출범 1년을 지나면서도 별다른 업적이 없다는 말이 나올 때쯤 청와대는 야심찬 기획 하나를 준비했다. 바로 ‘규제개혁 민관합동회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회를 보고 관계 장관과 실무국장, 민원인까지 모두 청와대에 모여 무려 7시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은 전국에 생중계됐고 국민들의 관심도 높았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이슈는 푸드트럭이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푸드카 제작업체 두리원FnF 배영기 사장은 푸드트럭에 대한 규제를 풀어줄 것을 호소했고 박 대통령도 큰 관심을 보였다. 자연스레 푸드트럭은 규제개혁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여기에 푸드트럭이 청년실업을 해결해 줄 ‘마법사’라는 인식까지 더해지면서 관심이 집중되자 청와대와 정부는 서둘러 규제를 풀었다.
정부는 화물차에 음식물 조리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고 식품위생법 규정도 변경했다. 이를 통해 2000대의 신규 푸드트럭이 생겨나고 6000여 명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의 기대와는 딴판으로 흘러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적법적인 절차를 거쳐 영업허가를 받은 푸드트럭은 고작 44대에 불과하다. 반면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으로 영업을 하다가 적발된 사례는 지난해 이후 올 8월까지 77건이나 발생했다.
또한 올 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전국에 푸드트럭 운영을 위해 개조한 튜닝대수는 277대에 달한다. 허가 받은 몇 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차량이 수백만 원의 튜닝 비용만 허비하고 놀고 있는 셈이다. 2000대 운운하던 정부의 기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오히려 탁상행정에 따른 규제개혁 실패사례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푸드트럭 창업 과정만 살펴봐도 왜 실패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우선 푸드트럭을 운영하려면 소형 트럭을 구입한 후 자동차구조변경과 안전검사를 통과해 개조를 해야 한다. 0.5톤과 1톤 화물차량만 개조가 가능하다. 그 뒤에도 위생교육과 건강진단, 영업신고 등의 여러 단계의 절차가 남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영업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는 3000여 개소의 영업장소가 안내돼 있지만 대부분이 장사에는 적절하지 못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트럭’답게 손님을 찾아 길거리를 나가고 싶어도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푸드트럭이 정해진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 곧바로 위법이 되는 것. 만약 푸드트럭을 타고 거리로 나서면 도로교통법에도 저촉된다. 말만 트럭이지 움직일 수 없는 바퀴를 달고 있는 셈이다.
푸드트럭 창업을 준비했던 이 아무개 씨(30)는 “일본에서 라면 조리법을 배워 푸드트럭을 운영하려 했다. 트럭까지 모두 준비됐지만 막상 영업을 할 장소가 없어 계속 대기 중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자리는 트럭이 오갈 수 없는 좁은 공간이거나 인적이 드문 곳이 대부분”이라며 “놀이동산, 공원 등 목이 좋은 곳은 이미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거나 하청업체들이 푸드트럭을 운영 중이다. 가끔 좋은 자리가 나올 때도 있는데 자릿세를 추가로 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마냥 확대할 수도 없다. 기존에 장사를 하고 있던 노점상인들 및 주변 영세상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전국노점총연합회는 공개적으로 푸드트럭 허용을 비난하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물론 불법노점상들이야 단속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가 가능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푸드트럭의 주요 메뉴와 겹치는 영세상인들의 타격은 정부가 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영업장소 확대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는 푸드트럭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부는 푸드트럭 영업 허용지역 선정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장에 부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장이 축제장 등을 영업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서 약속한 것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마냥 푸드트럭 사업에만 열중할 수도 없는 처지다. 푸드트럭 영업자를 모집 중인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장소 선정에 어려움이 있어 1차 모집에 이어 이번에도 겨우 1대만 계약할 것 같다. 사실 아직 1차 선정자도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자체가 나서 노력해도 한 번에 여러 대를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 역시 “쫓기듯이 푸드트럭 영업자를 모집 중이다. 적절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무엇이라도 결과물을 내야 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사실 신청자도 그리 많지 않다”고 털어놨다.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푸드트럭 합법화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주장한 6000개의 새 일자리, 400억 원의 부가가치 창출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정부의 말만 믿고 차량을 개조한 영세 푸드트럭 사업자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 트럭 개조 업자의 말만 듣고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지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