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결재 없인 연애도 은퇴도 꿈깨!
여러 불공정 계약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사생활 통제다. 대부분의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그 사례도 다양하다. 올리브나인, 웰메이드스타엠, 팬텀엔터테인먼트 등의 계약서에는 ‘항상 소속 연예인의 위치를 통보받는다’는 규정이 있었고, JYP의 경우 전속 계약서에 소속 연예인의 신상문제 및 학업, 국적, 병역, 이성교제, 경제활동을 비롯한 교통수단까지 소속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2007년 공정위의 조사 이후 자진 시정이 이뤄지며 이런 조항들이 삭제됐지만 2009년 공정위의 2차 조사 결과를 보면 DY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10개 연예기획사가 여전히 “을(연예인)의 위치에 대해 항상 갑(연예기획사)에게 통보해야 한다” “출국할 경우 갑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등의 규정을 여전히 담고 있었다. 이런 규정이 담긴 전속 계약서에 사인한 연예인만 64명에 달한다. 또한 케이앤, 멘토, 오라클 엔터테인먼트 등의 기획사는 “을의 사생활, 건강, 예절, 복장, 교육 등에 대한 조정권과 의무를 갖는다”는 조항을 버젓이 전속 계약서에 넣어두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한 대형 기획사 소속 매니저는 “나이가 어린 연예인이 많고 슈퍼주니어의 강인 폭행연루사건 등 잦은 사건사고가 많아 명시한 규정이다”면서도 “물론 소속사 톱스타가 다른 기획사와 접촉하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등 소속사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를 대비해 ‘위치 통보’를 중요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개인적인 보험에 대해서도 소속사 주도 하에 가입하며 소속 연예인은 일체 이의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한 조항도 있었다. 그런데 이 경우 기획사가 보험금 수령인을 자신(기획사)으로 하는 등 연예인의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어 공정위가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이 항목대로라면 노후 준비 연금보험이나 생명보험마저도 연예인 자유 의지 하에 들 수 없다는 얘기인 셈이다. 결국 이런 조항을 전속 계약서에 명시했던 한 연예기획사는 “갑이 안전사고, 재난예방 및 구제를 위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을은 적극 협조한다”고 수정했다. 하지만 여러 연예관계자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소속 연예인이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아예 삭제되지 않는 이상 수정된 항목은 말만 달리 했을 뿐 큰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분쟁발생시 재판 관할을 연예기획사 소재지로 한다는 항목이 들어있는 전속 계약서에 사인을 한 연예인도 206명이나 된다. 연예인과 소속사의 계약관련소송 등 분쟁이 발생할 경우 연예인 거주지가 아닌 소속사 소재지나 서울지방법원 등 명확한 재판관할서를 지정해놓고 있는 것. 이런 조항은 불합리한 처우를 받던 연예인이 사법기관에 고소를 하려 할 경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어 공정위가 나서 “계약당사자인 연예인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한 재판관할의 합의 조항”이라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결국 연예인은 철저한 사생활 통제를 비롯해 개인이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는 보험에도 제약을 받고 있으며, 만에 하나 소속사와의 분쟁이 터지더라도 불리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수익분배나 소속사 이전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소속사 주관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음이 계약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해당 연예인과의 계약 전부를 자회사, 계열사 혹은 소속사의 자산이나 주식을 취득하는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으며 해당 연예인은 이를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이를 승낙한다)’는 식의 계약 조항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한 연예기획사 이사인 장 아무개 씨는 “만약 소속사 대표가 회사를 처분하려고 할 경우 톱스타가 소속되어 있는 채로 넘길 때 그 이익이 훨씬 크다”며 “그 때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이기적인 조항”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계약해지의 경우 계약기간 동안의 연예인에게 지급해야 할 급부에 대한 대가, 채무 등에 대해서 계약해지 의사를 통보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급 의무를 면하거나 수익분배를 중지한다는 항목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YG는 11개 계약서에서 “갑이 해지 의사를 을에게 통보한 날로부터 음반제작, 판매로 인한 인세는 을에게 지급할 의무를 면하고, 그 후 발생되는 모든 수입은 갑에게 귀속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 그룹 2NE1 | ||
연예인보다는 기획사의 홍보 및 수익에 유리하도록 짜여진 계약 조항들도 많다. 소속사, 혹은 소속사의 계열사가 주관, 주최하는 행사에 무상으로 출연하고, 소속사 홍보를 위한 광고 및 홍보물 출연 역시 무상 출연한다는 조항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특히 2008년 말 1차 조사 때 문제점으로 드러나 시정 통보를 했음에도 2009년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조항들이다.
