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깡패들, 방송 대신 포털 타고 훨훨~
KBS 2TV의 <뮤직뱅크>(위)와 MBC의 <쇼! 음악중심>. 방송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권위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 순위 프로그램의 권위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시작은 특혜 의혹이었다. 유력 소속사에 속한 유명 아이돌 그룹은 컴백과 동시에 1위를 차지하고, 컴백 스테이지를 통해 2~3곡을 소화하며 무대에 오르는 시간도 길다. 선배지만 인지도와 기획사의 힘이 다소 부족한 기성 가수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실제 1위와 대중의 체감하는 1위 사이에는 꽤 괴리가 있다.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엠넷 <엠카운트다운>, MBC뮤직 <쇼 챔피언> 등에서 각각 1위에 오른 이들이 저마다 ‘1위 가수’라고 자처하다보니 1위 타이틀의 권위도 떨어졌다.
이보다 더한 ‘굴욕’은 보이콧이다. 가수들이 아예 가요 순위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것이다. 꺼내놓고 보이콧을 ‘선언’하지는 않지만 음원 발표 후 순위프로그램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는 것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왼쪽부터 아이유, 임창정, 신승훈.
최근 음원 시장에서 ‘듣는 음악’의 선두주자였던 임창정을 비롯해 10월말 컴백과 동시에 대부분 음원차트를 석권한 아이유는 일찌감치 순위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임창정은 지난달 9일 KBS 2TV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잠시 얼굴을 비쳤을 뿐이다. 아이유의 얼굴은 신곡 앨범 재킷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고, 9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한 신승훈 역시 새 앨범을 발표하기 전부터 “방송 활동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들 외에도 소위 ‘듣는 음악’을 하는 가수들은 순위프로그램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라디오나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처럼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가장 큰 이유는 가요 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지상파 순위프로그램에 회당 출연하는 가수는 15~20팀. 이들 중 80% 이상이 아이돌이다. 1위 대결 역시 아이돌 대결 일색일 때가 다반사다. 심지어 MC도 대부분 아이돌이다.
아이돌 출연자가 주류를 이루니 주시청층도 10대다. 이들은 오랜만에 컴백하는 기성 가수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이는 ‘보는 음악’을 앞세운 아이돌 그룹과 가창력을 무기 삼은 기성 가수가 출연했을 때 객석의 반응을 통해 극명히 갈린다. 커다란 팬덤과 함께 움직이는 아이돌 그룹들은 매주 그들을 보기 위해 방송국을 찾는 팬들의 성원 속에 노래를 부른다. 사전 녹화 때는 해당 팬클럽들을 따로 불러 앉히기도 한다. 한 중견 가수는 “수많은 아이돌 가수들 사이에 있다 보면 괴리감을 느낀다”며 “객석의 반응을 기대하고 노래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별다른 감흥 없는 얼굴로 ‘우리 오빠’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10대 팬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맥이 풀린다”고 말했다.
투자 대비 효과도 낮은 편이다. 가요 순위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드라이 리허설, 카메라 리허설을 거친 후 본무대에 오른다. 20개 팀 중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다가 리허설에 참여하려면 하루를 통으로 빼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출연 시간은 회당 3~5분가량. 게다가 요즘 지상파 3사 가요 순위프로그램의 시청률은 1~2%다. 출연료 역시 50만 원이 넘지 않으니 ‘출연하면 손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 가수는 “방송사 한 곳에만 출연하면 나머지 방송사에서 크게 항의를 받는다. 때문에 일단 출연하려면 모든 방송사에 출근도장을 찍어야 한다”며 “이럴 바에는 아예 어느 곳에도 출연하지 않아 괜한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가요 시장이 음반에서 음원 시장으로 재편되고, 다매체 시대에 접어든 것도 가요 순위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줄어든 이유다. 음원 시장에서는 멜론, 지니, 엠넷 등 주요 음원 사이트의 차트 순위가 더욱 공신력 있는 집계로 통한다. 사재기, 추천제 등의 논란도 있지만 신곡 공개 직후 오로지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로 집계되는 음원 순위가 해당 가수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평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방송사 순위프로그램에는 방송 활동 점수 등이 포함되는데 당연히 평소 방송 활동을 안 하는 기성 가수보다 아이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대중이 음원을 찾아듣는 가장 보편적 방법인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기반으로 한 음원 사이트 순위가 훨씬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말했다.
또한 네이버의 ‘V앱’과 같은 포털사이트의 각종 서비스와 유튜브 등 SNS를 통해 각 가수들이 신곡을 홍보할 도구가 많아지며 굳이 방송사의 ‘갑질’을 감내하며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방송사의 순위가 공정하다고 믿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라며 “방송사의 영향력 약화, 순위제의 공정성 논란, 아이돌 위주 구성 등 3가지 숙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향후 ‘방송 출연 않겠다’고 선언하는 가수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