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최근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려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극도의 불안 상태로 치닫는 동북아 정세하에서 상호 충돌을 막고 공존 번영의 길을 찾는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컸다. 이번 회의에서 3국 정상들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 공동 입장을 확인하고, 한-중-일 FTA 협상을 가속화하며,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하는 등 큰 틀의 합의를 도출했다. 이 합의를 확대 발전시킬 경우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경제적으로 공동 발전을 꾀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갖가지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동상이몽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이번 회의 의장국으로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보다 강력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경제협력체제를 확대하여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특히 과거사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는 비핵화를 선언적으로 확인하는 데 그치고 경제협력은 한-중-일 FTA 구축에 박차를 가한다는 추상적인 결과만 얻었다. 더구나 과거사에 대하여 일본의 사과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중국은 안보문제에서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를 견제하고 군사적 팽창을 합리화하며 역내 경제협력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여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거꾸로 남중국해 충돌에서 일본이 미국의 편을 드는 입장을 확인하고 회의의 주도권을 한국과 일본에 빼앗겼다.
한편 일본은 이번 정상회의를 자신들의 과거를 덮고 군사적 팽창과 경제 확장을 미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정상회담에 참여했다는 상징적인 결과만 얻었을 뿐 역사문제에 대해 한·중의 협공을 당해 오히려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번 회의에서 각국이 자국의 입장을 밝히고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향후 동북아 정세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중·일 정상회의가 정례적으로 열린다 해도 주요 현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협상의 진척이 이루어 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국제사회 질서는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중국은 패권주의 기조하에 계속 공격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을 막는다는 빌미로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자국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샌드위치의 입장인 우리나라는 스스로 힘을 길러 협상력을 높이고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찾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는 남북 간 관계개선부터 서둘러 실질적이고 상호 이득이 되는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분야에서는 한-중-일 FTA에 대비하여 구조개혁과 신산업발굴을 서둘러 협상의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 여기에 적극적인 외교력으로 중국, 미국, 일본을 모두 맹방으로 만드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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