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 ‘해넘이’에 말문이 막혔다
탑의 왕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간엔 아직도 2300여 개의 탑과 사원들이 남아 있다. 사진제공=사진작가 류태열 2015 사진
오늘 여행은 한 사람이 더 동행합니다. 인도차이나 베테랑 가이드 구희창 실장입니다. 세계문명과 불교에 관한 전문가이드입니다. 그는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지금은 관광의 문이 열리는 미얀마에서 일합니다. 한국에서 스님들이 견학 오면 이 사람이 맡습니다. 바간을 수백 번을 다닌 사람입니다. 제가 편지를 쓰기 위해 자료를 받았는데 그 양이 엄청나 이틀을 읽었습니다. 그만큼 바간은 미얀마 문화와 역사의 중심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간 이야기는 좀 새로운 그의 설명만 간단히 담기로 합니다.
바간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에 시작하여 107년 최초의 버마족 왕 타무다릿왕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버마족들은 건국 원년을 638년으로 삼습니다. 849년 34번째 왕 삔부가 샨족과 남부 몬족까지 상거래를 넓히면서 정식 왕국의 기틀을 잡지만, 고대 바간제국의 영화는 1044년 버마를 통일한 아노라타왕(Anawrahta)부터 시작됩니다. 1297년 짜수아왕까지 243년간 가장 번영된 제국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1287년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에게 침략당하면서 멸망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 이후 바간에 어떤 왕조도 없었기에 고대 도시 바간은 약 700년간을 문화유적지로만 쓸쓸히 남은 채 순례자들의 발길만 오갈 뿐이었습니다.
당시 아노라타왕은 통일을 이루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포로와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며 많은 것을 고뇌하게 되고 통일 후에는 백성들을 통합하는 새로운 국가이념이 필요했습니다. 바간에는 당시 힌두문화와 원시정령숭배 등 여러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몬족의 상좌부 젊은 승려였던 신 아라한(Shin Arahan)을 만납니다. 금욕적이고 숭고한 성품의 신 아라한의 설법을 통해 불교에 귀의하며 상좌불교를 국교로 정하게 됩니다. 왕은 당시 강력한 몬족의 타톤왕국을 점령해 영토를 확장하며 인도의 아쇼카왕처럼 수많은 스투피(탑)를 왕성하게 건설했습니다. 불교를 통해 자신의 통치사상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수많은 ‘탑의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버마 왕조는 불교의 이념과 사상을 바탕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바간의 수천 개 탑에는 부처의 탄생과 열반에 이르는 설화들이 그림과 문자와 프레스코화에 담겨 있습니다.
유적지의 벽화로 코끼리는 부처를 상징한다. 사진제공=사진작가 류태열 2015 사진
바간 유적의 건축공법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숫자로 불교의 우주관을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그 시대에 자를 쓰지 않고 사람의 손과 몸으로 길이를 나타냈다는 놀라운 사실도 있습니다.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를 큐빗, 우리의 몸을 페암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몸은 황금비율인 까닭입니다. 바간 시대에 벽돌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36과 18입니다. 완전한 수라고 생각한 9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36가지 번뇌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을 곱한 수 108. 즉 남방불교의 욕계 색계 무색계의 백팔번뇌를 상징합니다. 바간의 모든 사원은 숫자를 통해 우주관을 표현합니다. 벽화에 담긴 코끼리는 부처의 탄생을 의미하며 그림의 하얀색 부분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표현합니다.
건축공법은 피라미드형 공법과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사상’ 공법입니다. 우리나라 석굴암처럼 내부는 아치형으로 벽돌과 벽돌이 의지하는 공법으로, 단점은 하나의 돌이 이탈하면 붕괴의 위험이 높습니다. 바간 유적은 이집트 피라미드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처럼 사암을 쓰지 않고 황토의 흙을 구워서 만든 적벽돌입니다. 대리석으로도 지었습니다. 아노라타왕의 아들 짠시타왕이 세운 쉐지곤 파야만이 사암으로 건축되었습니다.
바간 취재를 도와준 전문가이드 구희창 씨(가운데).
이어서 구희창 실장은, 미얀마 국민들이 불상에 물을 붓는 관습과 금을 붙이는 의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이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니르바나 경지를 뜻합니다. 자기 나이만큼 물을 붓는 게 마음의 정화이자 깨끗하고 순결하게 살겠다는 실천불교, 즉 남방불교의 생활입니다. 금색은 태양의 빛깔입니다. 영원히 불타고 있는 불의 색깔입니다. 불은 영원히 녹슬지 않으며 동시에 어떤 불순물이라도 태워버립니다. 깨달음 그 자체인 것입니다. 미얀마 불상이 황금빛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미얀마 국민들은 끊임없이 불의 색깔인 금을 불상에 붙이는 것입니다.”
황톳빛 평원에 물든 바간의 석양빛. 수많은 유럽인들이 쉐산도 파야에서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일몰과 나무들과 평화롭게 자리 잡은 작고 큰 탑들. 미국 다음으로 기부문화 2위의 나라 미얀마. 물과 불처럼 살길 소원하는 국민들. 그래서인지 가난하지만 행복한 미소를 어디서든 보는 나라입니다.
정선교 Mecc 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NGO Mecc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