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편한 ‘실속’이냐 가슴 뛰는 ‘재미’냐
같은 고급차라도 FF 방식인 렉서스 ES가 FR 방식인 BMW 5시리즈나 벤츠의 E클래스보다 1000만 원가량 저렴하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자동차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아마도 ‘전륜구동(FF·Front-engine, Front-drive)이냐, 후륜구동(FR·Front-engine, Rear-drive)이냐’일 것이다. ‘큰 차·작은 차’는 단지 사이즈의 문제이고, ‘뚜껑 열리는 차’는 이미 만든 차를 개조한 것이고, ‘국산차·외제차’는 누가 만들었느냐의 차이이고, ‘스포츠카냐, 아니냐’는 외관 및 엔진 튜닝의 차이다. 설계를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사항은 ‘FF냐, FR이냐’일 것이다. 왜냐 하면, FF·FR의 구분에 따라 엔진과 변속기의 위치, 센터터널의 크기, 심지어는 디자인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AWD(All Wheel Drive), MR(Mid-engine, Rear-drive), RR(Rear-engine, Rear-drive)도 존재한다. 그러나 AWD라 하더라도 FF 기반이냐, FR 기반이냐로 구분할 수 있다. MR은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의 슈퍼카에서만 주로 볼 수 있으므로,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RR 역시 지금 구매 가능한 차량은 포르셰911밖에 없다.
# FF 방식, 넓은 실내 공간 확보에 용이
FF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엔진의 가로배치다. 쉽게 생각하면 FF는 앞바퀴를 굴리는 것이므로, 엔진의 회전축과 바퀴의 회전축이 평행하게 배열된다. 후드를 열면 좌우 가로로 길게 놓인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엔진룸을 보면 FF인지 FR인지 알 수 있다. 예외도 있다. 아우디 A4·A6는 전륜구동인데(콰트로 버전 제외), 엔진은 예외적으로 세로배치로 되어 있다.
FR 방식은 뒷바퀴까지 이어진 구동축(Drive Shaft)을 돌려야 하므로 구동축의 회전방향과 평행하도록 엔진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변속기가 실내 변속기 레버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FF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구조가 간단하다는 것이다. 엔진룸 안에서 엔진구동과 바퀴 구동이 모두 이뤄진다. FR은 뒷바퀴까지 구동을 전달해야 하므로 구조가 복잡해진다. 현대자동차의 액센트·아반떼·쏘나타·그랜저는 모두 FF 방식이다. FR 방식은 제네시스와 에쿠스뿐이다(상용차 제외). 기아자동차에서도 FR 방식은 K9과 모하비뿐이다. 르노삼성의 차는 100% FF 방식이다. 한국GM도 국내 생산 차량은 모두 FF 방식이고, 미국산 스포츠세단 카마로가 FR 방식이다. 쌍용자동차의 경우에는 렉스턴, 코란도 스포츠, 코란도 투리스모, 체어맨W가 FR이다.
수입차를 보면 고급차들은 모두 FR 방식이다. BMW에서는 올해 출시된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를 제외한 전 차종이 FR 방식이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는 소형차인 A-클래스, B-클래스를 제외한 전 차종이 FR 방식이다. 아우디는 A1·A3가 FF 방식이고, A4·A6에 전륜구동 모델이 있다(사륜구동이 아닌 경우). 프리미엄 수입차들은 FR 방식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최근엔 시장 세분화를 위해 수입차 브랜드들도 소형차 중심으로 FF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BMW의 경우 가장 작은 1시리즈조차 후륜구동을 고집했는데, 시장 다변화를 위해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는 FF 방식을 최초로 도입해 ‘시장 때문에 자존심을 꺾었다’는 소릴 듣기도 했다.
FF 차량은 후드가 짧은 대신(A), 실내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 있다. 반면 FR 차량은 후드가 길지만(B), 앞뒤 무게배분이 좋아서 다이내믹한 운전을 즐길 수 있다. 시각적으로도 FR 차량의 비례가 더 멋지게 느껴진다.
# FR 방식, 극단적 상황서 컨트롤 훌륭
FF 방식은 구조가 간단해 가격이 싸다. 같은 고급차라도 렉서스 ES가 BMW 5시리즈나,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보다 1000만 원가량이 싸다. 현대차는 대중차인 아반떼·쏘나타는 FF로, 고급차인 제네시스·에쿠스는 FR로 만든다. FF 방식의 또 다른 장점은 실내공간이 넓다는 것이다. 엔진을 가로로 배치해 엔진룸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크지 않아 후드가 짧은 것이 FF 차들의 특징이다. 같은 길이의 차라도 FF 방식이 레그룸(다리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반면 FR 방식은 엔진을 세로로 놓다 보니 후드가 길어져 레그룸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센터터널 때문에 실내 공간도 좁아진다. ‘외제차’라고 탔더니, 쏘나타보다 오히려 좁은 실내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만 보면 FF 방식이 더 나아 보이는데, 왜 고급차들은 FR 방식으로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FR 방식이 자동차의 본질, 즉 ‘다이내믹’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운전자처럼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수단으로만 여긴다면 FF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그런데, 자동차는 달리고, 회전하고, 멈추는 것이 본질이다. FR 방식은 밸런스가 훌륭하기 때문에 FF 방식이 주지 못하는 운전의 재미가 있다.
FF 방식은 엔진과 변속기와 구동축이 모두 엔진룸에 위치하므로 무게가 앞으로 쏠려 있다. 따라서 급회전을 할 때 뒷부분이 살짝 뜨게 되므로 컨트롤이 어렵다. 또한 급정지를 할 때도 차가 앞으로 기울기 때문에 뒷바퀴의 접지력을 많이 얻지 못한다. 반면 FR 방식은 앞뒤 무게 배분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급회전에서도 컨트롤이 용이하고, 급정지 시 네 바퀴에 고르게 접지력이 전달된다.
따라서 급회전, 급정지 등을 이용한 다이내믹한 운전을 즐길 수 있다. 현대차 제네시스는 무게배분을 위해 후드(보닛)를 알루미늄으로 만들기도 하고, BMW는 배터리를 트렁크에 위치시키는 등 FR 차들은 정밀한 무게배분에 목숨을 건다. 업계에서는 대개 앞뒤 무게 비율 52:48을 이상적인 것으로 친다.
한편 3500㏄ 이상 대배기량 차는 FR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엔진 기통수를 늘리려면 가로배치로는 길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성능 차량들은 대부분 FR 방식을 택하게 된다. ‘머슬카’로 불리는 포드 머스탱을 보면 극단적으로 긴 후드가 특징인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엔지니어들에게 FF 차를 개발하라고 하면 ‘실용적인 차를 만들어야겠군’이라고 생각하겠지만, FR 차를 만들라고 하면 ‘어디 한 번 본때를 보여주겠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즉, FF 차는 싸고, 넓고, 편한 실용적인 차라면, FR 차는 비싸고, 불편하지만, 가슴이 뛰는 차라고 할 수 있겠다.
우종국 한경비즈니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