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떨군 남편의 다짐 “아내 끝까지 책임지겠다”
7월 25일 충북 청주시 청원경찰서 앞에서 6세 남아 살해 사건의 피의자인 아이의 어머니 양 아무개 씨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지난 7월 21일 밤 11시 16분께 양 씨의 남편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다. 이날 남편은 “아내가 이상한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가서 확인 좀 해달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접수한 인근 지구대는 즉시 남편이 알려준 청주시 사천동의 한 아파트로 출동했다.
아파트에 들어서 현관문을 열자마자 경찰은 ‘절대로 너 혼자 잘 살지마. 절대로’라는, 빨간색 펜으로 휘갈겨 쓴 낙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낙서는 작은방, 화장실, 거실, 옷장 등 집안 곳곳에서 이어졌다. 모두 ‘니 새끼 내가 데려가서 죽는다’ ‘니가 죽으래서 나는 더 이상 생각 않고 죽는다’ ‘너 절대로 잘 살지마 니 새끼 니가 죽인 거야’ 등의 원망과 적개심이 표출된 내용이었다.
낙서를 따라 집 안을 조사하던 경찰은 거실 소파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싸늘하게 식어 있는 김 아무개 군(6)을 발견했다. 품 안에는 김 군의 것으로 보이는 초록색 공룡인형이 놓여있었다. 당시 김 군의 시신에선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얼굴에 할퀸 것 같은 작은 상처가 있었고 목 부위에는 눌린 흔적이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앞서의 피고인 양 씨를 지목했다. 양 씨는 이날 오후 10시 20분께 남편 김 씨에게 “아이를 죽였다. 무섭다. 아이를 아버지 옆에 묻어주고 우리 둘이 멀리 떠나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남편은 “괜찮으니 일단 만나자”고 양 씨를 설득했으나, 양 씨는 “날 죽이거나 경찰에 넘기겠지”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사라졌다.
법정에서 검찰이 공개한 경찰 수사 자료를 보면, 양 씨는 이날 대천 해수욕장 인근 ATM기에서 4차례에 걸쳐 총 350만 원을 인출했다. 그렇게 나흘 동안의 도피 행각이 시작됐다. 이날 오후 10시 20분께 택시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한 양 씨는 50여 분 뒤인 22일 오전 0시 45분께 대전시 동구 용전동에서 내려 한 모텔에 투숙했다. 하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투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 씨는 택시와 고속버스를 이용해 오송역과 천안, 동서울, 마산 터미널 등을 전전했다.
양 씨는 도피 과정에서 옷과 샌들, 가방, 선글라스를 샀다. 인근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는 등 외모를 바꿔 경찰 수사를 피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청주 상당경찰서 형사과 강승호 강력팀장은 “양 씨가 머리와 옷을 바꾸고 휴대전화도 켜지 않아 위치 추적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날 밝힌 범행 동기는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다. 그동안 이들 부부는 남편의 가정과 아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잦은 말다툼을 벌여왔다. 지난 7월 18일에도 같은 이유로 다툼이 벌어졌고, 남편은 이튿날인 19일 오전 회사에 출근한 뒤 집으로 귀가하지 않았다. 양 씨는 말다툼 과정에서 남편이 “아이 없이도 살 수 있다. 아이 데리고 나가라”고 한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범행 전후로 자살을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 씨는 남편 출근 이후 인터넷과 휴대폰 등으로 자살 방법을 검색했고, 이를 따라 화장실에서 손목을 칼로 그으려했다. 이 과정에서 놀란 아들이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 “엄마 왜 그래?”라며 말렸지만, 양 씨는 아들을 밀어 넘어뜨렸다. 이후 방 안으로 들어가 남편의 셔츠를 잘라 목을 매려했지만 아들이 재차 말리자 양 씨는 옆에 있던 이불로 아들을 덮었고, 몸부림이 멈출 때까지 힘껏 눌렀다. 이후 양 씨는 이불을 덮은 채 아들을 안아 거실 소파로 옮겼다. 그리고 아들이 평소 좋아하던 공룡인형을 품안에 넣어줬다.
숨진 김 군을 방치하고 사건 현장을 떠나는 양 아무개 씨. TV조선 보도 화면 캡처.
검찰은 범행 이후 양 씨의 행적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양 씨는 이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보고 싶지 않다. 들어오지 말고 짐을 달라고도 하지마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지난 7월 21일 오전 돌연 양 씨는 남편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버리지 않을 거냐”며 화해하자는 취지로 전화를 걸었다. 같은 날 오전 11시께 만난 부부는 바람을 쐬러 대천 해수욕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이 “아이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양 씨는 “친구 집에 맡겼다”고 짧게 대답했다. 걱정이 된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자”며 차로 들어서자 양 씨는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며 사라졌다. 그 때가 밤 10시 즈음이다. 그리고 10시 20분 쯤 양 씨가 문제의 문자를 남편에게 보냈다. 그렇게 남편의 경찰 신고가 이뤄졌고 양 씨의 도피행각도 시작됐다.
변론에 나선 양 씨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면서도 “양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배심원들에게 판단을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양 씨 측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양 씨는 알코올중독인 아버지 밑에서 불우하게 자랐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어머니가 양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충격으로 수차례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왔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양 씨는 22세에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이후 가족과는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만큼 남편에 대한 의존도와 아들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양 씨 측 변호인은 “이런 상황 속 남편과의 말다툼 과정에서 ‘아들과 아내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혼자 남겨질 아들이 천덕꾸러기가 되고, 남편에게 버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살해하기에 이르렀다”며 “이 같은 피고인의 상태를 참작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양 씨는 범행 3개월 전 발달장애 증세를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심리상담센터를 찾았지만 양 씨 본인의 치료가 더 시급하다는 조언을 받고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검찰 역시 피고인 신문에서 양 씨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라고 물었지만, 양 씨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머뭇거리다 끝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변호인은 “‘나만 죽으면 아이가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다. 버림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합리적인가? 이것이 아이가 죽을 이유가 되는가?”라며 “이 자체가 비정상이다. 피고인은 당시 중증도의 우울증, 혹은 그와 비슷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어떻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삶의 전부였던 엄마가 왜 범행에 이르렀을까 참작해달라”고 호소하며 “피고인은 이미 스스로 형벌을 받고 있고, 그 형벌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변론했다.
양 씨는 최후진술에서 “변호사님이 마지막으로 할 말을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어떠한 형벌을 내리셔도 달게 받고, 아이에게 속죄하면서 죗값을 치르고 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열린 재판은 오후 6시께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사람의 생명은 우리 법질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익으로, 피해자 어머니로서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양육할 책임이 있는데도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살해해 엄한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피고인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 우울증세가 있었고, 자신이 죽으면 남은 피해자가 남편에게 버림받을 것이라 생각해 살해하게 된 동기 등 참작할 점이 있다”며 “피고인이 범행 직후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사실이 확인되고, 피해자의 죽음으로 누구보다 큰 정신적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으며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남편도 선처를 원하고 이전에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양형조건과 대법원의 양형기준상 권고형량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한 재판부는 살인죄 법정 최저형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한편 선고에 앞서 시민 9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양 씨에게 징역 1년(1명)·5년(4명)·6년(4명)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각각 재판부에 제출했다.
모든 재판이 끝난 뒤 남편 김 씨는 기자에게 “양 씨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이와 아내를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청주=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