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여진 각본이냐 편집의 기술이냐
마치 여야 의원들이 정쟁을 벌이는 국회, 내지는 유무죄를 다투는 법정처럼 치열한 공방전이다. 요즘 SBS <패밀리가 떴다>(패떴)의 ‘참돔 낚시’ 조작 논란이 바로 그렇다. 논란은 김종국이 20만 원 상당의 커다란 참돔을 잡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함께 출연한 유재석과 하지원이 놀래미 뱀동어 등을 연이어 낚는 데 성공한 데 반해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해 난처해하던 김종국이 참돔 한 마리로 멋진 반전을 만들어낸 것.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만 가능한 예상외의 반전, 하지만 이내 시청자들의 의혹 제기가 시작했다. ‘낚시 고수도 잡기 힘든 참돔을 초보인 김종국이 잡았다’는 지적에서 시작된 의혹은 ‘프로 낚시꾼도 사투를 벌어야 겨우 잡는 참돔을 손쉽게 잡아냈다’ ‘막 잡은 참돔이 너무 힘이 없다’ 등으로 확산됐다. 이에 <패떴> 제작진은 “설정은 없다”며 조작설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자 한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우도 검멀레의 잠수부가 김종국의 낚시에 참돔을 끼워줬다’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우도에 다녀와 자신의 블로그에 ‘우도 여행기’를 올린 한 네티즌은 이 글에서 가이드에게 그런 얘길 들었다고 밝혀 조작설을 재점화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촬영 현장에 동참한 스쿠버 다이버들이 직접 나서 사실무근이라 반박했다.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조작 논란은 이번 참돔 낚시 조작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KBS 2TV <천하무적 토요일>의 인기 코너 ‘천하무적 야구단’이 사회인 야구단 ‘공주 블루스카이’와의 경기에서 22 대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자 승부조작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논란의 시작은 <패떴>의 대본이 공개된 뒤 제기된 ‘시트콤 논란’이다. 방송작가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 <방송문예> 2008년 12월호에 <패떴> 3회 대본이 공개됐는데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출연자들의 대사는 물론 지문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우선 대본 존재를 인정했지만 상황을 설명하는 가이드라인일 뿐 그대로 촬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아직 친해지지 못한 출연진들이 서먹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라고도 설명했다.
<패떴>의 경우 프로그램 초반부였던 터라 제작진이 프로그램의 방향을 출연진에게 제시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가이드라인에 해당되는 대본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 <패떴>의 장재혁 PD는 “출연자들의 흐름 파악용일 뿐 절대 대본대로 된 경우는 없다”면서 “한 번 촬영하면 대략 36시간 촬영하는데 대본은 고작 A4용지 20매 분량으로 적절한 상황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제작진들 역시 비슷한 답변을 보였다. 다만 <패떴>의 경우처럼 가상 시나리오는 있다고 얘기한다. 그조차도 없이 무작정 특정 현장에 하나의 주제만 제시한 채 출연진들 보고 알아서 놀아보라고만 할 순 없다는 것. <무한도전> 제작팀 관계자는 “제작진이 거듭되는 아이템 회의를 갖고 결정된 아이템을 방송으로 만들기 위한 구성회의 등을 거친 뒤 대략적인 얼개를 만들어 출연진에게 전달한다”면서 “멤버들이 이런 얼개를 바탕으로 촬영에 돌입하는데 그 안에서 발생하는 상황은 모두 리얼”이라고 설명한다.
조작 여부는 PD의 연출과 연관돼 있다. 재미나 감동 등을 증폭시키기 위해 PD가 특정 상황을 연출해 촬영할 경우 리얼이 아닌 조작이 되는 것. 그렇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제작진은 이런 조작 논란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일부러 연출해서 만드는 웃음보다 의외성에서 만들어지는 리얼한 웃음이 더 재미있다는 사실이 입증돼 리얼 열풍이 예능계를 강타한 것인데 이제와 굳이 과거처럼 연출해서 웃음을 만들 까닭이 없다는 것. 다만 편집과 구성 등 인위적인 연출의 힘까지 배제할 순 없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원용진 교수는 <방송작가> 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어차피 방송이 보여주는 현실은 구성된 현실”이라며 “연출과 편집, 구성에 따라 움직이며 인위적인 연출의 힘이 개입된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수십 시간 동안 촬영한 영상을 가지고 한 회분을 완성한다. 수십 시간짜리 촬영분량이 모두 ‘리얼’일지라도 PD가 이를 한 시간짜리 ‘리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구성’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선 리얼 버라이어티에 상당부분 인위적인 손길이 많이 개입된다고 설명한다. 가장 기본적인 개입은 각 출연자마다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고 상황에 따라 부각되는 출연진을 구분하는 것. 심지어 출연진 사이에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도록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리얼 버라이어티가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연출된 상황이 아닌 리얼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내 큰 웃음을 주고 있지만 그 역시 PD와 작가 등 제작진 등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가미된 방송이라는 큰 얼개를 벗어날 순 없다는 게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의 말이 많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