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더 커지기 전 ‘오빠’ 부대 일으켜라
친박 인사들과 오세훈 전 시장이 총선을 앞두고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2006년 4월 10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 출마 선언을 한 오세훈 전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실을 방문, 당시 박근혜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일요신문 DB
정치권에선 반기문 UN 사무총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 친박 차기 주자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청와대 안팎에선 박 대통령이 이들 셋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이 중 내년 총선을 통해 재기를 모색 중인 오 전 시장에 대한 호의적인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차기 주자와 관련해 우리가 박 대통령 입장을 알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오 전 시장이 재평가돼야 한다는 것은 박 대통령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복지 문제가 총선 이슈로 떠오를 경우 오 전 시장은 보수는 물론 중도 진영까지 아우르는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점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도 이완구 전 총리 사퇴 후 오 전 시장이 후보군으로 올라오자 “총리보다 더 큰 일을 하실 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친박 관계자들 역시 최근 오 전 시장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오 전 시장은 원래 친박 쪽과 사이가 좋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여러 번 공개적으로 오 전 시장을 칭찬한 적이 있다. (친박이 오 전 시장을 차기 주자로 지지하는 게)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리에게 오 전 시장은 훌륭한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고 털어놨다.
핵심 친박으로 통하는 한 의원과 오 전 시장 사이엔 이미 핫라인이 열려있고, 수시로 내년 총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둘의 은밀한 만남이 여의도 등지에서 포착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할 종로 지역구 다지기에 한창인 오 전 시장으로서도 친박과의 연대는 정치적으로 득이라는 평이다. 오 전 시장 측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은 특정 계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게 장점이자 약점이다. 당내 기반이 미미하다는 것은 오 전 시장 정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정권을 창출한 경험이 있고, 현직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는 친박과 손을 잡는 것은 좋은 셈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시장직을 던진 뒤 야인생활을 했던 오 전 시장의 총선 출마 결심 과정에도 몇몇 친박 의원들과의 사전 교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은숙 기자
친박 역시 ‘오세훈 활용법’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일단 오 전 시장이 원하고 있는 종로 출마를 적극 돕는다는 방침이지만 당내 상황이 여의치만은 않다. 비박계가 오 전 시장과 맞붙을 것으로 보이는 박진 전 의원을 밀 가능성이 높은 이유에서다. 이 경우 새누리당 종로 경선은 친박과 비박 대리전이 될 전망이다. 수적으로 비박계가 우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 전 시장의 여의도 입성이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런 시나리오는 오 전 시장을 대선주자로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친박으로선 최악일 수밖에 없다.
친박 일각에선 대중성이 높은 오 전 시장을 야권 텃밭 또는 거물급 정치인이 출마하는 지역구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오 전 시장이 승리하면 단숨에 유력 차기 주자로 부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패배하더라도 총선 후를 도모하는 데 있어서 유리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박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 원로 인사는 “오 전 시장은 어디에 나와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배할 경우의 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종로 경선에서 지는 것과 안철수 의원이 나올 것이 유력한 노원에서 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당내 경선에서조차 패한 정치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 오 전 시장 스스로 급을 높여야 한다. 오 전 시장은 금배지 말고도 맡을 역할이 많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오 전 시장을 국무총리 등 중용할 것이란 전망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친박계는 내년 총선에서 오 전 시장을 포함한 스타급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임기 4년차이던 지난 1996년 2월 여당 민자당을 해체하고 외부 인사들을 대거 수혈해 신한국당을 만들었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박찬종 전 의원 등이 당시 정치권에 들어온 인사들이다.
신한국당은 같은 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이기며 후반기로 접어든 YS의 국정 운영에 힘을 보탰고, 이 전 총재는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YS로선 총선 승리와 후계자 찾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셈인데, 이를 친박 핵심부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일부 친박 의원들이 ‘오더’를 받아 시민단체, 학계, 스포츠계 등 다양한 분야의 유력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친박의 이러한 스탠스는 김무성 대표가 이끄는 비박계와의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 대표가 전략공천 자체를 ‘정치적 생명’을 걸고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실시를 통해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자 한다.
특히 김 대표 측은 친박계가 전략공천을 밀어붙이는 이유 중 하나가 오 전 시장과 같은 차기 주자를 키우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큰 꿈’을 꾸고 있는 김 대표가 친박과 오 전 시장 간 밀월을 탐탁지 않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비박계 의원은 “김 대표 역시 총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대세론을 굳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공천 싸움은 양보가 어렵다. 친박에 밀리면 ‘참사’를 당할 것이란 우려가 가득하다. 친박이 원하는 특정 정치인, 가령 오 전 시장과 같은 차기 주자를 전략 지역에 출마시키는 일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