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도 받고 웃음도 팔고 동상도 공개
▲ 당 창건 60돌을 맞아 만수대 김일성 동상에 북한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 ||
인천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의 비행시간은 정확히 1시간. 기자를 포함한 1백30여 명의 ‘아리랑’공연 참관단이 평양에 도착한 이날은 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북한이 3일간의 긴 연휴에 들어간 첫 날이었다. 외국도 국내도 아닌 ‘제3국’ 북한의 수도인 평양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담아왔다.
평양을 방문한 첫날 평양시내는 활기에 넘쳐 있었다. 당창건 60돌 행사가 끝난 바로 다음날이어서인지 대부분의 건물에는 이를 축하하는 화려한 색과 형태의 각종 조형물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이나 차림도 비교적 밝았다.
정확히 2년 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기자에게도 이러한 활기는 낯선 풍경이었다. 평양의 대표적인 거리인 광복거리, 창광거리 주변에는 아이보리, 분홍색 등으로 치장한 건물들이 깨끗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었다. 2년 전 건물을 새로 짓고 리모델링하느라 온 도시가 공사장 같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던 화사한 색의 한복차림 여성들, 몰라보게 많아진 자동차, 나아진 전력사정 등도 새롭게 느껴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욱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태도였다. 특히 외국인과 남한 사람들을 자주 대하는 호텔 직원들의 자세는 놀라울 정도였다. 말을 붙이면 빼거나 대꾸를 하지 않던 그들이 이제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변해 있었다. 또 팁을 주면 손사래를 치며 도망치듯 물러나던 모습도 없어졌다. 식당 종업원에게 10달러를 팁으로 건네자 술도 더 갖다주고 보통은 이용할 수 없는 시설도 공개하는 등 그의 서비스(?)는 새벽시간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평양이 정말 좋아졌네요”라고 묻는 질문에 북한 안내원도 “많이 좋아졌다. 2~3년 동안 풍작이 되면서 배급도 다시 시작되고 살기가 좋아졌다”며 “몇 년 새 평양에 차도 많이 늘었고 살림집도 많이 지어졌다. 지난해부터는 공화국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등 예전과 같은 활력이 넘치고 있다”고 말했다.
▲ 소년문화궁전에서 공연 연습을 하는 어린이들(위).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에서 기념품을 파는 점원들(아래).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매번 같은 일정으로 진행되는 평양관광이지만 이번 방문 일정이 과거와 다른 점도 있었다. 북한 사람들에게 성지나 다름없는 만수대 동상에 관광객들에게도 ‘참배’가 허용되고 있었던 것. 2년 전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북한 당국이 관람 허가를 하지 않았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다.
소년문화궁전에서 어린 학생들의 각종 공연을 관람한 일행은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일정인 예술공연 ‘아리랑’ 관람을 위해 5·1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들어선 우리 일행을 반겨준 것은 수만 명에 달하는 평양시민들과 행사에 출연하는 학생의 환호,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 ‘반갑습니다’였다. 기자는 그 규모와 환호에 고무되면서도 압도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녁 8시 정각에 시작된 ‘아리랑’ 공연의 정식 명칭은 ‘<김일성상> 계관작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15만 명을 수용한다는 5·1경기장은 엄청난 인원과 장비, 형형색색의 무대조명으로 인해 오히려 좁아보였다.
현재 북한은 아리랑 공연의 입장료로 1등석 1백50달러(약 16만원), 2등석 1백달러를 받고 있다. 매 공연의 1등석은 대부분 한국 관광객들이 차지한다. 관람료가 비싸다보니 여행경비도 만만치 않다. 1박2일 일정의 평양관광에 소요되는 비용은 1백10만원선. 2박3일의 금강산 관광비용이 50만원선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1백70m의 주체사상탑은 1982년 김 주석의 7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 탑에는 세계 각국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보내준 대리석 1백여 개가 장식되어 있다. 이 탑은 북한측 안내원의 설명처럼 “평양에서 전망과 경치가 가장 좋은 곳”에 자리해 있다.
▲ 6만여 명이 출연하는 아리랑 공연을 위해 5~6세의 소학생부터 대학생, 교예단원까지 북한의 인적역량이 총동원됐다고 한다. | ||
또한 왼쪽편으로는 평양시내의 중심가와 대동강에서 두 번째 큰 양각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건설이 중단된 1백5층 규모의 류경호텔과 5·1경기장 등이 고스란히 자태를 드러낸다.
북측 안내원들은 우리가 북한에 갖는 관심만큼이나 남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이동하는 도중, 그리고 관광 도중 내내 그들은 남측 관람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해왔다. 또 그들은 한국 뉴스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해했다.
최근 발생한 현대그룹 사태에 대해서도 그들은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남경제협력사업을 하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소속의 한 안내원은 “이미 북한에서는 8월부터 현대그룹 김윤규 부회장이 비리 문제 때문에 현대를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했다. 현대 사태가 국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이 지난 9월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보다도 먼저 현대 소식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평양=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