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출신 ‘술독’에 빠~ 져 봅시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그러나 예외없이 무풍지대는 있다. 바로 고위공직자들의 사회다.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의 고위 공직 출신들에게 ‘사오정’ ‘오륙도’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일요신문>의 조사결과 이들의 재취업률은 무려 90%에 가까운 것으로 집계됐다.
<일요신문>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무조정실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3급 이상 공무원 퇴직 현황’(2002년 1월~2005년 8월 기준)을 기초로 경제 관련 ‘5대 파워기관’ 출신의 퇴직 이후 취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5대 파워기관이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감사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단 이번 조사에선 승진 혹은 발탁의 형태로 청와대나 다른 부처로 곧바로 자리를 옮긴 40여 명은 제외했다. 그 결과 ‘순수’ 퇴직자 총원은 93명이었고 그 중 현직이 확인되지 않거나 직업이 없는 퇴직자는 12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998년 IMF 경제위기 과정에서 조기퇴직한 일명 ‘사오정’ ‘오륙도’ 세대들의 5년 후 재취업 실태를 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대상자 25만여 명 중 재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37%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부분 직급과 월급이 낮아진 하향취업이었다. 게다가 26%(6만7천여 명)는 여전히 직업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무직인 사람들과 취업을 하거나 자영업자로 변신했지만 소득이 적어 국민연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합하면 그 수는 무려 40.6%(10만5천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통계를 비켜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요신문>이 지난 2002년부터 올해 8월까지 고위공직(3급 이상)에서 물러난 경제 관련 5대 파워기관 출신자 93명의 취업실태를 조사한 결과 재취업 성공률이 무려 87.1%(8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퇴직 후 직업이 없거나 현직을 알 수 없는 경우는 12.9%(12명)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한 ‘일반인’들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집계에 현직이 있지만 확인이 되지 않는 인원이 일부 포함돼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재취업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고위공직 출신 인사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현직 시절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기업이나 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시 ‘힘 있는 부처’ 출신들에게 적용되는 또 하나의 ‘전관예우’를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고위공직 퇴직자들의 이 같은 유관 기업 진출은 공직자윤리법 제17조에 규정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감사원 출신 인사들이 주로 대기업이나 공사의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면 재정경제부·국세청 출신들은 상당수가 공·사기업의 이사나 대표 등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기업 및 법인으로의 진출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출신이 유난히 많았다. 공정위의 경우 현직이 확인된 12명 전원, 국세청의 경우 현직이 확인된 15명 전원이 사기업이나 대학 등 법인에 근무하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경부(32명 중 11명), 금감원(7명 중 1명), 감사원(18명 중 7명) 출신의 사기업 및 법인 진출 사례는 상대적으로 이보다 훨씬 적었다.
재정경제부의 경우 퇴직자 32명 중 은행 관련 분야로 진출한 경우가 6명(수출입은행장과 감사, 한국산업은행 감사 등), 비은행 금융권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도 12명(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서울 외국환중개 이사,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한국자금중개 대표 등)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대학(윤진식 서울산업대 총장, 김광림 영남대 석좌교수)에 자리를 잡은 경우, 사업가로 변신한 인사(변양호 보고인베스트먼트 대표)도 있었다.
재경부 출신자 가운데 정치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인사들도 몇몇 눈에 띈다. 김진표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퇴임 이후 총선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고 현재는 교육부총리로 발탁돼 현 정부 최고의 실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김성진 전 전 이사관이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재경부 출신의 경우 일반 사기업으로 재취업한 예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삼성경제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병기 전 관리관과 대한생명 감사가 된 소일섭 전 부이사관, 삼정 KPMG 비상임고문이자 한국가스공사·LG전자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진념 전 장관, 정병태 BC카드 사장(전 이사관), 김기태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전 이사관)이 눈에 띄는 정도.
‘경제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금융감독위원회) 출신의 퇴직자는 총 7명이었다. 이들 중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은 법무법인 세종 고문인 이근영 전 위원장,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이 된 이정재 전 위원장, LG텔레콤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걸 전 부위원장 정도. 유지창 전 위원장은 현재 산업은행 총재를 맡고 있고 정치권에 투신한 이두형 전 이사관은 현재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5대 기관 중 퇴직자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가장 활발한 곳으로 조사됐다. 일반 사기업, 공기업 등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한 것으로 확인됐고 총 13명의 퇴직자 중 현직이 없거나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공정위 출신의 경우 가장 많은 수가 법조계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오성환 전 이사관(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김병일 전 부위원장(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임영철 전 이사관(법무법인 바른법률 변호사), 이남기 전 위원장(법무법인 화우 상근고문), 조학국 전 부위원장(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이 그 주인공.
반면 박동식 전 관리관은 퇴직 직후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이사장으로 진출했고 이한억 전 관리관은 직판공제조합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동욱 전 관리관은 기아자동차 상임고문, 유철 전 관리관은 삼성엔지니어링 상임감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삼성 SDI·두산중공업 사외이사(윤영대 전 부위원장), 롯데건설 고문(박상조 전 관리관) 등 사기업에 진출한 인사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하성 전 부이사관은 강단(경기대 교수)으로 진출한 케이스.
감사원의 경우 총 퇴직자는 20명. 이들 중 상당수가 일반기업이나 공사의 감사 등으로 진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퇴직 후 거취 미확인자는 3명이다.
공기업이나 협회 등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으로는 이영태 전 이사관(인천국제공항공사 감사위원), 안택수 전 이사관(손해보험협회 전무이사), 손승태 전 관리관(중소기업은행 감사), 심일섭 전 이사관(한국철도시설공단 감사), 김경덕 전 이사관(한국주택금융공사 감사), 이경섭 전 이사관(기술신용보증기금 감사), 김봉채 전 부이사관(교원나라레저개발 감사), 장광명 전 관리관(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 정재실 전 이사관(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감사), 황호부 전 부이사관(산은캐피탈 감사)등이 있다.
일반 사기업에 진출한 경우는 6명이었다. 특히 1급 상당의 감사위원으로 재직하다 예금보험공사 감사를 거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로또 사업자 KLS의 감사로 자리를 옮긴 손방길 전 관리관이나 삼성생명 감사위원으로 간 최영진 전 이사관 등이 눈에 띈다.
국세청 출신 3급 이상 고위공직 퇴직자들의 경우 주류 관련 기업으로의 진출이 상당히 많아 눈길을 끈다. 2002년 퇴직한 임지순 전 이사관이 대한주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을 비롯해 세왕금속 대표(정진택 전 이사관), 서안주정 대표(김용표 전 이사관), 삼화왕관 부회장(이동훈 전 이사관), 대한주정판매(주) 사장(김상렬 전 이사관) 등으로 진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반면 전공(?)을 살려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한 사례(김영목 전 이사관, 홍현국·김창남·기영서 전 이사관)도 있었으며 이진학 전 이사관(하나-안진회계법인), 최병철 전 이사관·전형수 전 관리관(김&장), 이재광 전 이사관(법무법인 율촌)등은 법무·회계법인으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