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이삭줍기’가 전략이라굽쇼?
천정배 의원의 신당 창당 작업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내부 갈등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은 천 의원이 9월 20일 ‘개혁적 국민정당’ 창단 선언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지자들과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정화 정국이 한창인 11월 초 여의도 정가에는 ‘천정배 신당 내부 갈등설’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지난 9월 20일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선언을 한 지 40일여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사이 천 의원과 서울 당산동그룹인 염동연 이철 전 의원이 갈등을 빚으면서 신당이 지지부진 상태에 빠졌다는 게 내부 갈등설의 골자다.
특히 천 의원은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 때 국무총리였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과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만나 신당 합류를 요청했지만, 확답을 받지는 못했다. 정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새정치연합으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현실 정치 참여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천 의원이 인재 영입과 조직 구축 등을 둘러싸고 종종 부딪히면서 신뢰에 금이 간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당산동그룹의 움직임이 둔화됐다. 야권 발 정계개편 초반, 신문 정치면을 도배하던 천정배 신당 기사가 부쩍 줄어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천 의원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함께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자 연속회의’를 구성한 것도 신당 창당 속도 조절론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천 의원이 신당 창당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자, 당산동그룹과 마찰을 빚었다는 설이 퍼진 상황”이라며 “연말정국에서 천정배 신당의 창당 동력이 한층 떨어진 게 보인다”고 말했다. 한때 야권 발 정계개편의 핵심으로 격상했던 천정배 신당이 신기루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천 의원 측 관계자는 “정부가 국정화 확정고시를 앞당기지 않았느냐”며 “지금은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자 연석회의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고 내부 갈등설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정치연합 비노(비노무현)계의 11월 반란을 계기로 탈당 인사들이 합류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 천정배 신당을 제외한 야권 신당파들은 기지개를 켜고 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지난 10월 29일 ‘신민당창준위’를 공식 발족했다. 지난 9월 15일 창당을 선언한 지 한 달 보름 만이다. 박 전 지사는 20대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선거운동 시작 시기인 12월 15일에 발맞춰 전당대회를 열 계획이다.
복지국가정당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이)도 지난 2일 ‘복지국가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가졌다.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박주선 무소속 의원도 지난 10월 21일 신당 추진을 위한 자문교수단과 1차 회의를 연 데 이어 이달 10일 전후로 ‘통합 원탁회의’를 열자며 발 빠른 행보에 나섰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정화 정국에서 비노(비노무현)계의 입지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새정치연합 중립지대 모임인 ‘통합행동’이 대표적이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은 ‘북 콘서트’로 존재감 높이기에 나섰다.
통합행동 소속 조정식 민병두 정성호 의원과 송영길 전 인천시장, 정장선 전 의원은 지난 2일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과 만찬 회동을 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천 의원을 비롯해 탈당한 ‘박주선·박준영 신당’과 함께 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 박영선 의원은 이틀 뒤인 지난 4일 국정화 반대 공동성명을 냈다.
안 의원은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호’의 국회 농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문 대표의 강경 투쟁과 관련해 “저희의 의사 표현 방식이지만, 언제까지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당이 전면에 나서서 부당성을 주장하다 보면 결국 정치세력 간 대결구도로 가서 정쟁화된다. 그것은 문제를 푸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힐난했다.
이어진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우리 당이 대여투쟁의 전면에 서면 언론이 절대 우리 편을 안 들어준다”며 “세월호(참사 때)도 그렇고, 우리가 참패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여기에 비주류의 대부 격인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지난 4일 해외강연을 마치고 귀국했다. 손 전 고문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손학규 역할론’에 관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새정치연합의 20대 총선 전망에 대해 묻자 “그런 얘기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손 전 고문은 ‘강진에 언제까지 머물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강진의 산이 더 이상 지겨워서 못 있겠다, 나가라 그럼 뭐…”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손 전 고문과 통합행동이 ‘중도·무당파’ 등의 교집합을 가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야권 발 정계개편 과정에서 ‘암묵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천정배 신당이다. 국정화 확정고시와 관련, “박정희 평가는 20년 걸렸지만, 박 대통령 심판은 2년도 안 걸릴 것”이라며 연일 대여 공세를 펴는 천 의원은 유독 신당 관련 질문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일각에선 천 의원의 신당 구상 전략이 엇박자를 내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상수와 변수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상수는 ‘호남의 위상’이다. 호남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야권 지지층도 갈라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 안팎에서 야권 발 정계개편의 상수로 천정배 신당을 꼽은 것은 4·29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덕분이다. 호남의 위상이 상수라면, 호남 지지층의 민심은 ‘변수’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과 같다. 호남 지지층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명분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천정배 신당은 창당 선언부터 명분을 잃어버렸다. 천 의원은 내년 1월 창당을 공식화했다. 새정치연합 공천 작업은 늦어도 내년 2∼3월이면 마친다. ‘저승사자’ 조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의 희생양이 될 ‘현역 의원 20%’ 물갈이 대상자들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을 노출했다. 창당 선언 때 ‘민주당 이삭줍기’에 나설 것이란 예측 가능성을 사실상 고백한 셈이다.
비노 성향의 호남 지지층이 천정배 신당 쪽으로 갈아탈 수 있는 명분을 스스로 깎았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범주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물갈이에 해당하는 의원들이 컷오프 당하기 전에 스스로 나와서 합류하는 그림을 노린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천 의원은 갈림길에 섰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변수(호남 민심)를 공략해 상수(호남 위상)를 쟁취할 것인지, 아니면 양자를 혼동해 야권 분열의 잔혹사 역사를 쓸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봉착했다. 기회는 남아있다. 바로 비노계의 ‘11월 반란설(<일요신문> 1225호 보도)’이다. 새정치연합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등을 비롯해 통합행동 등 비주류는 본격적인 행동을 위한 판을 만들고 있다.
조은 위원회의 평가 방식은 물론, 비례대표 태스크포스(TF) 구성, 당무 감사원장 등의 인선 문제도 남았다. 국정 이슈가 국정화에서 야권 분열로 옮겨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천 의원이 이 국면에서도 존재감 확보에 실패한다면, 사실상 기회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키는 천 의원의 권력의지가 쥐고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