2년 전인 2007년 10월 공정위는 의결서를 통해 연예계약서의 전속계약기간 중 ‘첫 번째 음반 발매 후 5년째 되는 날 종료’라고 한 문구가 계약기간을 과도하게 늘린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의 조사기간 중 SM엔터테인먼트와 동방신기의 계약조항에 ‘첫 번째 음반 발매 후 13년째 되는 날 종료하기로 한다’는 항목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의 부실조사 의혹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게다가 공정위가 지적한 사안도 2년 동안 거의 시정되지 않았다.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은 “공정위가 2007년 실시한 1차 조사 결과와 2009년 6월에 실시한 2차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시정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그대로”라며 “공정위의 실태조사가 부실했으며 불공정 사항에 대해서는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불공정 조항들은 모두 ‘서면계약서’에 한한 것이다. 실제로는 구두계약이 훨씬 많다. 일례로 지난 12일 SBS 예능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한 2NE1은 “계약 당시 구두로 5년간 이성교제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에게 “3년으로 줄여 달라”고 애교 섞인 청을 하기도 했다. 이에 양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룹 내 언니들인 산다라박과 박봄에겐 남자친구 교제 금지 기간을 3년으로 줄여 줄 의향이 있다”고 화답했다. 이젠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게 매우 당연한 일이고 예능프로그램의 소재가 될 정도로 보편화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정위의 실태조사는 서면으로 작성된 전속 계약서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2NE1의 경우처럼 ‘5년 동안 이성교제 금지’ 등의 구두계약이 이뤄진 경우가 더 많음에도 이는 조사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공정위의 2차 조사 대상 20개 연예기획사 중 한 기획사는 아예 서면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아 불공정 조항을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또한 이번 조사는 대형 연예기획사만을 상대로 한 조사일 뿐이다. 그 중 연예기획사 이사인 장 씨는 “내가 현장 매니저 활동을 하던 당시 한 중소 기획사 전속 계약서에는 ‘기획사에 득이 된다고 판단되는 자리에는 술자리에 대동하며 기획사 대표의 지시를 따른다’는 술자리 강요 조항까지 있었다”며 “중소기획사의 경우 대형 기획사보다 심한 경우도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속계약 실태
10대 가수 절반 10년 이상 발목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대상 30개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 580명 중 9.5%에 해당하는 55명이 10년 이상 계약, 16.5%인 99명이 표준계약서 계약기간인 7년을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대형기획사 소속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여가수 B의 경우는 계약기간이 무려 17년으로 조사대상 연예인 중 최장계약기간이다. 이에 대해 한 연예관계자는 “B는 이미 17년이라는 계약기간의 반을 지나왔다”며 “아무리 대형기획사 소속으로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을지라도 B의 전속계약 기간이 17년이나 된다는 부분은 지나친 직업 선택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B의 뒤를 잇는 최장계약기간은 13년으로 남자가수들이었는데 10대는 37명, 20~24세는 28명이었다. 연예기획사들 중 “10대고, 어린 나이라 계약기간이 길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 곳도 있지만 “아이돌 가수들은 금방 인기를 얻기 때문에 톱스타가 되는 기간도 짧아 계약기간을 길게 해서 최대한 많은 수익을 올리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 더 많았다.
한편 가수가 연기자에 비해 약 10배가량 10년 이상 계약률이 높았으며 남자 10대 가수의 60%, 여자 10대 가수 50%, 여자 10대 연기자의 50%가 10년간 장기계약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