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렇게 죽쑤면 손놓고 있기 힘들잖아’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 연합뉴스
이처럼 당 내부의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거꾸로 일부 원외 인사들의 몸값은 상승하고 있다. 특히 거물급인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의 ‘총선 역할론’이 급부상해 관심이 집중된다.
손학규 고문의 복귀 가능성은 10·28 재보선에서 야당이 패배하면서부터 커져갔다.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대표가 지휘한 재보선에서 텃밭으로 분류된 관악을, 광주 서구을까지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와 천정배 무소속 후보에게 빼앗겼다. 이때부터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문 대표의 리더십, 친노 패권 등의 논란이 본격화되며 비노 진영의 ‘문 대표 때리기’가 본격화됐다. 이때 문 대표의 대안으로 등장한 이가 바로 손 전 고문이었다.
손 전 고문은 지난해 7·30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정계은퇴 선언 기자회견에서 “정치는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오랜 신념이다. 저는 이번 재보선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책임 정치의 자세에서 그렇고 새정치연합과 한국 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 국민 여러분께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 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손 전 고문은 정계 은퇴 후에도 문 대표의 대안으로 비노 진영의 꾸준한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당 대표 경험 등으로 다져진 오랜 국정 경험, ‘저녁론’으로 빛을 발한 정책기획 능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카드이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4·29 재보선 이후 손 전 고문이 구기동으로 이사를 하거나 서울로 문상을 오는 등 작은 움직임에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만큼 손 전 고문이 폭발력 있는 카드라는 방증이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도 “손 전 고문은 정책 능력이나 정치인으로서의 진심은 나무랄 데 없다. 대표 시절에도 행사에 참여하면 사진 몇 장 찍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날 일이 끝날 때까지 해서 고생한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손 전 고문은 꾸준한 정계 복귀 요청에도 가능성 자체를 일축했다. 하지만 최근 손 전 고문의 행보가 전과 달라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손 전 고문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키맵(KIMEP)대학에서 ‘한반도 통일과 정치 리더십’ 특강을 진행했다. 문상도 조심스러워하던 이전 태도와는 확연히 온도차가 나는 행보였다.
지난 11월 4일 귀국길 인천공항에서는 기자들과 만나 총선 역할론에 대해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강진이 좋으니까, 강진의 산이, 나보고서 ‘더 이상 이제 아주 지겨워서 못 보겠다. 나가 버려라’고 할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의원, 당직자들이 모여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위한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측근 그룹에서도 손 전 고문의 다음 행보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측근은 손 전 고문이 이번 총선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전해진다. 이 측근은 손 전 고문이 지난 2011년 4·27 재보선에서처럼 당에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손 전 고문 개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손 전 고문이 당시 선당후사 정신으로 경기 분당을에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꺾으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던 모습을 다시 한 번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근은 손 전 고문의 총선 역할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이 측근은 “이번 키맵대학 특강은 손 전 고문이 오랜 인연이 있었고, 대학 쪽에서 예전부터 요청을 해왔던 것이라 하게 됐다”며 “손 전 고문이 총선에 뛰어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손 전 고문은 장작 등을 준비하며 이미 겨울잠 채비를 마쳤다”고 일축했다.
강하게 반발하는 기류도 있지만 손 전 고문의 측근들의 무게추가 개인차가 있을 뿐 총선 역할론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기존 손 전 고문의 총선 역할론에 강하게 반발했던 측근들도 선결조건을 들며 가능성이 완전히 없지는 않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앞서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측근도 “만약 새정치연합에서 문재인 대표가 사퇴하고 친노 계파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손 전 고문을 부른다면 총선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문 대표나 친노계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일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기존 절대불가 입장에서 조건부 가능으로 입장 변화가 있는 셈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손 전 고문의 복귀 가능성이 있다고 보며 당위적으로도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꽃가마 타고 왕자처럼 복귀하기를 바라선 안 된다.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문재인 사퇴, 손 전 고문 주도의 총선 지휘 등의 조건 없이, 아무런 조건도 붙이지 않고 당을 구하기 위해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차피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최소한 지금 정도의 의석을 유지 못하는 대패를 당하면 대권도 여당의 몫이 되기 때문에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며 “지난 2012년 디도스 사태로 당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고 김종인 전 의원, 이상돈 교수 등을 불러들이며 당을 구해 대통령이 된 정치적 결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