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는 길어지고 품격은 높아졌다
“여성 고객들은 차세대 중국 시장이다!”
이처럼 벤츠는 회사 설립자인 칼 벤츠가 129년 전 세계 최초로 자동차 특허를 얻은 이래 자동차 업계 최초로 ‘여성’을 목표 집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사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변화를 눈치 채고 있었다. 여성들이 남편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 어느 정도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근래 들어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여성들처럼 독립적인 소비자들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감지했던 것이다.
스스로 자동차를 구매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이유는 남성과 달리 편리함과 세련됨을 우선시하는 여성의 기호에 맞춘 소형 자동차들의 증가와 세련된 디자인의 자동차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동차 마케팅 전문가인 슈테판 브라첼은 “여성들은 선택을 하는 데 있어 과거보다 더 자립적이 됐다”면서 “자동차를 선택할 때 남녀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가령 남자들은 역동적인 주행 능력, 마력을 중요시 여기는 반면 여자들은 안전성, 비용과 편리성 사이의 관계를 더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여성 고객들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히 큰 것은 아니다. <포쿠스>에 따르면 신차를 구매하는 여성의 비율은 15년 동안 정체 상태며, 두이스부르크-에센대학의 자동차 전문가인 페르디난드 두덴회퍼는 전체 구매 고객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츠의 경우에는 고작 18%에 불과하다.
사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포쿠스>는 지적했다. 여성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목표 집단인 여성을 상대로 광고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이와 정반대로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자동차를 홍보하는 데 있어 남성들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 여성을 이용하는 식으로 홍보가 이뤄져 왔었다는 것이다.
이는 모터쇼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모터쇼는 미모의 모델들이 점령하다시피 해왔다. 남자, 미녀, 그리고 자동차, 이 세 가지로 대변되는 것이 바로 모터쇼였다. 모터쇼에 참가한 자동차 회사들은 야심차게 준비한 신차를 선보이면서 경쟁을 하는 동시에 늘씬한 미녀 모델들을 앞세워 경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모터쇼의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다. 몇몇 자동차 회사들이 관람객들이 더 이상 섹스어필하는 모델을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점차 모터쇼 모델을 포기하거나 혹은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더라도 선정적인 차림의 모델을 도시적인 세련된 모델로 교체하는 회사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9월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는 기존의 모터쇼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처음으로 아찔한 하이힐을 신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을 모델들을 완전히 포기했으며, 아예 모델들을 한 명도 내세우지 않은 회사들도 많았다. 그런가 하면 정숙한 의상이나 스포츠룩을 입은 모델이 자동차를 홍보하는 전시관도 있었다. 덕분(?)에 자동차 마니아들은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자동차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며, 자유롭게 자동차 사이를 누비거나 마음껏 시승을 할 수도 있었다.
모터쇼 모델이 꼭 여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바뀌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모터쇼 무대에서 관람객들에게 자동차를 홍보하거나 설명하는 홍보직으로 남성 모델을 원하는 회사들도 늘고 있다. 전 모터쇼 모델이자 현재 ‘톱팀 에이전트’ 소속인 맨디 베른스트는 “올해 모터쇼 모델의 트렌드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올해는 남자와 여자 모델 비율이 50 대 50이었다. 과거에는 100% 여자 모델들만 원했었다”라고 말했다. 모터쇼 모델의 트렌드가 ‘에로틱’에서 ‘중성적인 카리스마’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베른스트는 “예전에는 모터쇼 모델들의 의상은 매우 섹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점차 전통적인 비즈니스 의상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가령 이번 IAA에서 벤츠의 경우에는 단정한 외모에 성숙미를 갖춘 모델을 원했는가 하면, 미니(MINI)는 이웃집 여자처럼 편안한 스타일의 모델을 원했다.
또한 각 자동차 회사들마다 원하는 모델의 범위도 넓어졌다. 자동차 회사의 마케팅 부서 관계자들은 알맞은 후보들을 뽑기 위해 단순히 에이전트가 보내온 모델들의 사진첩만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모델들의 상식과 자동차 전문 지식까지 요구하고 있다. 가령 무대 위에서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모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베른스트는 “그저 친절하고 예쁜 것만으로는 안 된다”라면서 “오늘날에는 자동차의 다양한 기능을 알고 있어야 하며, 기술적인 부분까지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드물게는 예쁜 외모에 입담이 좋은 기계공학 전공 여대생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물론 IAA에서도 여전히 남자들만의 세계가 펼쳐진 전시관도 많았다. 스포츠카 전시관들의 경우가 주로 그랬다. 여전히 잘 빠진 스포츠카 옆에는 아찔한 의상을 입은 늘씬한 미녀들이 서있었으며, 이는 튜닝업체 전시관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람보르기니 전시관이 대표적이었다. 람보르기는 늘 박람회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 모델들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런 까닭에 한 독일의 자동차회사 관계자는 “람보르기니 전시관에는 항상 가장 예쁜 모델들이 있다. 그래서 한번은 꼭 둘러보러 가곤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모터쇼에서 모델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모든 자동차 박람회에서는 모델을 고용하는 것이 전면 금지되었다. 지난 4월 열렸던 상하이 모터쇼는 최초의 모델 없는 모터쇼로 열렸다. 이는 과거 중국 모터쇼가 전라 혹은 중요 부위만 가린 채 보디 페인팅으로 분장한 모델까지 등장하는 등 성인 박람회를 방불케 했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아무리 여성 고객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해도 특별히 여성들만을 상대로 마케팅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포쿠스>는 지적했다. 브라첼은 “어떤 자동차 회사도 ‘여성들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로 유명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미지는 오히려 남성 고객뿐만 아니라 여성 고객도 모두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